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는 연구현장 ①] 잡무 늘리고 자존감 떨어뜨리고
"예산 감소보다 인건비 등 비용 손실 더 커"
"탁상행정 아닌 현장 중심의 안이 마련되길 기대"

연구현장이 뒤로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며 사람 중심의 연구환경을 만들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는 다르게 여전히 연구현장을 옥죄는 모양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몇몇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 올해 7월부터 국민권익위원회 권고에 따라 숙박비와 여비 등 출장비 실비 영수증 처리에 들어갔다. 출연연의 출장 처리는 출장비와 숙박비가 정액 지급되는 방식이었다. 출장을 신청하면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일정액을 선지급하는 것이다. 사후 영수증 처리는 하지 않아도 됐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공무원 여비 규정과 별개였다.

우리나라는 2008년 부정행위를 막자는 차원에서 공무원 여비규정을 바꿨다. 출장자는 운임·숙박비를 법인카드로 결재하고 영수증을 제출해 정산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기타공공기관은 공무원 여비규정 적용에서 제외됐다. 출연연도 기타공공기관의 연구목적기관으로 정액지급 방식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2017년 7월 이런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예산 낭비를 막는 개선안이라는 이유다. 권익위는 기타공공기관 모두에게 출장비 실비지급과 사후정산 의무화 등을 담은 '공공기관 예산 낭비 요인 개선안'을 권고했다.

◆ 투서한장에 연구자 모두 증빙처리 하라?

권익위의 권고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2017년부터 바로 출장비 실비 지급 시행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회 소관 25개 출연연 중 올해 7월부터 몇몇 기관에서 여비, 숙박비 둘 다 또는 숙박비만 실비지급제를 도입했다. 몇몇 출연연은 시스템 부재 등을 이유로 아직 권익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출연연 출장처리에 대해 살펴보자. 기존 출연연 근무자는 출장 갈 곳과 교통 수단을 정한다. 대중교통이면 그에 드는 비용을 산정하고 자기차량을 이용해 출장을 갈 경우에는 거리에 따른 비용이 미리 산정돼 있다. 때문에 출장자가 팀장, 부장에게 출장 승인을 받으면 총무팀 담당자에게 관련 내용이 전달된다. 그리고 출장 전에 출장비가 입금된다. 다녀온 이후 1박 이상의 출장은 복명서를 작성한다. 복명서에는 출장을 실제로 갔다는 증빙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1박을 하지 않는 당일 출장의 경우 과거에는 증빙을 받았으나 행정간소화를 위해 증빙을 받지 않고 있다. 신뢰를 기반으로 업무가 진행됐다.

그러나 권익위 권고 이후 출장 전 과정은 그대로지만 이후 절차는 다르다. 출장자는 모든 출장시 복명서를 작성하고 증빙을 첨부해 제출한다. 이후 총무팀 관계자는 증빙을 검토하고 법인카드로 숙박비를 결제했는지, 한도가 넘는 금액을 법인카드로 결제하지 않았는지 검토한 후 오류 발생시 조정한다. 회계팀으로 넘어가면 담당자가 출장건들을 한번 더 점검한다. 출장자도 실무 담당자도 절차가 더 많아진 셈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권익위의 권고는 투서 한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모 박사후 연구자가 출장을 가지 않고 출장비를 챙겼는데 동료가 이를 알고 권익위에 투서를 보냈다"면서 "당사자를 확인해 엄벌하고 환수조치를 취하면 될 텐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흐렸다고 연못을 다 퍼 없애고 빈대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용자들을 위해 여비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용자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형식에 맞춰 증빙을 처리하고 첨부하고 있다"면서 "비용과 관리하는 인력의 인건비가 비용감소액보다 더 많다"라고 꼬집었다.

◆ 예산을 줄인다고? 비용 늘고 연구자 업무 늘어나고

실비 지급 사례를 분석해 보자. A 출연연의 2018년 국내 출장은 1만6396건이다. 동반 출장은 1만4081건. 이중 숙박이 포함된 건은 3255건으로 실제 숙박비가 발생한 출장은 2179건이다. 동반 출장을 묶으면 1569건이 된다.

실비 지급제로 할 경우 일년 근무일수를 250일로 보면 하루에 점검해야하는 숙박비 건수는 8.7건이다. 교통비까지 실비 정산을 할 경우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건수는 32건으로 크게 늘어난다. 무엇보다 총무팀과 회계팀이 같은 일을 이중으로 처리해야 하는 구조로 업무 부담이 증가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올해 출연연 책임급 연구자의 숙박비 한도는 7만원, 선임급 이하는 6만원이다. 한두 명이 친지 숙박을 이용한다는 가정하에 실비 지급시 일부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관리하기 위한 인건비와 연구자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고려하지 않은 안이다. 서로 신뢰가 무너진 대책으로 현장 연구자는 자괴감마저 더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권익위는 예산 낭비를 줄이겠다며 권고안을 냈지만 예산 낭비보다 관리 인력 비용, 시스템교체, 증빙제출 비용 등 실익이 없다. 여전히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연구현장만 더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 현장 중심의 대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한편 연구회는 연구비 정산의 사전정산체계 도입, 반납 최소화, 사업 보고서 간소화 등 연구자의 연구몰입도를 끌어 올리겠다며 연구행정 선진화를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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