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의 아·사·과 ⑦] 사람의 자리
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대덕넷은 8월부터 수요일 격주로 '최병관의 아·사·과'를 연재합니다. '아주 사적인 과학'이라는 의미로 과학 도서를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저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 실장으로 올해 '과학자의 글쓰기'를 집필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병관 작가의 과학 서평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 '과학자이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 '과학자이 글쓰기' 저자.
과학기술과 사회는 어떤 관계일까? 이 질문에 꾸준히 답을 제시해 온 사람은 KAIST 전치형 교수다. 그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접점을 탐구해 온 인물이다. 전 교수는 과학의 출발점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마련하는 의지와 행위"라고 강조한다. '과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과학잡지 '에피'의 편집위원이자 KAIST 교수다. 그는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 만능주의와 그로 인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과학을 지상의 유일한 선(善)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태도이다.

현재 수많은 전문가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을 거론하며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와 로봇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그래서 전 교수는 책의 제목을 '사람의 자리'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 '사람의 자리'는 칼럼 묶음집이다.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저자가 한겨레신문 등 이곳저곳에 기고했던 글을 모으고 필요한 경우 후기를 붙였다. 각 이야기마다 그동안 있었던 중요한 이슈를 다루며, 과학은 그 논쟁과정에서 자유로운지, 각각의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지 등을 담고 있다.

나는 '사람의 자리'를 읽으며 그의 과학기술과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2019년 9월 독서클럽 백북스 강연에서 전 교수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책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 인공지능 자동차의 경주 등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책의 5장은 '세월호학을 위하여'이다. 세월호학은 2017년 6월 열린 '세월호 참사-관점, 분석, 행동'이라는 워크숍에서 고려대 김승섭 교수가 '세월호학'이 필요하다며 제안해 사용되고 있다. 세월호학은 '전공을 구분하지 않고 세월호 문제를 정면으로, 깊이 있게, 공동으로 연구하는 작업을 하자'는 의미다. 전 교수는 이에 덧붙여 세월호학은 전문성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외부 집필진 활동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볼 수 있다.  세월호 희생자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에 대한 글인 '동수 아빠의 과학'을 같이 음미해보자.

이것은 또한 한국 과학의 책무이기도 하다. 한 해에 5만 편 넘는 SCI 논문을 발표하는 나라에서 배 한 척이 왜 가라앉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이는 과학과 국가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예를 표하던 동수 아빠에게 우리는 정중하게 답해야 한다. (p 219)

'위로하는 엔지니어링'은 어떤가? 이 글은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세월호 바로 세우기를 보면서 느낀 솔직한 감정을 담고 있다. 1만 톤급 크레인이 물체를 들어올리는 작업을 보며 '위로'와 '치유'를 떠올리는 생소한 경험을 풀어내고 있다. 인문학, 심리 상담, 종교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링도 위로와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세 시간동안 직립 작업을 지켜보며, 이전 100일 동안의 준비 과정을 떠올리며, 엔지니어들이 말없이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시선이다.

세월호 바로 세우기는 엔지니어링이란 무엇이며, 엔지니어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기본적 질문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의 도구가 되는 것 외에 엔지니어링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물리학자 친구 없어요?'라는 글에서는 2018년 6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마감하며 만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장훈 진상규명분과장의 말이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장 분과장은 저자에게 세월호를 설명해줄 수 있는 물리학자 친구를 소개해 달라며, 그 물리학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옮겨 달라고 간청했다.

저자는 이 책에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2018년 8월 활동을 종료하며 발간한 종합보고서의 서론도 실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 데이터와 씨름하며 세월호 참사의 핵심이 단순히 데이터가 아니라 차마 데이터가 되지 못한 것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저자는 "슬프게도 이 보고서를 들고 4년 전 그날로 돌아가 세월호의 침몰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배가 출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세월호처럼 넘어지고 세월호처럼 가라앉는 배가 없도록 하는 일에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쓰고 있다.

전 교수의 첫 책 '사람의 자리'는 이미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KAIST 교수가 과학기술과 사회에 내민 따뜻한 손길이다. 흔히 과학책이라고 하면 무미건조하고 차가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 책은 오히려 반대다. 겨울 찐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같다. 그동안 과학이라는 핑계로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전 교수가 독서클럽 백북스에서 독자들과 과학기술과 사회의 접점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희망의책 대전본부는 2019년 대전 같은책 읽기 대상도서로 '과학의 자리'를 선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자리'에 같이 앉아 과학기술과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봤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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