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우아한형제들 CTO가 말하는 '배달의민족' 성장기
전산학과 후배에게···"코딩이 전부는 아니야, 개발자 가치 키우길"

월간 이용자 1200만 명, 월간 주문 3900만 건, 2019년 거래액 8조5000억원. '배달의민족'은 국내 음식배달 앱의 대표주자다. 그러나 2010년 우아한형제들(대표 김봉진)이 배달의민족을 출시했을 때, 앱의 기능은 '전화번호부' 하나였다. 서울 강남에 있는 모든 음식점의 전단지를 수집해 앱에서 보여주는 것이 회사의 목표였다. 직원뿐만 아니라 대표도 전단지를 주으러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후 앱에 있는 음식점에 전화를 걸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다. 지금과 같은 자동주문 전화는 아니었고, '050 전화시스템'이 사용자의 전화를 음식점에 연결해줬다. 4~5개월간 무료로 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점차 업계에서 앱의 인지도가 올라갔다. 매출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고비가 찾아왔다. 주문·결제 시스템까지 갖춘 경쟁 앱이 나타났다. 우아한형제들도 부랴부랴 같은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모든 업소에서 주문접수를 사용하지 않아 성장은 더뎠다. 가게 주인들이 앱을 쓰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콜센터 직원들이 사용자의 주문 메뉴를 가게에 전달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광고가 나간 후에는 주문이 전날 대비 2배씩 늘었다. 인력이 모자라 직원들이 주말에 나와 콜센터 업무를 하기도 했다. 이후 음식점에서 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콜센터는 사라졌다.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CTO가 KAIST 전산학과 학생들 앞에 섰다. 그는 한 번에 하나씩, 단순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우아한형제들의 성장과정을 들려줬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CTO가 KAIST 전산학과 학생들 앞에 섰다. 그는 한 번에 하나씩, 단순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우아한형제들의 성장과정을 들려줬다. <사진=한효정 기자>
우아한형제들의 김범준 CTO가 KAIST 후배들에게 들려준 '배달의민족'의 성장 이야기다. 김 CTO는 지난 18일 전산학과 콜로퀴움 강연에서 우아한형제들의 문제 해결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KAIST 전산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를 수료했다. 졸업 후 NC소프트 등에서 일하다 2015년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했다. 

김 CTO는 "우아한형제들의 방법이 무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 "기술은 0에서 1을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한 사업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지 검증할 때는 익숙한 기술 말고도 다양한 접근 방식과 도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에서는 어떤 알고리즘이 좋은지 정답이 있는 문제를 배운다면, 현장에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을 배운다"고 덧붙였다.

이후에도 우아한형제들의 정면돌파는 계속됐다. 2016년에는 '배민상회'라는 음식 포장 용품을 세트로 판매하는 사업에 도전했다. 이를 위해 온라인 시스템이 필요했지만, 시스템 개발자 채용과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다.

대안으로 배민상회 물품 카탈로그를 매장에 배포해 전화로 주문을 받았다. 이 역시 콜센터 직원이 주문 내용을 엑셀에 입력하고 사람이 물품을 포장해 발송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김 CTO는 "신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몇 년만에 시장이 바뀔 수 있어 이런 방법을 택했다"며 "우리는 배민상회의 필요성을 확인했고 이후 매출은 상승했다"고 밝혔다.

김 CTO는 전공 내용을 곁들이며 시스템 장애를 극복한 방법도 설명했다. 그는 "서버가 다운되어도 로컬 캐시를 보여주는 오프라인 모드를 만들었다"며 "엔지니어는 오류를 나지 않게 하려고 모든 노력을 쏟는데 우리는 생각을 바꿔 오류가 나도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조언도 건넸다. "창업 초기에 처음부터 100점짜리 답안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시도하고 개선하고 또 개선하는 겁니다. 60점 답도 일단 작동하는지 보는 게 필요하죠. 어릴 때는 제가 코드를 잘 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사에 가보니 코딩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내가 가진 결과물이 코드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지 생각해보세요. 그 가운데서 동료의 업무를 편리하게 바꿔주는 작은 일을 실천하면서 개발자의 가치도 키워가시길 바랍니다."

한편 우아한형제들은 현재 배민라이더스, 배민커넥트, 자율주행로봇 등 사업도 진행 중이다. 배민라이더스는 배달 서비스가 없는 음식점에서 일하는 배달원, 배밀커넥트는 아르바이트 배달원이다. 김 CTO에 따르면 두 서비스 소속 배달원은 올해 연말 1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로봇 상용화는 최근 건국대학교에서 시작됐다. 건국대 캠퍼스에 4개 로봇이 운행 중이며 앱에서 주문하면 로봇이 배달해준다. 

김범준 CTO가 소개한 우아한형제들의 개발조직 비전. "코드 덩어리가 아닌 가치를 만들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며 일한다." 김 CTO는 "소프트웨어 장인이란 말을 좋아한다"며 "자존감을 가지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범준 CTO가 소개한 우아한형제들의 개발조직 비전. "코드 덩어리가 아닌 가치를 만들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며 일한다." 김 CTO는 "소프트웨어 장인이란 말을 좋아한다"며 "자존감을 가지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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