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학생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최형섭 만났다?
글: 이정훈·장형준·한예림 학생
2022-01-20 대덕넷
| 국내외 여건들이 빠르게 달라지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각 분야 이공계 인재들의 역할, 협력 필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교육에서는 국내 과학기술의 역사, 철학들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KAIST 학생들이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박태준 평전' 등 한국의 과학기술 기반을 마련한 최형섭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 철강 산업 발전과 이공계 인재 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박태준 회장의 이야기를 읽고 소감을 전해 왔습니다. 미래 과학기술분야 인재들의 독후감을 두 번에 나눠 실을 예정입니다.<편집자 편지> |
이대환 작가의 박태준 평전을 읽으면서 박태준의 신념과 삶의 태도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최형섭 박사의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읽은 후에는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 발전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아무것도 없던 한국에 어떻게 과학기술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고 한국을 선진국으로 나아가게 했는가를 다룬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쩌다 외부 도움을 받아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체계적인 계획과 현명한 선택 덕분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선배 과학자들의 노고에 존경스러웠고 감사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어른들에게 "나는 과학자가 되는게 꿈이에요"라고 말하면 공통적으로 듣던 소리가 있다. "한국에서 과학자로 성공하려면 석사든, 박사든, 포닥이든 꼭 해외 특히 미국에 나갔다 와야한다."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요즘 생각하면 이게 불편한 진실인 것 같다. 카이스트 교수님들만 봐도 그렇다. 학부 때 서울대를 나와서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훌륭한 사람들의 두뇌 유출이 빈번히 일어날 것이다.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하려면 꼭 외국에 나가야된다는 기준이 잘못되었다. 이는 결국 한국의 과학 분야가 아직 덜 성장했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몇몇 공대 교수님들을 보면 카이스트에서 학석박과정을 다하신 분들도 계시다. 점점 개선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연계 분야로 가면 또 다른 얘기이다. IBS를 설립한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한국은 기초과학에 관심이 적다. 학부 2학년 전공 선택 분포도만 봐도 모두 전산학부나 전기및전자공학부과 70%를 차지하고 자연과학 전공은 10%도 차지 못한다. 외국에 의존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처럼 국가의 치밀한 시스템과 정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선조들의 희생이 너무 감사했고 동시에 미안했다. 그 중 선배 과학자들의 희생이 너무 인상 깊었다. 최형섭 박사만 보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과학을 포기하고 행정, 정책, 과학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 구축을 신경 쓰며 한국 과학 사회를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선배 과학자들이 길을 깔아주었기 때문에 길만 잘 따라가기면 된다. 그래서 공부하면서 불평을 하던 내 과거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고 나 대신 희생한 선배 과학자들을 봐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근본적으로 KIST를 설립할 수 있었고 한국 과학 사회를 만들 수 있게 해준 계기가 결국 조상들의 피값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다시 한번 내 공부 마인드와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국가가 키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공부 외에도 나라 발전을 위해 희생한 선조들을 되새기며 연구를 할 때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실용적인 곳에 적용하면서 나라 발전에 이바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선배 과학자들이 치밀하게 연구하고 계획한 대덕연구단지 개발 부분을 읽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덕연구단지는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연구자의 자세와 생활의 질을 모두 신경 쓰며 지은 단지이다. 그리고 그 중 카이스트도 포함되어 있다. 아직 학부생이라 선도적인 연구에는 참여를 못하지만 연구 분위기를 느끼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바는 바이오및뇌공학 학도로서 근처에 있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IBS나 여러 카이스트 연구실을 컨택해 많은 교류를 계획 중이다. 이를 통해 대덕연구단지의 취지에 맞춰야겠다.
◆ 장형준 학생
유클리드에서 비유클리드 기하학까지의 기하의 변천사와 뉴턴의 운동법칙부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원리와 양자역학까지의 물리학의 역사, 라부아지에로부터 시작된 연금술에서 화학으로의 전환 등 과학과 수학의 변천사는 언제나 나를 학문의 바다에 심취하게 했다. 이것들을 들을 때마다 나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근·현대 과학, 수학까지의 역사를 나름 꿰차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과학 발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과학 교과서에 우리나라 지명이나 사람이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역사 교과서에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부분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박태준 평전'에서 보았듯이 식민지화와 해방, 전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와 과학 사정은 심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형섭 박사의 주도로 시작된 것이 산학협동연구를 진행하는 KIST이다. 여타 어느 연구소들처럼 번쩍이는 최신식 건물을 가지고 출범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시장 앞 은행의 건물을 빌려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난방이 되지도 않는 곳에서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연구가 아닌, 산업체에서 의탁 받은 연구를 말이다. 주야로 일했기에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고 불리기도 했다.
최형섭 박사를 비롯한 여러 교수, 연구원 분들은 연구 뿐만 아니라 과학적 풍토 조성에도 힘을 썼다. 이들로부터, 현재 과학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풍토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선배 과학자들의 노력과 학문적 희생을 통해, 현재 내가 다니는 KAIST가 탄생했고, 대덕 연구단지가 탄생했고, 어쩌면 내가 어릴 적 과학을 접하고, 순수학문을 연구하고 싶다는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익숙한 기관과 연구소들이 들어설 때마다 선배 과학자들의 노력과 희생에 감사함을 느꼈다.
한편, 이들을 통해 한국 과학자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부와 직위보다는 직책과 연구에 집중하는 것, 주야로 연구하며 연구를 생활화하는 것,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는 것, 협력하고 베푸는 것. 이것들이 내가 한국 연구자들로부터 느낀 한국 과학자들의 정신이고 우리가 이어 나가야 할 정신이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이러한 선배 과학자들의 정신을 함양해서 지식 창출국으로의 도약에 보탬이 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한국 과학사에 있어서 우리 세대가 어떠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해야하는 지를 끊임없이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 한예림 학생
대한민국 최초의 정부출연연구소인 KIST를 세우고, 초대 소장, 과학기술처 장관등을 역임하며 과학기술의 오늘을 구축해온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얻은 경험 속 과정에 대한 내용들이 엮어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첫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최형섭 박사님이 가장 강조하신 부분 중 하나인 연구에 임하는 자세였다. 훌륭한 연구의 정의를 스스로 묻게 되었다. 저자가 강조하기로는 훌륭한 연구는 돈이 많다고 되는게 아니라, 연구하겠다는 성실한 마음가짐과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연구자가 가져야 하는 자세에 대한 강조는 결국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부귀영화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스스로 정신무장의 끈을 늦추지 말며 안이해져서는 안된다는 점. 참다운 연구자의 자세는 결국 본인의 직책에 충실해야하며, 학문 그 자체가 본인의 삶이 되어야한다는 부분이었다.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도, 학문에 임하는 자세와 지식의 방향성을 물으며 학문에 전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되었다. 겸손한 자세로, 부단히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나가는 자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는 장기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3대 정책 기본방향 설정이었다. 우선 첫째로는 과학기술발전의 기반 구축이다.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개발 매개체나 환경이 있기 전, 사람이 있어야 하기에 인력양성을 위한 제도와 체제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과학기술 발전의 요체는 인력개발이기 때문이다. 그중 특히나 기능인력에 대한 우대와 관련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학력에 관계없이 어떠한 기능에라도 숙달되면, 최고의 사회적 대우를 받을 수있다는 점을 규정해둔 '국가 기술 자격법'은 인력양성의 첫걸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날에 주는 대통령상 중에서 기능자가 받을 수 있는 기능상을 제정하거나, 기능사 1급이 되면 기능대학으로 갈 수있게해 기능자들이 다니는 학교를 정규대학과 같은 급으로 대우해주는 범국가적인 노력은 가히 놀라웠다. 사회전체가 전문 기능인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대우해준다는 점은 그들의 자긍심과 산업기술개발 장려를 복돋울 수 있었기에. 다소 도전적인 선택이었지만 이는 꼭 우리사회에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두 번째로는 선택적 공업화 추진이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체제로 발전되어야하며, 그러기위해서는 전략 공업에 필요한 전략 기술을 선정하여 중점개발해야한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과학기술의 성장 지향을 위한 풍토를 조성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부분에 크게 공감하였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위해서는 과학기술이 이 나라에 뿌리를 내려 성장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하는데, 이는 전국민적 범위로 인식개선이 확산되어야한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국민이 과학을 이해하고 기술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가장 크게 공감되었다.
국민의 과학화를 통하여 범국가적으로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일상생활을 과학화하는 사고방식을 정착시킴으로써, 과학에 대한 인지구조를 개선시키기위한 계몽운동적 노력이 무조건적으로 함께 선행되어야한다. 또한 풍토조성에 있어서, 체제나 외향적인 기구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태도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는 국가발전에 있어서 지상 과제라는 투철한 이념에 대한 확립과 그 실천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룩시키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 대학 교육에 대한 최형섭 박사님의 의견과 관점의 생각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면 과학을 '아는 교육'에서 '하는 교육'으로 바꿔야 하며,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응용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함양시켜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은 내가 매번 교육에 대해 고민할때마다, 막연히 생각해오던 아이디어였다. 점수와 결과에 매몰되어 그것들에 일희일비하며 남들 쫓아가기 바쁜 허울상의 교육이 아니라, 직접 해봄으로써 하는 교육을 통하여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학은 Why보다도 How에 집중하는 것같다. 답을 빨리 맞추고,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있는지 기능적인 문제해결능력을 집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자세이지 아닐까. 박사님께서 강조하셨던 대학교육의 기본철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뚜렷한 철학이 확립되고 그것에 입각한 교육다운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가. 대학교육의 기본이념을 고민하며, 직접 실행화하고 있는가. 과학기술계를 이끌어나갈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직접 세상과 사회를 경험하며 느끼게 하고, 본인의 역량을 만들어가기전 인격과 소양을 배양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할 수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 교육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속해있는 KAIST의 교육방법을 함께 비교해보기도하였고, 또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며 더 발전시켜 나가야할 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카이스트의 설립목적과 존재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또 앞으로 함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들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는 시간도 된 것같다. 과연 나는 이 나라의 과학기술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소양과 인격을 스스로 배양하기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또 전문지식을 습득하는데에만 사고가 매몰되어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며 반성도 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같다.
한국 과학기술계의 지난 발자취의 삶을 살아오신 최형섭 박사님의 회고록을 읽으며, 한 사람의 인생이 국가 발전에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가히 놀랍기도 했고, 이러한 존경스런 과정이 내게 큰 동기부여와 자극이 된 것 같다. 그리하여 어떠한 자세로 삶을 살아야하며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할지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