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박물관]천문연 안상현 박사..."왕권 강하면 많고 약하면 적다"

우니나라 역사에서 왕권이 강할 땐 별똥별(유성) 관측 기록이 많고 왕권이 약하면 별똥별 기록이 적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연구부 안상현 박사는 '고려사 천문지(高麗史 天文志)' 분석결과 고려시대(918-1392) 왕권이 강한 시기에는 별똥별에 대한 기록이 많고 왕권이 약한 시기에는 별똥별에 대한 기록이 적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려사 천문지는 고려시대 우리나라 천문 관련 종합기록으로 모두 706개의 별똥별 기록이 담겨있다. 이는 왕권의 권위는 하늘에서 받은 것이기에 천문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 박사는 강력한 왕 시대에 별똥별 기록이 많이 나오는 이유와 관련 "동아시아에서는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권한을 왕만이 보유하고 있었다"면서 "별똥별 기록이 많은 것은 곧 왕권이 강한 시기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안 박사는 천문학과 점성술은 왕실과 국가의 운명을 점치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왕권이 강력한 시기에는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왕권과 별똥별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고려 전성기 16대 예종...별똥별 70번 관측

안 박사는 "고려시대 재위기간 대비 별똥별 기록이 많은 시기는 고려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6대 예종(1105-1122, 재위기간 18년)시대로 전체 706번 가운데 무려 70번 관측됐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 고려 왕들은 평양에 제 2수도를 건설해 놓고 몇 달씩 머무는 등 고구려의 옛 고토인 북방 영토에 대한 확장을 내걸던 시기이다.

예종 재위기간에 별똥별 관측 기록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당시 예종이 요동지역에서 준동하던 여진정벌에 관심을 가졌으며 실제로 그는 재위 기간 중에 윤관(尹琯)과 오연총(吳延寵) 등으로 하여금 여진을 쳐서 대파하고 함흥평야에 유명한 9성을 쌓기도 했다.

특히 예종 때 별똥별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 것은 천문과 점성술을 중요하게 취급했던 지리도참사상과 풍수지리설 등이 유행했던 때문이라는 것이 안 박사의 설명이다.

고려 혼란기 18대 의종...별똥별 38번 관측

반면 20여년이 지나서는 양상이 180도 바뀌게 된다. 1140년 대 전후로는 신하들에 의한 대규모 난이 잇달아 발생하고 이어 무신정권이 들어서기 직전까지 왕권이 극도로 약해지고 사회적으로 극도의 혼란을 겪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18대 의종(1146-1170,재위기간 26년)때는 재위 기간이 훨씬 길었는데도 별똥별 관측기록이 38번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시기에는 묘청의 난과 이자겸의 난 등으로 왕권이 크게 약화되었던 시기였었다고 안 박사는 분석했다.

몽고의 침입(1231)이후에도 한동안 별똥별 관측이 뜸해진다. 이 시기에 별똥별 관측이 뜸해진 이유는 중국 남송(南宋)에서 들어온 새로운 학풍이며 신유학(Neo-confucianism)으로 불리는 성리학이 점차 유행하면서 풍수지리나 지리도참사상 등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다만 고려 말기로 들어서는 충렬왕 시대(1274-1308)에는 몽고에 의해 왕권이 약화된 시기이기는 하지만 오윤부(伍允孚)라는 걸출한 천문학자가 활약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갑자기 별똥별에 대한 기록이 많아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 박사는 "이번 연구는 임금의 재위기간 대비 빈도수를 조사해 본 것으로 위정자나 시대정신에 따라 천문관측의 중요성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042-865-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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