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의 아·사·과 ⑧] 크로스 사이언스
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대덕넷은 수요일 격주로 '최병관의 아·사·과'를 연재합니다. '아주 사적인 과학'이라는 의미로 과학 도서를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저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 실장으로 올해 '과학자의 글쓰기'를 집필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병관 작가의 과학 서평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 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 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이순석 박사로부터 메일이 왔다. 그는 연구원 내 자발적 연구 소모임 새통사(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를 이끌고 있다. 그는 홍성욱 서울대 교수를 초청해 '과학은 인간의 삶의 형식이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한다고 알려왔다.

'과학기술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대덕연구단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동안 대덕연구단지 과학기술인들은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소통이 부족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와의 협력이나 의견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제 출발에 불과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다. 새통사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메일을 받고 홍성욱 교수를 떠올렸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라는 책을 읽긴 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신간 '크로스 사이언스'를 주문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의 제목을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의 크로스'라고 명명했다. 과학은 사실에 대한 탐구이며, 인문학은 가치에 대한 탐험이라는 대구(對句)를 위와같이 표현했다. 과학과 인문학이 각각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크로스 사이언스'는 과학과 문화,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보여주는 책이다. 서울대 이공계열 학생들과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함께 듣는 수업, '과학기술과 대중문화'의 강의를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했다.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이라는 그럴듯한 시리즈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 책은 4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짧아서 읽는데 부담이 없다. 그림과 사진이 많아 책을 넘기는 재미까지 주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례를 통해 주제에 대한 친근감이 느껴진다.  

웬만한 사람은 최소한 몇 개는 접해 보았을 인기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미술품과 같은 예술작품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어떤 비평가는 이 책을 휴가 때 가지고 갈만한 킬링타임(killing time)용으로 적합하다고 했지만 나는 주로 출장 때 이동하면서 읽었다.

각 부의 마지막 부분에는 마치 옛날 학습서를 연상시키는 Q&A도 보인다. 질문은 이런 식이다.

Q. 미쳤거나, 괴짜이거나, 변태거나···문화 속 '매드 사이언티스트(Mad scientist)'의 이미지, 왜 이렇게 된 걸까?(p 118)

Q. 대중문화로 과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p 348)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1984', '멋진 신세계'와 같은 소설, '메트로폴리스', '블레이드 러너',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같은  영화, '공각기동대' 같은 애니메이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같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소설, 대중 과학서적 '코스모스',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예술 작품 등을 통해 현대 과학의 쟁점들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과학을 우리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자들의 냉철한 시각으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유전자 가위 등 현대과학의 주요 이슈들이 문화 속에 어떻게 숨겨져 있는지, 그 실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한다. 생명윤리, 프라이버시,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 문제 등 과학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에 현대인들이 한 번은 숙고해야 할 문제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과학과 인문학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교차(cross)하고 있음을 예리한 시각으로 통찰하고 있다. 책 제목'크로스 사이언스'를 생각해 보자. 이론과 수식에서 벗어나 과학은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일상에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소설, 영화, 예술작품 등을 통해 쉽게 설명하고 있다.

'크로스 사이언스'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현대의 고전과 명작, 대중문화를 통해 과학을 성찰하는 색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독특한 책이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고상한 논의에 콧방귀를 뀌듯이, 일상의 문화 속에 사실과 가치는 이미 잡탕처럼 섞여 있다. 그래서 문화 속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실과 가치의 얽힘을 잘 읽어내는 작업은 두 문화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교두보가 된다.(p 14)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최초의 SF소설로 여겨지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손에서 창조된 괴물에 대한 이야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실험을 하다가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 내고, 괴물은 빅터에게 창조의 책임을 요구한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켄슈타인'의 테마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영화와 소설속에 재현되고 있다. 현재도 수많은 실험실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거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대중문화 속에 과학을 담아내고, 성찰하며, 예측하고, 향유하며, 살아간다.

SF영화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인간과 기계의 차이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고, 'R.U.R', '메트로폴리스' 등의 작품을 통해 고도로 발달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전한다.

홍성욱 교수는 물리학, 과학철학을 비롯해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인공지능(AI)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이같은 많은 분야를 탐구하고 관심을 갖고 있어 과학과 대중문화가 만나는 장면을 누구보다 뛰어나게 포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크로스 사이언스'를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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