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 "경제정책 1번 과학기술입국"
노벨과학상 1949년부터 올해까지 25명
노벨상 제정 첫해 1901년부터 후보 나와
제국주의 열강과 경쟁, 과학 중요성 자각
연구 자립성, 해외교류, 학맥으로 경쟁력
한국 정치판 역사 맥락 모르고 내부정쟁

왼쪽부터 지난 8일 일본 국회 첫 연설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신임 총리와 5일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미국인 마나베 슈쿠로(真鍋淑郎) 박사. [사진=일본경제신문]
왼쪽부터 지난 8일 일본 국회 첫 연설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신임 총리와 5일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미국인 마나베 슈쿠로(真鍋淑郎) 박사. [사진=일본경제신문]
'일본 과학 수퍼위크'가 펼쳐진 한주였다. 일본계 미국인 마나베 슈쿠로(真鍋淑郎) 박사가 1960년대 지구 온난화를 예측하는 기후모델을 연구한 공로로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일본이 25번째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8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신임 일본 총리는 첫 국회 연설에서 미래 경제 성장전략 첫 번째에 '과학기술 입국 실현'을 내세웠다. 과학강국 일본의 과거·현재·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은 어떻게 과학강국을 만들었나

한국이 일본 과학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 1910년 경술국치의 망국 모두 과학기술 국력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일본이 2019년 수출규제로 총공세를 펼친 배경 뒤에도 과학기술이 있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올해까지 노벨과학상 20명을 배출했지만, 노벨상과 별개로 그 전부터 과학기술 강국을 꿈꿨던 나라다.

시작은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이 열어젖힌 근대의 총아는 단연 과학이다. 당시 후발 국가였던 일본은 과학 선진국에 유학생을 보냈다. 이들이 돌아와 일본 과학의 재목으로 성장하고 연구 토양을 가꿔 나갔다. 19세기 일본은 서구로부터 과학 지식의 완성품뿐만 아니라 지식을 만드는 생산 방법까지 도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유럽 문명권에 속하지 않고 가장 빨리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과학의 저변이 갖춰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건 노벨상이다. 노벨상은 1901년 제정됐고, 노벨생리의학상 첫 수상자로 독일 에밀 아돌프 폰 베링이 선정됐다. 주목할 점은 그해 생리의학상 후보자로 일본의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도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그가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베링과 기타사토는 같은 연구실에 소속된 세균학 권위자였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물리학 분야에서 첫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1935년 원자핵 내부에 양성자와 중성자의 매개가 되는 중간자를 이론적으로 예측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유카와 수상 이전에도 일본에선 여러 과학자들이 노벨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기타사토 시바사부로, 스즈키 우메타로(鈴木梅太郎),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등이 대표적이다. 

노벨상은 한일 과학을 비교할 절대적 지표는 아니다.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 개인의 가치관과 19세기 말이라는 시점이 투영된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일본은 당시 서구에서 생산된 과학 지식 배우기에 그치지 않고 제국주의 열강과 연구 경쟁을 펼쳐야겠다는 야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세기 초부터 연구 토양이 다져지고, 그 토양 위에서 연구자들이 세계와 경쟁했다. 

◆한일 노벨과학상 0 vs 25···그 이면에 숨겨진 교훈

한일 과학의 역사는 깊이가 다르다. 일본은 19세기 후반부터 과학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1966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설립을 시작으로 연구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적어도 60년 또는 100년 가까운 차이다. 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에 한국은 왜 일본처럼 못하냐는 이야기가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을 넘어설 수 없는 건 아니다. 지금처럼 추격 전략만 펼쳐선 더 넘어서기 어려워질 뿐이다.

노벨상은 이전에 없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연구에 시상한다. 과학강국과 경쟁하려면 세상에 없던 연구로 판을 바꿔야 한다. 최근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IBS 나노입자연구단장) 등 세계적 연구자가 탄생하고 이들이 후학을 양성하는 점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일본도 노벨상을 받기까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연구 풍토를 마련한 대가들이 있었다. 그 기반 위에서 30~40년 뒤 노벨상 수확을 거뒀다. 또 일본은 제국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맞는 선도 연구에 나섰다. 시대적 맥락 속에서 여러 연구를 태동시켰다는 의미다.

1차 세계대전이란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일본 물리학·화학 연구 환경은 급변했다. 일본은 독일에 의존하던 화학공업 제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됐고 이는 일본 경제 전반에 위협이었다. 이 시점을 계기로 자립적인 화학·물리학 연구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그 맥락에서 1917년 일본을 대표하는 연구기관 이화학연구소(RIKEN)가 설립됐다. 이화학이란 물리학과 화학을 의미한다.

일본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연구 자립성, 해외 교류, 학맥(學脈)으로 경쟁력을 높였다는 사실이다. 1949년 일본 첫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는 순수 국내파다. 연구 성과는 1935년 발표됐다. 그는 젊은 시절 유학을 가지 않고도 일본에서 세계 최고 과학자들을 만났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1922년 일본행 배에서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했고, 독일 하이젠베르크나 덴마크 닐스 보어 등 당시 최고 과학자들은 일본을 방문했다. 

선배 과학자들이 세계 최고 과학자를 초청해 후학들이 연구 트렌드를 알 수 있도록 도왔다. 일본은 과거부터 자국 내에서 연구 자립성을 높여가면서도 해외 교류를 중시했다. 일본은 20세기 초반 이미 도쿄, 교토, 나고야 등에서도 물리학 연구 그룹이 존재했고, 스승과 제자가 대를 잇는 연구 풍토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일본의 연구 풍토를 배우고, 기존 역동성과 스피드 등 장점을 결합하면 일본과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과학기술 입국'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성장전략(國民を幸福にする成長戦略) 이라는 경제정책 첫 번째에 과학기술입국(科学技術立国)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일본 신임 총리 선출에 앞서 지난달 8일 경제 정책을 소개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사진=요미우리 신문]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성장전략(國民を幸福にする成長戦略) 이라는 경제정책 첫 번째에 과학기술입국(科学技術立国)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일본 신임 총리 선출에 앞서 지난달 8일 경제 정책을 소개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사진=요미우리 신문]
일본은 1949년부터 노벨생리의학·물리·화학상 25명을 배출했다. 그중 20명이 2000년대 이후 나왔다. 20세기 초반부터 120년 이상 갈고 닦아진 과학 토양 덕분이었다. 

기시다 총리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를 리 없다. 그가 첫 번째 경제 성장전략으로 '과학기술 입국'(科学技術立国)을 앞세운 이유다.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실현'이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했다. 그는 "성장 전략의 첫 번째 핵심은 과학기술 입국 실현"이라면서 "학부나 석·박사 과정의 재편과 확충 등 과학기술 분야 인재 육성을 촉진하겠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8일 첫 국회 소신표명 연설 원문(일본경제신문)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대학을 형성하기 위해 10조엔(약 106조원) 규모 대학 펀드를 연내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자금은 민관 합동기금으로 조성될 전망이다. 펀드 운용기간은 50년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개발 능력을 키워가겠다는 의미다. 기시다 총리는 디지털, 그린,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 우주 등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투자를 단행하고, 민간 기업의 세제 개편도 약속했다. 또 지방에서 새로운 변혁의 물결을 일으키는 '디지털 전원도시'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반도체 등 전략 물자를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일본은 과거부터 서구로부터 지식의 완성품뿐만 아니라 지식을 만드는 생산방법까지 도입하고자 했다. 제국주의 열강과 경쟁한다는 국가적 목표 때문이었다. 이미 주어진 답만 답습하지 않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며 주도권을 쥐고자 했다. 그 힘이 팽창하면서 우리는 아픈 역사를 겪었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며 선진국, 강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망은 있을까.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두 눈 뜨고 상대를 주시해야 한다. 이를 자각해야 할 한국 정치판은 혼탁하다. 수년간 상대와 나를 선악 구조로 나누며 분열의 정치에 매몰돼 있다. 과거를 살고 있다. 과학계는 미래 지향적인 말과 행동하는 리더를 주목해야 한다. 또 개개인이 과학강국들을 배우고 한명 한명 리더의 역할을 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그 자립성이 사회와 국가를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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