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KAIST 40년]KAIST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KAIST 뿌리 한국과학원부터 2011년 국내 최고 과학교육기관까지

2011-05-13     허새나 기자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서남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태어나 현재는 과학기술 국가 대한민국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1971년, KAIST의 뿌리가 되는 한국과학원부터 2011년 국내 최고의 과학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 일련의 사진을 통해 KAIST의 40년을 살펴본다.

▲1970년 8월, 한국과학원의 청사진을 그린 실리콘벨리의 아버지 프레데릭
터만 박사(오른)의 한국 방문은 카이스트 설립의 첫 걸음이었다. ⓒKAIST

▲1970년대 초 서울 홍릉 캠퍼스에서 이공계 특수대학원으로 출범한 카이스트는
우리나라 이공계 교육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당시 카이스트의
서울 캠퍼스 전경. ⓒKAIST

▲1971년 4월 14일 과학원, 한국개발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의 합동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어나갈 원동력 축의 큰 그림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KAIST

▲제 1회 신입생 선발 입학시험 모습. 1973년 1월에 이웃 경희대학교 공학동에서
첫 번째 입학시험이 치러졌다. ⓒKAIST

▲1981년 1월 5일 한국과학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통합되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발족하게  된다. (왼쪽부터 이한빈 이사장, 이주천 초대 원장,
이정오 과기처 장관) ⓒKAIST

▲1986년 3월 컴퓨터 수업 모습. 컴퓨터를 도구로 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모든 신입생이 첫 학기에 컴퓨터 과목을 수강하도록 했다. ⓒKAIST

▲한국과학기술대학교KIT의 첫 입학식. 첫 신입생을 맞은 KIT가 1986년 4월 모든 건설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과학기술대학의 역사를 열었다. ⓒKAIST

▲대전 대덕단지 한국과학기술원 기공식. 카이스트는 KIST와 통합 홍릉시절을 보내다가
1987년 다시 분리되어 대덕 캠퍼스로 이전한다. 이때 KIT와 통합 운영하게 되면서 본격
카이스트 시대(한국과학기술원: KAIST)의 보무를 뗀다. ⓒKAIST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사와의 협약 조인식.산학협동 체계는 카이스트의 청사진이
되어준 실리콘밸리에서도 볼 수 있듯 카이스트의 건학이념이었다. 이로써 대학 내에
특수한 목적을 지닌 연구센터나 연구소 등이 하나둘 생겨났다. ⓒKAIST

▲1970년대 과거 축제와 체육대회의 모습들. 학습뿐만 아니라 체력단련에도 열정적인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KAIST

▲KAIST의 역사만큼이나 기나긴 역사를 가진 동아리 모임.  (왼)초장기 태권도
동아리의 모습, (오른)근래, 태권도 동아리 단원들이 시범 보이는 모습. ⓒKAIST

▲1986년 한국과학기술대학, 태울축전의 대단원의 막을 알리는 마라톤대회에는 거의
모든 카이스타들이 편안한 복장으로 참여한다. 삶이 곧 마라톤이라는 말을 증명하듯이. ⓒKAIST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두뇌인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는 활발한 학생교류를 목적으로
해마다 두 학교가 번갈아 개최하는 정기교류전인 ‘사이언스 워Science war’란 이름의
카포전을 벌인다. ⓒKAIST

2006년, 축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하는 콘서트는 카포전의 열기를 식히는 동시에
새로운 열정을 열어젖히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KAIST

▲기계공학동 로비. 학생들은 밤 깊은 줄 모르고 과제 해결을 위해 모여앉아 몰입하고
있다. ⓒKAIST

▲미국 MIT 석좌교수 출신의 서남표 박사는 2006년 카이스트의 13대 총장으로 선임되었고, 2010년 14대 총장으로 재임되었다. 서남표 총장은 학생들을 직접 만나는 계기인 강연에 특별한 열정을 쏟는다. ⓒKAIST

▲2009년 학위수여식, 이명박 대통령이 과학인재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 수여식에

참여했다. ⓒKAIST

▲현재, 카이스트 캠퍼스의 야경. ⓒKAIST

▲KAIST의 힘찬 미래를 그리며... '파이팅!' ⓒKA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