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입국 명제 아래 모두가 하나되다
[사진으로 보는 공업화 반세기④]과학기술 메카의 꿈 대덕서 키워
공업화 초기리더들의 강력 리더십… 연구개발 거점 마련
2012-06-10 이주원·지나라·김지영 기자
국내는 몰론이고 외국서 생활하던 이공계 과학자들도 속속 조국의 부름에 응했고, 그렇게 선진 과학을 배운 이들의 선구자적 노력으로 과학입국의 꿈을 키울 전문연구소들이 하나 둘 과학입국의 바탕을 마련했다.
초창기 과학 리더들은 주위의 반대도 아랑곳 없이 자신의 소신대로 연구기반을 닦아 나갔고, 그들의 결단과 선견지명은 오늘날의 과학한국의 입지뿐 아니라 과학거점도시 대전 대덕의 밑바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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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연구원 대덕분원 부지 전경. 허허벌판이던 이 곳이 훗날 과학한국의 메카가 된다. ⓒ2012 HelloD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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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 조성 초기에 입주한 한국화학연구소. 이곳에서 연구진들은 각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화공업분야의 최신기술을 연구했다. ⓒ2012 HelloD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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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연구소 건립을 위해 136개 국내 화학공업분야의 대표 기업이 기금을 출연했다. 당시 출연한 기업을 잊지 않고자 출연기업 이름을 적어 액자로 만들고 연구원에 걸어두었다. ⓒ2012 HelloD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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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9월 국가계량표준과 공업화에 관한 지역회의가 열렸다. 김재관 표준연 초대 소장의 공로로 1980년 개정 헌법에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라는 조항이 명문화됐다. ⓒ2012 HelloD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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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NBS(미국 표준 규격국)에서 대역량표준기 기증했다. 국가 표준 확립을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였다. ⓒ2012 HelloD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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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1월 한국통신기술연구소와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의 통합으로 출범한 한국전기통신연구소에서 최순달 소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취임 후 최순달 소장은 TDX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12 HelloD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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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12월 반도체 컴퓨터 등 전자분야의 전문 연구를 위해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설립(맨위). 81년 1월 20 과학기술처의 연구개발체제 정비와 운영개선 방안에 따른 정부의 출연연구기관 통폐합안 시행에 따라 한국통신기술연구소와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가 한국전기통신연구소로 통합됐다.(가운데) 83년 제 1연구동 이후 TDX개발로 연구공간이 부족하자 84년 제2연구동 공사에 착공했다.(맨 아래) 초기 ETRI의 역사는 이렇게 TDX개발과 함께 했다. ⓒ2012 HelloD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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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해양공학 수조 건설 모습. 김훈철 선박연구소 초대 소장의 대형수조 건설 결단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발전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지 모른다. ⓒ2012 HelloDD.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