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보이는 앞날 재미없잖아요"
"실패율 99%라도 해볼때 의미" 韓 선택한 리켄 수석과학자
[인터뷰]IBS-GIST 양자변환연구단 김유수 단장 "너무나 안정적인 환경에 연구자로서 긴장감 없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선택해 도전 해보고자 결정" "사람과 장비가 직접 이동하는 공동연구 형태로 한국의 IBS, 일본의 리켄도 첫 사례, 한-일 협력 기대도" "세상에 없는 연구장비 만들며 세상에 없는 성과로 연구진, 산업계에 기여할 것, 기업과도 적극 소통 예정" "무형의 자원 공유하는 프레임 만들고 협력 연구 과정 기록해 후배들이 활용하도록 남길 것"
2024-09-11 길애경 기자
김유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변환 연구단 단장(일본 이화학연구소(리켄, RIKEN) 수석과학자, 동경대 교수, GIST 화학과 교수)은 "다 보이는 앞날,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망할 수도 있는 선택을 해보자 했다"면서 이번 한국행 결정 이유를 밝혔다. 그의 소속을 다 넣은 이유는 당분간 그는 각 기관의 소속 과학자로 공동연구, 협력연구에 주력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덕넷은 오는 12일 양자변환 연구단 개소식을 앞두고 지난 9일 IBS를 방문한 김유수 단장을 만나 한국행보 결정 이유, 앞으로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 "안정적 연구환경 대신 망할 수 있는 선택하기로"
김 교수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실패할지도 모를 험난한 길을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우리나라 나이로 50 중반을 넘어섰다. 1999년 리켄에서 박사후 과정을 시작해 25년간 일본 과학계에서 활동해 왔다. 한국인 처음으로 리켄의 수석과학자로 선정되며 65세 정년 보장, 긴호흡의 연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연구환경이 보장돼 있었다.
더욱이 그의 한국행 결정에 리켄에서도 처음에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일본 역시 인력 유출에 예민한 분위기로 '너마저 가느냐'라는 반응도 있었단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가 평소 과학자로서 추구하는 연구철학이 짐작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일본 과학계 시스템도 잘 알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참여하며 기여한 부분도 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안했다"면서 "과학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이 오면 확정된 양 생각하게 되고 그를 공고히 하려는 성향이 드러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과학자로서 역할도 예산확보나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쪽으로 바뀌고 그를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게 된다"면서 "그렇게 안주하는 게 싫어서 동경대 교수 제안도 받아들였다. 두 가지 역할을 하는라 정말 바빴다. 그런데 여전히 긴장되지 않았고 내 미래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김 교수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그동안 연구하며 확보한 지식, 경험 등 무형의 자원을 상대방과 같이 쓸 수 있는 시스템의 틀을 만들어 보자는데 생각이 닿았다. 기존의 공동연구와 다르게 사람, 장비들이 직접 오고가는 실질적인 공유의 개념으로 말이다. 그의 이 같은 연구 철학을 알게 된 리켄, IBS, GIST도 기꺼이 동의했다. 김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다며 감사를 표했다.
김 교수는 "총량이 정해진 유한의 자원, 유형의 자원은 나눌수록 줄어들면서 과학자 간 경쟁, 다툼의 상대로 보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지식, 경험 같은 무형의 자원은 나눌수록 커질 수 있다. 이 무형의 자원을 좀 더 효과적으로 나누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런 프레임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한일 간의 협력연구도 활성화될 것"이라면서 IBS연구단에 합류한 이유를 들었다.
그는 "인류는 지금 기후변화, 온난화 등 변곡점에 들어서고 있다. 일반적인 가용 자원은 줄어들 수 있고 이를 되돌릴 수도 없다"면서 "기초연구 분야의 예산도 그러하다. 일본에서도 이미 동일본 대지진 때 월급, 연구비의 10%정도가 삭감된 경험이 있다. 재난 구호금으로 몇 년간 지속됐다. 일본이나 대만, 한국은 다 섬나라로 이를 벗어나려면 무형의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면 두 배 넘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 "세상에 없던 연구 분야 간 협력, 해보는데 의미"
김 교수의 한국행으로 IBS도 리켄도 없던 연구문화가 생기게 됐다. 국제협력, 공동연구를 위해 사람과 장비가 직접 이동하는, 물리적 이동의 첫 사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IBS와 리켄은 연구 분야간 협력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김 교수가 제안한 협력 연구 분야는 '양자 기술 및 정밀 측정에 관한 연구.'
김 교수는 "기존에는 기관과 기관, 기관 안에 있는 조직과 조직의 협약인데 이번에는 기관, 부서가 아닌 연구 분야간 협력을 위한 협약이 이뤄졌다"면서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협약은 아직 사례가 없다. 분야간 협약은 어떤 연구자가 특정 조직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협약의 혜택을 받고 장비, 기술, 경험, 지식 공유와 물리적 이동의 편의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방식은 세상에 없던 실험이고 굉장히 큰 실험이다. 그만큼 잘해야 하고 책임감도 크다"면서 "실패할 가능성도 물론 크다. 하지만 계획대로 안됐을 경우 안되는 이유가 있을테고 누군가는 안되는 이유를 해결하면서 더 업그레이드된 제안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번 해보는 데 의미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새로운 실험에 대한 과정을 모두 기록해 누군가 참고할 수 있도록 남길 계획이다.
김 교수는 연구 분야 간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팀워크를 들었다. 특히 그의 연구 방식은 세상에 없던 연구를 위해 기존 장비를 개조하거나 새로운 연구장비를 만들어 활용하기 때문에 팀이 함께 할때 효과도 크게 나타난다고 봤다.
그는 "보통 해외의 탁월한 과학자를 모셔오면 단독으로 와서 처음부터 연구단을 꾸리고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연구진을 모으는 방식이다"며 "하지만 저는 장치를 직접 만들어 가며 연구하는 경우로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직접 장치를 개발하고 운영하게 되면 올드 모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리켄에서도 우리는 독특한 연구집단이었다. 각각 전문성을 가진 젊은 사람들이 와서 전문성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방식, 장치 개발을 계속하며 연구를 해 왔다"면서 "현재 리켄에서도 몇몇이 한국으로 오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 장비 직접 만들며 분자 단위 분석할것
장비를 직접 만들며 연구하는 김 교수의 연구방식은 여전히 지속될 전망이다. 그는 "분석과학, 그중 계면을 연구하게 된 것은 나에게 축복이다. 그리고 지도교수님이 강도높게 지도를 하셨는데 알게 모르게 배운 것 같다"면서 "분석과학은 쉽게 말해 흑, 백이 아닌 더 깊이 들어갔을때 보이는 회색지대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자변환연구단에서는 주사터널현미경(STM)을 이용해 물질의 표면, 계면에서 일어나는 분자 단위의 화학반응을 관찰하고 연구해 물질의 새로운 물성이나 기능을 확인하고자 한다.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장치나 물질을 만드는 것보다는 물질의 작동원리를 분자레벨에서 규명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성능, 더 높은 안정성, 새로운 기능 등을 구현하는 근거를 제공할 예정이다. 연구 성과가 연구진 및 산업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업과도 적극 소통할 예정이다.
그는 연구단의 연구활동에 대해 "물질의 자극원(excitation source)에 에너지를 주면 상호 작용으로 빛이나 전류, 분자의 반응 등 다양한 신호를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검출하면 물질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연구를 20여년간 진행하다보니 결국 분광이라는 과정을 관통하는 중심요소는 다름아닌 대상물질의 양자상태임을 알게 됐다. 물질이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양한 양자상태들이 서로 얽혀가며 물질의 기능과 성질을 만들고 바꾸어 나간다는 개념을 세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현재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것은, 기존의 분광연구에 시간분해능을 부여해, 아주 짧은 시간에 변화하는 양자현상을 실시간으로 계측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라면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유기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촉매 등은 물질의 서로 다른 성질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바꿔서 기능을 발휘하게 한다. 그 근원에는 각 요소 물질의 양자 상태끼리의 상호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 "먼저 손해보며 화학적 케미 커질 수 있도록"
"사람과의 관계는 먼저 양보하는 걸로 시작된다고 봐요."
김 교수는 협력, 실질적인 공동연구의 시작은 기꺼이 손해보기를 즐기며 양보하는데 있다고 했다. 그래야 서로 가진 전문성, 주무기를 나누고 알려주며 새로운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내가 조직안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나중에는 보상이 있다는 믿음을 주면 각자 자신의 전문성을 공유하며 기꺼이 서비스를 하게 된다"면서 "남극의 황제 펭귄의 무리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깊은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동경대만 하더라도 굉장히 큰 조직으로 방향도 확고해 유연성이 아쉽다. 그에 비해 GIST는 젊은 조직이고 필요없이 발목잡는 고인물이 없어 보였다. GIST의 화학과는 서로 손해보기를 기꺼이 즐기는 케미, 그런 문화가 있더라"며 광주행을 결정한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그도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김 교수는 "지금 일본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거 보이느냐"고 물었다. 그는 실제 한국어로만 정확히 말했다. 25년간 사용하며 훨씬 익숙해졌을 일본어 중심의 과학계, 연구개발 용어도 우리나라 말로만 표현했다.
그는 "일본에 처음 갔을때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느라 어려웠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우리나라 문화, 과학계 문화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스팅이 부른 팝송 잉글리시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처럼···"이라며 우리나라에서의 연구활동에 기대를 표했다.
김 교수는 다음 세대에 대한 선배 연구자로서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20여년간 몸 담은 리켄의 문화는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환경을 만든다'는 말로 함축되는데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면서 "IBS와 GIST에서 좋은 환경을 베풀어 줬으니 다음 세대 연구진을 위해, 사회 구성원을 위해, 인류 전체를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IBS-GIST 양자변환 연구단은 12일 오후 2시 GIST C동 대강의실에서 개소식을 갖고 연구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