[인터뷰]박순재 대표···바이오시밀러에서 바이오베터로
정맥주사제를 피하주사제로 바꾸는 '효소' 세계 2번째 개발
독특한 단백질 '성형수술' 기술로 승부···"단백질 공학의 정점"

대덕 바이오벤처 '알테오젠(대표 박순재)'은 요즘 세계 대형 제약회사들의 협력 러브콜을 받는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꾸는 물질 '히알루로니데이즈(ALT-B4)'. 알테오젠이 세계서 2번째로 개발했다.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사진=한효정 기자>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사진=한효정 기자>
피하주사는 정맥주사보다 여러 모로 환자에게 편리하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수 시간 동안 정맥에 바늘을 꽂을 필요 없이, 집에서 5분 내에 스스로 주사를 놓으면 된다. 제약사들이 피하주사제에 눈을 돌리는 이유다.

글로벌 기업 할로자임은 PH20이라는 이름의 히알루로니데이즈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놨다. 알테오젠은 원개발사의 두꺼운 특허 장벽을 뚫고 기존 것을 능가하는 새로운 히알루로니데이즈를 만들어 냈다.

박순재 대표는 "성공하기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에 세계 기업들이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며 "또 다른 버전의 히알루로니데이즈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히알루로니데이즈 자체 개발

효소 히알루로니데이즈의 작용 방식은 이렇다. 피하 조직에는 다당류와 단백질이 얽히고 설켜 있다. 히알루로니데이즈는 단백질 중 히알루론산을 분해해 피부 아래에 작은 구멍들을 낸다. 그러면 히알루로니데이즈와 섞여 있던 항암제가 이 틈으로 흡수되어 몸속으로 들어간다.

ALT-B4는 몸속에서 히알루론산을 분해하는 또 다른 단백질(Hyal1)과 PH20을 반 정도씩 잘라 붙여 탄생했다. 쉽게 말해 '성형수술'을 한 단백질이다. 박 대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단백질 분자의 도메인을 요리하듯이 자르고 붙이는 기술이 특별하다"며 "히알루로니데이즈 기술은 단백질 공학의 최고봉"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ALT-B4의 성능은 PH20보다 뛰어나다. 열에 더 강하고 몸에 들어갔을 때 면역반응을 덜 일으킨다. 동물세포가 ALT-B4를 만들어내는 발현율도 높아 많은 양을 확보할 수 있다. 알테오젠은 작년 7월 ALT-B4 개발을 마쳤고 내년부터 임상에 돌입한다. 박 대표는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자평했다.

할로자임이 만든 PH20과 체내 단백질 Hyal1의 일부를 결합해 만든 ALT-B4. 각 단백질을 자르고 붙이는 데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림=알테오젠 제공>
할로자임이 만든 PH20과 체내 단백질 Hyal1의 일부를 결합해 만든 ALT-B4. 각 단백질을 자르고 붙이는 데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림=알테오젠 제공>
현재 알테오젠은 정맥주사용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을 피하주사제로 만들고 있다. 박 대표는 "삼성, 셀트리온, 화이자, 암젠 등 회사들이 정맥주사용 허셉틴 복제약을 선점하고 있다"며 "경쟁을 피하려고 피하주사제로 방향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피하주사용 허셉틴도 글로벌 기업에서 먼저 팔고 있었지만, 알테오젠은 여기에 도전장을 냈다. 그는 "피하주사제를 만드는 기존 기술은 특허로 등록됐기 때문에 우리만의 기술을 개발해야 했고 결국 성공했다"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더라"고 회상했다.

ALT-B4는 허셉틴 외에 다른 항암제에도 쓰일 수 있다. 정맥주사제에 히알루로니데이즈를 섞기만 하면 된다. 박 대표는 "피하주사제를 만들려는 여러 해외 제약회사들과 논의하고 있다"며 "계약서를 주고받는 단계"라고만 밝혔다. 

◆ 바이오시밀러가 캐시카우···바이오베터·항암제로 확장

박 대표는 우리나라 1세대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의 개발자다. 1988년 LG생명과학에 입사해 성장호르몬, 적혈구촉진인자, 인터페론, B형간염 백신 등 국산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앞장서 왔다. 바이오의약은 몸속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할 요소가 부족할 때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인슐린과 성장호르몬이 대표적이다.

지금 박 대표가 알테오젠에서 주력하는 분야는 바이오의약에서 한 단계 나아간 '바이오베터'다. 바이오의약과 기능은 같지만, 투여 방법을 편리하게 개선하거나 효과가 더 뛰어난 신약을 의미한다. 박 대표는 "피하주사용 히알루로니데이즈는 바이오베터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알테오젠이 개발 중인 바이오베터는 NexP 지속형 기술을 이용한 '롱액팅(Long-acting) 성장호르몬'이다. 롱액팅은 몸 속에서 오래 작동한다는 뜻이다. NexP 기술로 성장호르몬에 특정 단백질을 변형해 붙이면 성장호르몬이 체내에서 더 오래 머무른다. 성장호르몬을 맞는 주기를 1일에서 1주일로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성장호르몬과 구별된다.

알테오젠은 2008년 NexP 기술 하나로 출발했다. 박 대표의 부인이자 초기 창업자인 정혜신 박사가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다 해외에서 박 대표에 바이오시밀러 협력을 제안하면서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시작했다. 바이오시밀러는 알테오젠의 캐시카우가 됐다.

박 대표는 바이오시밀러로 버는 마일스톤 등을 롱액팅 의약품 개발에 투자했고, 이후 항암제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ADC(항체-약물 접합) 기술도 개발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현재 4개의 파이프라인이 진행 중이다. 박 대표는 "여러 기술이 있어서 어느 하나만을 주력으로 꼽기 어렵다"고 말했다. 

알테오젠의 파이프라인. 성장호르몬 바이오베터(Long-acting hGH, ALT-P1)는 국내 임상 2상 중으로 가장 진행 속도가 빠르다. ADC 기술을 이용한 항암제 'ALT-P7'과 노인성 황반변성 바이오시밀러 'ALT-L9'은 임상 1상 중이다. <그림=알테오젠 제공>
알테오젠의 파이프라인. 성장호르몬 바이오베터(Long-acting hGH, ALT-P1)는 국내 임상 2상 중으로 가장 진행 속도가 빠르다. ADC 기술을 이용한 항암제 'ALT-P7'과 노인성 황반변성 바이오시밀러 'ALT-L9'은 임상 1상 중이다. <그림=알테오젠 제공>
◆ 바이오벤처, 다 같이 커야 생태계 발전한다

박 대표는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며 대전 바이오벤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대전의 많은 바이오벤처는 정말 맨땅에 헤딩하면서 성장해 왔다"며 "밀집된 곳에 그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인데 이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벤처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근본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벤처 인큐베이션 시설과 인력을 끌어들이는 환경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지역 바이오벤처에 투자할 전용 펀드도 제안했다. 그는 "새로운 기업들이 생겨나면 서로 기술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해외 대형 기업에 기술을 파는 것만으로 바이오 업계가 발전하지 않습니다. 큰 거래만을 성공이라고 한다면 어느 한 곳이 실패했을 때 전체가 고꾸라지게 돼요. 다 같이 조금씩 성장하면 하나가 삐끗해도 전체 바이오벤처 생태계는 유지될 수 있어요. 저변 확대부터 차근차근 이뤄가야 합니다."

대전 전민동에 있는 알테오젠 본사. 2015년 현재 건물로 이전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대전 전민동에 있는 알테오젠 본사. 2015년 현재 건물로 이전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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