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결정타
1조 예산 예비타당성 조사 위한 물밑작업 진행중
오창, 나주, 포항, 송도, 춘천 등 유치전 돌입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당시 한국 과학기술계는 과학벨트의 핵심 연구시설로 가속기가 돼야 한다는데 한목소리를 냈지만, 어떤 가속기를 설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기초연구의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사광가속기냐, 아니면 신물질 개발을 위해 기존 한국에 없던 중이온가속기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관련기사 링크 : 중이온 vs 방사광, 과학벨트 적합한 가속기는?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 과학벨트 대형 가속기 투자사업은 중이온가속기가 주인이 됐다. 가속기 부지는 전국적 유치전 속에 어렵사리 대전 신동지구로 결정됐고, 2021년 완공 목표로 현재 구축 중이다. 하지만 과학계뿐만 아니라 지자체들 사이에서도 방사광가속기 구축 필요성 제기와 유치 공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강산이 한 번 변하도록 이어지는 방사광가속기 구축 이슈를 재조명했다.

◆ 왜 지금 방사광가속기인가?

이명박 정권 당시 수포로 돌아간 방사광가속기 구축 사업이 최근 한국 과학기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수면 아래에 있었던 방사광가속기가 급작스럽게 수면 위로 떠오른 배경은 일본의 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여파가 직격탄이 됐다. 

상황이 180도 반전된 가운데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 이슈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핵심 연구시설로 방사광가속기가 떠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방사광가속기는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신소재 및 금속, 단백질 구조분석을 통한 신약개발에 이르기까지 연구장비 중 가장 활용도가 높은 연구시설로 손꼽힌다. 

방사광가속기는 빛(방사광)을 발생시켜 미세한 원자, 분자 수준의 근원적 구조를 규명할 수 있다. 방사광이 적외선에서 X-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연구자는 미세한 물질의 특징을 분석하는 목적에 맞게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직접 산업화로 연계된다. 

아직까지 방사광가속기를 짓는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방사광가속기 구축 주문 발언과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이슈가 제기되며 방사광가속기 구축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중이온가속기 완공 이후 검토한다는 미온적 입장에서 벗어나 내년 초중순경 방사광가속기 사업을 공론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방사광가속기 관련 담당 부서는 과기부 원자력기술개발과다.
 
그런 가운데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원장 신형식)은 지난 9월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을 출범시켜 방사광가속기 구축 추진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예비타당성 검토를 위한 보고서를 준비 중이며, 포항가속기연구소 등과 방사광가속기 개념설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첨단방사광가속기 예상도.<이미지 =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 첨단방사광가속기 예상도.<이미지 =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 대한민국이 방사광가속기 선봉? NO!···"일본이 우리의 10배"

우리나라에 방사광가속기는 현재 포항에 2기가 운영중이며, 총 35개의 빔라인을 4000여명의 연구자들이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포항의 가속기는 해외 최신형 방사광가속기 대비 서브나노미터급 X-ray 파장 영역에서 밝기가 백만 배 이상 차이 나는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총 방사광가속기 빔라인수가 300개가 넘어 우리나라의 10배 규모에 가깝다. 일본은 2022년 완공을 목표로 도호쿠 대학 내 방사광가속기를 구축 중이며, 구축 완료 후 세계 최대 규모의 'Spring-8' 방사광가속기를 1조원 예산을 들여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중국은 빔라인 60기가 설치된 대형 4세대 원형방사광가속기를 2024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브라질은 이미 7000억원을 투자해 최대 40개 빔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 중대형 4세대 원형방사광가속기를 구축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도 각각 1조원씩을 투자해 기존 방사광가속기를 4세대 원형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기초지원연이 설계하고 있는 한국의 신규 방사광가속기(가칭 KSLS:Korean Synchrotron Light Source)는 1조원 투자로 초기 10개 빔라인(0.1 nm.rad급, 최대 60개)을 구축할 수 있는 모델로 설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전국적으로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위한 물밑 경쟁이 한창이다. 충북 오창을 비롯해 전남 나주, 인천 송도, 경북 포항, 강원 춘천 등 각 지자체들이 방사광가속기 유치전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이주한 기초지원연 대형연구시설기획연구단장은 "방사광가속기는 소재, 부품, 장비 등 모든 분야에 필수적 연구시설이고, 특히 반도체와 신약개발에 이르기까지 활용범위가 넓어 빔라인이 많을수록 지원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신규 방사광가속기 구축을 위해 과학계도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전국 과학자와 산업체를 대상으로 종합적인 고려를 기반해 방사광가속기가 구축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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