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를 더불어 사는 일을 통해 슬기롭게 해결

미국 경제의 경착륙이 거론되며 미국에서는 해고 발표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한국에서도 비슷한데 실업을 공공봉사를 통해 새로운 경험의 기회로 슬기롭게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글을 뉴욕에서 김종윤 기자가 보내왔습니다.

요즘들어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면 매일 빠지지 않고 지면을 장식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기사는 서부의 로스앤젤리스 타임스나 산호세 머큐리뉴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에서도 매일 접할 수 있습니다.

시커멓고 커다란 제목만큼이나 미국독자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이 기사는 바로 ‘미국기업의 대량해고(layoff)’ 입니다. 특히 지난해 중순이후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 닷컴위기설 이후 닷컴기업들의 종업원해고는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중입니다. 우

리나라에서도 닷컴기업의 종업원해고소식이 심심치않게 들려오지만 노동시장이 유연한 미국에서의 종업원해고는 정말 무지막지합니다. 최근들어서도 뉴욕 실리콘앨리의 대표기업 중 하나인 레이저피쉬가 4백명의 종업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반스앤노블닷컴은 3백50개의 일자리를 없앤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루슨트테크놀로지는 1만6천명을, 노텔은 1만명을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미국2위의 컴퓨터제조업체인 델도 1천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한달에만 미국의 온,오프라인 기업들이 발표한 종업원감원 숫자는 13만3천7백명에 달했고 올 1월 한달에는 14만2천2백명을 넘었습니다.

미국노동자들은 매일 “나도 곧 잘릴 수 있다” 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란한 숫자놀음속에서도 정신차리고 속을 잘 뜯어보면 대량해고에는 두 얼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숫자는 엄청나지만 실제 미국내에서 잘린 종업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첫번째 숨겨진 사실입니다. 미국최대 가전메이커의 하나인 월풀은 지난해 12월에 6천명을 줄인다고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줄어든 일자리는 2천개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1천명은 브라질공장 인원이고 6백50명은 아시아와 유럽지사 인원입니다. 미국내 사업장에서 잘린 종업원은 4백명에도 못미칩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은 대부분 50대와 60대의 종업원들로 보너스를 두툼히 받고 명예퇴직했다는 것입니다.

루슨트는 1만6천개의 일자리를 줄인다고 지난달 발표했지만 오하이오와 오클라호마시티 등에 있는 공장은 지금까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돌아갑니다. 발표만 있었지 실행은 아직 없습니다.

때문에 뉴욕의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대량해고발표를 시장에 보내는 ‘구애의 제스처’로 보고 있습니다. 대량해고발표를 통해 회사의 적극적인 비용줄이기 의지를 보임으로써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한편 투자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자는 심산이죠.

최고경영자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크게 절감시켜 수익구조를 개선했다”는 모습을 보여 주주들로부터 신임을 얻을 수 있죠.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제이슨 브람은 “닷컴기업의 감원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라기보다는 단기 수익구조를 개선, 닷컴위기설을 일단 잠재우자는 전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꼼수(?)가 반드시 회사에 유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최근 뉴욕증시가 계속 바닥을 치는 데는 이런 과잉발표가 한 몫했다는 분석입니다. 닷컴주가 많이 몰려있는 나스닥의 몰락은 특히 심해 지난해 3월 최고점이후 현재 55%나 하락했습니다.

이미 미국 연방지급준비위에서 지난달에 두차례에 걸쳐 은행간 단기이율을 총 1%나 내렸는데도 주가가 상승은커녕 계속 곤두박질 치는 것은 이런 과잉발표로 미국경제 전반에 위기의식이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매일 대량해고 소식을 접하는 투자가들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살리 만무한 것이죠. 잠깐의 눈속임으로 시장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얕은 꾀가 오히려 화를 부른 꼴이죠.

이런 가운데 닷컴기업의 인원감축으로 인해 그동안 인재를 확보하기 힘들었던 굴뚝기업과 비영리사회기관,정부기관 등에서 쉽게 쓸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됐다는 것도 대량해고에 숨어있는 두번째 얼굴입니다. 굴뚝기업, 사회기관,정부기관 등에서도 컴퓨터엔지니어와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닷컴열풍에 휩싸여 많은 인재가 대박이 꿈을 안고 닷컴의 정글로 뛰어들면서 굴뚝기업 등에서는 파리만 날렸죠. 더구나 천정부지로 뛰는 닷커머들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도 없었고요.

하지만 이제 길거리로 내몰린 닷커머들이 자신의 눈높이를 낮혀 낮은 연봉을 감수하고 여러 기업과 기관을 찾는다고 합니다. 뉴욕대 도시연구소의 미첼 모스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닷컴위기가 그동안 침체됐던 공공기관과 비영리사회단체의 재도약을 도와주는 셈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닷컴기업에서도 해고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자리를 잃은 닷커머들은 눈높이를 낮혀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사회봉사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도 필요할 듯 합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눈을 새로운 곳으로 돌려보시죠.

뉴욕=김종윤 dalsa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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