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물리학과 20여년 역사···플라즈마 A 부터 Z '홈런'
'세계최초 기술' 상용화 '플라즈맵' 8월 열린 IFPC서 강연
최원호 교수 "국내 플라즈마 성공사례 유일···많이 배웠다"  
문세연 교수 "플라즈마계 화두 던진 격, 가능성 입증했다"

# 아이언맨이 하늘을 날 때 손바닥의 추진기,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버튼만 누르면 몇 발치 앞으로 보내주는 특수가방이 '이것'에 기반했다. 실제 인공위성, 우주선 엔진과 같은 원리다. 동력장치에만 사용될까?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패널 공정에도 활용된다.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에너지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상용화된다면 현재의 멸균을 넘어 체내 암세포·염증도 선택적으로 제거 가능, 의료분야에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 전망한다. 바로 '플라즈마'다.

플라즈마가 분야를 망라한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국내 25개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한국핵융합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재료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플라즈마 연구 기관이 3분의 2를 넘는다. 국가도 플라즈마가 차세대 기술인 점을 인식, 전력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 플라즈마, 도대체 뭔데?

플라즈마는 고체, 액체, 기체와는 별개의 또 다른 물질 상태로 불린다. 고체에 열을 가하면 액체·기체가 되고, 다시 이 기체에 높은 에너지를 줄 시 기체는 전자와 원자핵으로 분리된다. 즉 온도가 너무 높아 기체상태로 있을 수 없는 물질상태가 '플라즈마'다.

일상 곳곳에 플라즈마는 존재한다. 형광등, 네온사인도 플라즈마로 하여금 발광한다. 우리가 쓰는 전화기 칩 공정의 90%는 플라즈마다. 우주의 99%, 태양, 번개도 플라즈마로 구성돼 있다. 이 같은 자연적 원리를 모방한 게 핵융합연의 KSTAR(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다. 태양의 플라즈마 현상을 땅에서 구현, 친환경적이고 무한한 태양에너지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다.

미세먼지는 물론 수소가스 생산, 폐수 처리, 매연 저감 등 에너지 분야의 플라즈마 활용은 독보적이다. 잠수함·선박·항공기·우주선 등 거대 기계장치의 동력원으로도 쓰인다. 약 2만개의 위성으로 지구상 어디에서든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프로젝트와 달에 사람을 보내는 NASA의 아르테미스 미션에도 플라즈마는 기본값이다. 

특히 플라즈마는 의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존 플라즈마하면 '멸균'에 국한돼있다는 인식이 강한데, 미래엔 이를 넘어 치료용으로 사용될 것이란 전망이다. 플라즈마 조사를 통한 체내 암세포 선택적 제거, 염증 완화 등이 그 예시다. 실제 연구결과 플라즈마가 상처치유 촉진, 염증작용 조절, 지혈 등에 효과가 있으며 레이저나 방사선 치료에 비해 치료시간이 짧고 조직 손상·부작용이 적다고 밝혀진 바 있다.

◆ 플라즈마 그랜드슬램 'KAIST'
 

KAIST는 20여년의 플라즈마 연구 역사를 갖고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KAIST는 20여년의 플라즈마 연구 역사를 갖고 있다. [사진=이유진 기자]
(왼쪽부터) 임유봉 플라즈맵 대표와 그의 지도교수였던 최원호 KAIST 교수. KAIST 연구실이 개발한 홀 전기추력기 앞에서의 기념사진. [사진=이유진 기자]
(왼쪽부터) 임유봉 플라즈맵 대표와 그의 지도교수였던 최원호 KAIST 교수. KAIST 연구실이 개발한 홀 전기추력기 앞에서의 기념사진. [사진=이유진 기자]
국내의 경우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플라즈마 연구가 수면 위로 올랐다. 플라즈마 연구는 크게 ▲우주활용을 위한 인공위성 엔진 ▲태양에너지를 생성하는 핵융합 ▲반도체·디스플레이·식품·바이오 등에 사용되는 대기압(저온 플라즈마) 분야로 나뉜다. 즉 기초부터 응용·활용 전 분야를 망라하는 기술이 플라즈마란 의미다.

KAIST 물리학과는 약 20년의 플라즈마 연구 역사를 바탕으로 이 모든 것에 이정표를 찍었다. 예컨대 기술의 상용화는 과학기술이란 꽃의 '열매'라고 불린다. 기초과학을 포함해 모든 과학이 더는 논문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실생활에 활용돼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점에서 KAIST는 플라즈마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거뒀다. 우선 인공위성 엔진 분야에선 대한민국 최초의 천문우주관측위성이자 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개발한 '과학기술위성 3호'에 플라즈마 엔진을 탑재, 성공적인 궤도 안착을 이뤄냈다. 그 일환인 전기출력 기술은 국내 최초 우주산업 분야 코스닥 상장을 일궈낸 기업 '쎄트렉아이'에 이전, 현재까지 상용화되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 등과 함께 지속적으로 관련 공동연구도 수행 중이다.

핵융합 분야는 당시 이 KAIST 물리학과 연구실을 이끌던 최원호 교수(현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의 전공 분야다. 최 교수는 미국 프리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KSTAR 프로젝트에 협업하는 등 핵융합 전문가로 손꼽힌다. 

특히 대기압 플라즈마의 경우 연구실은 플라즈마 특성 조사 등 진단연구부터 식품연과 식품 접목 관련 공동연구 등 전범위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SCI급 논문 30여편이 나왔으며, 최근 핵융합연과 공동으로 최상위 학술지로 꼽히는 '네이처'에 논문을 공동 게재한 바 있다. 

◆ "어떻게···?" 글로벌 학회서 질문 '봇물'
 

지난 8월 22일부터 4일간 제주에서 개최된 '제1회 핵융합 및 플라즈마 컨퍼런스(International Fusion And Plasma Conference 2022, 이하 IFPC)' 참석자 단체 사진. [사진=IFPC 제공]
지난 8월 22일부터 4일간 제주에서 개최된 '제1회 핵융합 및 플라즈마 컨퍼런스(International Fusion And Plasma Conference 2022, 이하 IFPC)' 참석자 단체 사진. [사진=IFPC 제공]
이번 IFPC에서 초청강연을 맡은 임유봉 대표(왼쪽). 그가 시도한 '세상에 없던 기술'에 현장 전문가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문세연 전북대 교수는 플라즈맵을 두고 "플라즈마계에 화두를 던진 셈"이라고 표현했다. 참고로 IFPC의 학회장이 최원호 교수(오른쪽)다. [사진=IFPC 제공]
이번 IFPC에서 초청강연을 맡은 임유봉 대표(왼쪽). 그가 시도한 '세상에 없던 기술'에 현장 전문가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문세연 전북대 교수는 플라즈맵을 두고 "플라즈마계에 화두를 던진 셈"이라고 표현했다. 참고로 IFPC의 학회장이 최원호 교수(오른쪽)다. [사진=IFPC 제공]
이 같은 연구실의 그랜드슬램은 본교도 알아봤다. 당시 KAIST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Endrun 프로젝트'의 3개 과제를 연구실이 도맡으면서다. Endrun 프로젝트는 약 10개월 내에 연구실 수준의 기술을 사업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제한된 연구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만큼, 한 연구실이 3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한 건 최초였다.   

지난 8월 22일부터 4일간 제주에서 개최된 '제1회 핵융합 및 플라즈마 컨퍼런스(International Fusion And Plasma Conference 2022, 이하 IFPC)' 또한 KAIST 그랜드슬램을 대변한다. 참고로 IFPC 학회장이 최 교수다. 이번 IFPC는 인공위성, 핵융합, 대기압 플라즈마 관련 산학연 전문가들 500여명이 총출동했다.

특히 이번 IFPC에선 유일하게 플라즈마 기술을 바이오 메디칼 산업에 접목한 임유봉 플라즈맵 대표가 초청강연에 나섰다. 플라즈맵은 Endrun 프로젝트를 통해 KAIST 물리학과에서 태동한 딥테크 기업이다. 세계 최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획득한 '소형 플라즈마 멸균기 시스템'을 주력으로 한다. 

플라즈마를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상용화한, 즉 기술의 꽃을 피운 임 대표의 강연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기존 대형 플라즈마 멸균기의 경우 미국 3개 기업만이 FDA 인증을 획득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구현조차 쉽지 않았던 소형 플라즈마 멸균기를 최초로 사업화한 스토리는 산학연 전문가들의 이목을 받기 충분했다. 

더불어 플라즈맵은 최근 KAIST, 세종대와 공동 논문 게재한 '진공 플라즈마를 이용한 인공 표면 처리'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치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 다양한 의료용 임플란트 시장에 적용되고 있는 플라즈마의 혁신적 사례다.  

IFPC에서 플라즈마 응용분야 세션을 맡았던 문세연 전북대 교수는 플라즈맵을 국내에서 플라즈마를 이용한 바이오 분야 성공사례 '1호'라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플라즈마는 대게 서브학문이라 불린다. 보통 타학문들에 녹아있을 뿐, 플라즈마 자체가 전면에 나오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 교수는 플라즈맵이 플라즈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몸소 보여준 사례라고 표현했다. 

그는 "플라즈마가 바이오와 같은 이중학문으로 결합될 때 그 분야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걸 플라즈마가 해결하는, 굉장히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플라즈맵이 보여줬다"며 "플라즈마계에 큰 화두를 던진 격"이라고 극찬했다.

이어 "학회 참여한 외국인 교수들도 '어떻게 창업할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더라. 플라즈마로 이렇게 사업화할 생각은 못 하는 게 일반적이다. 나도 임 대표에게 많이 배웠고, 실제로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성공사례로 보여준다. 최근엔 학생 창업 사례도 나왔다. 플라즈맵은 플라즈마 특허와 노하우 등을 통한 관련 기술장벽이 매우 높아 성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도 "플라즈마가 실생활에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국내외적으로 봤을 때 플라즈맵처럼 성공사례가 많진 않다"며 "제품이라는 게 엔지니어링 중심으로 간다고 하지만, 과학에 기반한 물리적인 실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짧은 시간 내에 사이언스와 엔지니어링을 결합해 제품을 상용화했다는 사실에 나 또한 많이 배우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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