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연구실⑮]생명연 유전체맞춤의료전문연구단
2만여 개서 수백 개, 4개, 1개···질병 원인 유전자 추려
"유전체에 따라 맞춤형 치료받는 시대 예상"

암에 걸린 사람과 아닌 사람의 유전자는 무엇이 다를까? 그 유전자는 정말 암을 자라게 할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맞춤의료전문연구단의 연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유전체를 분석해 암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검증해 신약의 표적으로 제시한다. 인간의 2만여 개 유전자 중 질병을 일으키는 것을 깊이 있게 찾아가는 '추적자' 역할이다. 

연구단은 2000년대 초반, '인간유전체연구실'로 출발했다. 그동안 여러 번 그룹 명칭은 변경됐지만, '유전체'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유전체를 통해 암을 치료하겠다는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인터뷰에 참여한 유전체맞춤의료전문연구단 연구자들. 왼쪽부터 김정애 박사, 박경찬 단장, 원미선 박사다. 김정애 박사는 바이오마커 발굴을, 원미선 박사는 마지막 단계에서 유전자의 기능을 심화 검증하는 연구를 담당한다. <사진=생명연 제공>
인터뷰에 참여한 유전체맞춤의료전문연구단 연구자들. 왼쪽부터 김정애 박사, 박경찬 단장, 원미선 박사다. 김정애 박사는 바이오마커 발굴을, 원미선 박사는 마지막 단계에서 유전자의 기능을 심화 검증하는 연구를 담당한다. <사진=생명연 제공>
◆ 체 치듯이 신약 타깃 유전자 걸러내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하나를 집어내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체를 치듯 후보 유전자를 거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구원 11명이 팀을 나눠 각 단계를 맡는다. 연구 대상 질병은 난치성 암, 그중에서도 폐암·간암·위암에 주력한다.

연구단은 크게 세 팀으로 구성된다. 유전체 빅데이터를 모아 바이오마커를 찾는 팀, 바이오마커를 검증하는 팀, 동물실험으로 분석하는 팀이다. 바이오마커는 유전자의 변이를 나타내는 지표를 말한다. 

바이오마커 발굴팀에서는 인간 유전자 중 환자에게만 있는 유전자를 수백 개로 추린다. 검증팀은 이를 다시 4~5개 후보군으로 압축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중 신약개발에 돌입할 가치가 있는 유전자의 기능을 심화 검증한다.

첫 단계인 바이오마커 발굴 연구에는 작년부터 '단일세포 유전체 분석' 기술이 도입됐다. 조직 안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인체의 장기는 수만 개 세포로 이뤄졌는데 지금까지는 떼어낸 종양 조직의 세포들을 모아서 분석했다. 세포들의 평균값만 알아본 셈이다.

반면 단일세포 분석에 사용되는 세포 수는 보통 100여 개, 많으면 1만 개 정도다. 김정애 박사는 "이 기술을 인구 표본조사에 비유할 수 있다"며 "예전에는 한 세포의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대량 분석으로 아주 작은 변이도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애 박사가 단일세포 분석에 쓰는 장비(오른쪽)를 소개하고 있다. 이 장비는 미세유액을 통해 세포를 분리한다. 가는 관에 액체를 흘리면 세포 하나만 지나간다. 그 과정에서 세포를 잡는 동시에 세포를 구분해주는 표지가 붙는다. 이 세포에서 나오는 핵산(DNA, RNA 등 유전물질)에도 이 표지가 달린다. 수천 개 단일세포가 서로 다른 표지를 갖게 된다. <사진=생명연 제공>
김정애 박사가 단일세포 분석에 쓰는 장비(오른쪽)를 소개하고 있다. 이 장비는 미세유액을 통해 세포를 분리한다. 가는 관에 액체를 흘리면 세포 하나만 지나간다. 그 과정에서 세포를 잡는 동시에 세포를 구분해주는 표지가 붙는다. 이 세포에서 나오는 핵산(DNA, RNA 등 유전물질)에도 이 표지가 달린다. 수천 개 단일세포가 서로 다른 표지를 갖게 된다. <사진=생명연 제공>
차이를 나타낸 수백 개 유전자는 검증 단계로 넘어간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들과 결합하는 짧은 유전자 단편(shRNA·siRNA)을 세포에 넣는다. 유전자 단편은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한다.

그 결과 세포가 죽는지, 많아지는지,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지 살펴보면 유전자와 질병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박 단장은 "다루는 유전자 수가 많지만 한 번에 검증하는 시스템이 있어 빠르게 정보를 얻는다"며 "수백 개 유전자를 검증하기 어려운 기업에 가치 있는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관문에서는 난치성 암에서 많이 발현되는 유전자와 결합하는 shRNA를 암이 유도된 실험용 쥐에 넣는다. 이후 쥐의 종양 조직을 꺼내서 종양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확인한다. 종양이 줄었다면 해당 유전자가 암의 생장을 촉진한다고 볼 수 있다.

원미선 박사는 "위암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했고 그중 'SYT11' 유전자를 최종 후보물질로 선택했다"며 "이 유전자를 망가트리면 암 생성을 억제한다는 증거를 얻었다"고 밝혔다. SYT11 억제제를 유효성분으로 포함하는 위암치료용 조성물은 올해 국외특허로 출원됐다.

이 밖에도 연구단은 유전자 CYB5R3에 대한 유전자치료제를 작년 10월 기업 와이디생명과학에 기술이전하기도 했다.

◆ 개인 유전체 맞춤형 의료 시대 온다

'유전체맞춤의료전문연구단'이라는 이름처럼 유전체 분석은 미래 '맞춤의료'의 시작점이다. 어떤 유전자가 변이될 때 어떤 암이 생기는지 분류해놓은 정보는 환자의 유전체와 비교할 기준이 된다. 암의 특징과 변이에 맞는 치료법 등도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

김 박사는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유전체 분석을 통해 폐암의 특정 아형이라고 판정받았는데 방사선은 필요 없지만 세포독성제를 투여해도 된다고 예측할 수 있다. 또 유전자를 더 깊이 분석해서 내성이 나올 확률을 알아내 내성을 극복하는 약을 병행하는 계획을 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단장은 "유전체 분석 정확도와 치료 예측도가 어느 정도 높아지면 이 방법이 비싸도 사람들은 투자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많은 유전체 데이터가 쌓이고 여기에 인공지능이 더해져 예측은 더 정확해질 것"이라며 "대부분의 사람이 유전정보를 분석 받고 질병을 예방하는 시대가 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원 박사는 "자신의 유전자 정보에 맞는 약을 먹으면 치료 효율도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미래에 암을 정복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보다 암을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으로 내다봤다. 원 박사는 "그러려면 협력이 필수"라며 "임상을 함께할 의사는 물론이고 shRNA 연구자, 기업, 각 분야 전문가와 연구해야 한다. 이들이 모여야 유전체 연구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암이 너무나 어려운 대상인데 그나마 치료법이 발전되는 이유는 유전체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 연구단에서 하는 기술을 고도화해서 인간 유전체를 제대로 수행하는 대표 연구 그룹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연구자의 각오 한마디

▲박경찬 단장 = 연구단에서 수행하는 각 연구 분야를 국내 다른 대학과 기업에서도 하고 있다. 연구단의 차별성을 갖추는 데 주력하려 한다. 유전체만으로 암을 정복할 수는 없지만, 현재 암이 주는 공포를 줄이고 암을 조금 더 조절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원미선 박사 = 연구원에 온 지 20년이 넘었다. 요즘에는 신약을 개발하는 벤처들도 많이 늘어나고 바이오 벤처 투자액도 많아지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가 굉장히 활발해져서 희망적이다. 암 연구가 한계가 많고 어렵지만, 기업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 기술을 전해주고 싶다.

▲김정애 박사 = 유전체 연구는 공공성을 띠면서 이곳저곳 관련된 곳이 참 많다. 연구소 안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려 한다. 뻗을 수 있는 가지가 많으니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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