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연, 식물성 성분 '아이소소바이드' '나노셀룰로오스' 섞어
강도·투명성 우수, 인체 유해성 낮아

"나노 복합체 플라스틱 중합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겪다 팀원들과 논의해 고분자 이전 원재료부터 합성하는 in situ 중압법을 도입해 해결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박제영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국제독성인증 시험에서 독성이 낮다는 인증을 받았습니다. 어항, 방패, 방탄유리에 쓰이는 기존 폴리카보네이트를 대체해 인체 유해성이 현저히 낮고, 강도는 훨씬 세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오동엽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한국화학연구원(원장 직무대행 김창균) 연구진이 지난 2015년부터 9명의 연구진이 참여해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를 개발하고, 국내 중소기업과 협력해 국산화에 나섰다.

오동엽 박사에 따르면 바이오플라스틱은 비닐봉지, 빨대처럼 생분해가 가능한 범용 바이오 플라스틱과 썩지 않는 플라스틱인 고강도 바이오플라스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동안 썩지 않는 플라스틱에서 일부 유해성이 입증된 가운데 이를 친환경적이면서 투명도와 강도를 높여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화학연구원 울산 바이오화학연구센터 연구진은 식물성 성분인 아이소소바이드와 나노셀룰로오스를 이용해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를 개발했다.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는 환경호르몬 유발 물질인 비스페놀A(BPA)가 포함된 폴리카보네이트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이다. 현재 상용화에 성공한 건 일본의 미쓰비시케미컬이 유일하다.

화학연 연구진이 개발한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는 투명도와 강도가 우수하다. 자동차 선루프와 고속도로 투명 방음시설 등 유리 대체용 플라스틱이나 가정용 생활용품에 활용할 수 있다.

아이소소바이드(isosorbide)는 글루코스(포도당)에서 유래한 화합물로 친환경 물질이다. 글루코스를 수소화하면 소르비톨(sorbitol)이 되며, 이 소르비톨을 탈수화한 게 아이소소바이드이다.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는 인체에 유해한 BPA가 포함된 폴리카보네이트의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들다보니 경제성과 고기능성 플라스틱의 특성(투명성‧고강도‧내충격성)을 모두 만족하기 어려웠다.

BPA는 내분비계 교란과 대사 장애 등을 일으키는 환경호르몬으로, 국내에서는 젖병과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BPA는 대부분 폴리카보네이트에 쓰이며, 영수증 용지와 식품캔 코팅소재 등에도 사용된다.

화학연 연구진은 아이소소바이드에 보강재 역할을 하는 나노셀룰로오스를 섞어, 석유 폴리카보네이트보다 뛰어난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유사한 화합물끼리 서로 잘 섞이는 'like-dissolve-like' 원리를 적용했다. 물에 잘 섞이는 성질을 가진 아이소소바이드와 나노셀룰로오스를 섞은 것이다.

나노셀룰로오스를 아이소소바이드 액상에 미리 분산시킨 후, 나노 복합체 플라스틱 중합 과정을 진행했다. 이어 콘크리트의 철근처럼 보강재 역할을 하는 나노셀룰로오스의 분산도를 극대화했다. 

박제영 화학연 박사는 "바이오플라스틱은 물성이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면서 "식물성 원료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해 석유 플라스틱보다 우수한 플라스틱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바이오플라스틱의 한계점으로 지적됐던 강도와 투명도 등 플라스틱의 특성이 개선됐다. 

개발된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의 인장강도는 93MPa(메가파스칼)을 기록했다. 기존 석유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석유 폴리카보네이트의 인장강도인  55~75MPa와 일본 미쓰비시케미컬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의 인장강도인 64~79MPa 보다 높다. 

플라스틱의 투명도를 나타내는 투과율도 93%를 기록했다. 보통 나노 복합체는 불균일한 응집물에 의한 빛의 산란으로 투명도가 감소한다. 석유 폴리카보네이트의 투과율 90%와 바이오폴리카보네이트의 투과율은 87% 보다 높게 나타났다. 

장기간 자외선에 노출되더라도 변색될 우려가 없다.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에는 석유 폴리카보네이트와 달리 벤젠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자동차 선루프, 헤드램프, 고속도로 투명 방음시설,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 외장재 등 산업용 소재로 사용해 기존 폴리카보네이트를 대체할 수 있다.

쥐 모델을 이용한 염증실험에서도 독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의료용 소재로도 활용 가능성도 입증했다. 쥐 진피세포에 고분자를 넣어 염증 유무를 실험한 결과, 독성 0~5 수치 중 1을 기록했다. 0에 가까울수록 독성이 낮다.

오동엽 화학연 박사는 "쥐를 이용한 염증실험에서 독성이 낮은 것으로 나왔다"면서 "기존과 달리 영유아들이 입에 가져다대도 안전해 장난감, 젖병, 유모차 소재뿐만 아니라 임플란트와 인공뼈 소재로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 시장이 걸음마 단계이지만, 이번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면 향후 바이오플라스틱 시장을 선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생산량 기준 석유 폴리카보네이트 시장규모는 연간 500만톤 규모이며, 미쓰비시케미컬의 연간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 생산능력은 2만톤 수준이다.

박제영 화학연 박사는 "그동안 친환경 플라스틱에 대한 수요가 낮아 관련 연구를 수행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는 한편 바이오플라스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성연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장은 "폐플라스틱 문제, 케모포비아 현상 등으로 플라스틱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플라스틱은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재인 바, 국민들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바이오플라스틱을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화학소재 공인인증센터 구축사업과 한국화학연구원 주요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결과는 녹색화학분야 국제 학술지인 영국왕립화학회 '그린 케미스트리(Green Chemistry)' 10월호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화학연 연구진이 개발한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의 대면적 필름.<자료=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화학연 연구진이 개발한 바이오 폴리카보네이트의 대면적 필름.<자료=한국화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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