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③-의학賞]이세진 존스홉킨스대 교수
"정부, 장기적 안목으로 지원하고 젊은 과학자에 중요 연구 맡겨라"

제23회 호암상 의학상 수상자 이세진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30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융합의과학원에서 만났다.
제23회 호암상 의학상 수상자 이세진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30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융합의과학원에서 만났다.
국내 최고 권위의 제23회 호암상 시상식이 오는 3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개최된다. 호암상(湖巖賞)은 삼성그룹이 고 이병철 창업주의 사회공익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1990년부터 해마다 공학·과학·의학·예술·사회봉사 5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거둔 이들을 선정해 각각 3억원의 상금과 순금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대덕넷은 시상식에 앞서 올해 과학기술 분야 수상자인 김상태(공학상)·황윤성(과학상)·이세진(의학상) 박사를 각각 사흘에 걸쳐 만나본다.[편집자주]

"성공? 흥미로운 분야를 쫓았을 뿐이다. 다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도전했을 뿐이다."

올해 호암상 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세진 존스홉킨스대 교수를 30일 오전 서울삼성병원 융합의과학원에서 만났다.

호암상 수상 축하인사와 함께 소감을 묻자 그는 "아주 대단한 영광이다. 상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면서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의 결과라고 밝혔다.

이세진 박사는 부모를 따라 5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하버드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존스홉킨스대 의대에서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 박사학위(M.D-Ph.D)를 받았다. 2001년부터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2012년 미국 과학학술원 회원(Medical Physiology and Metabolism)으로 선정됐다.

근육성장 억제 단백질인 마이오스타틴을 발견하고 이를 통한 근육 성장 및 발달조절 메커니즘을 구명한 공로가 미국 과학학술원 회원 가입과 호암상 수상 원동력이다. 실제 1997년 이 교수의 마이오스타틴 발견은 그해 과학전문잡지 네이처를 장식했다.

그가 마이오스타틴을 발견하고 기능을 규명하기 전까지, 암 환자들이 호소하는 무기력과 전신쇠약증세의 원인을 몰랐다. 또 근이영양증은 대부분 어린이들에게 발병하는데, 이 아이들은 퇴행성 근육질환으로 상당기간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며 수명이 단축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박사의 연구 덕분에 난치성 근육질환 퇴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세진 박사는 전공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나는 어렸을때부터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 속에서 살며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특히 아주 많은 응용분야와 잠재력이 있는 생물학이 흥미로웠고, 질병을 치료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세진 박사는 의학상 수상자이면서도 의사보다는 분자생물학자로 불리기를 희망했다.

이 박사는 "사실 나를 의사로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의학 학위는 받았지만 트레이닝과정을 거치지 않아, 실제 환자를 진료하거나 처방할 수 없다"면서 "실제로 나에겐 쓸모가 없지만 전문 연구자로 생물학적 관점과 더불어 의학적 관점과 실험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명공학 등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과학적 질문을 많이 가졌는데 의학을 공부한 후 질병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임상과 연구 전반을 조망하는 시야를 갖게 됐다. 마이오스타틴을 연구하면서도 약리 기전의 관점에서 정확하게 그 작용과 원리를 알 수 있었다"고 부연한 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흥미를 느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라. 열심히 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조언했다.

이세진 박사는 호암상 의학상 수상자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의사보다는 분자생물학자라고 소개했다.
이세진 박사는 호암상 의학상 수상자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의사보다는 분자생물학자라고 소개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이 공부한 미국의 MD-PhD 연계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정부의 장기적 안목과 인재육성을 강조했다.

이세진 박사는 "20년 전 사이언스나 네치처 등 중요 저널의 한국인 저자는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서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공부한 연구자들이 저자로 올라간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놀랄만한 변화"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MD-PhD 프로그램에 막대한 장학금을 지원하며 인재를 육성하고, 어느 정도 능력만 되면 바로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나는 마이오스타틴 연구를 조교수가 되고 1년 뒤 바로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기회를 많이 주는 방법 뿐이다. 정부가 젊은 과학자들에게 중요 연구를 맡기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30만 달러(약 3억3000만원)의 상금을 어디에 쓸지 물었다.

이세진 박사는 웃으며 "연구만 하다보니 돈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빚이 많다"며 "기대하지 못한 돈이어서 아직 많이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모기지 갚는데 쓰고, 또 일부는 아들 대학 학비에 보태야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호암상 수상이 한국에 돌아올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됐다. 덕분에 협업을 진행하며 수많은 메일을 주고 받은 가천의대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며 호암재단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박사는 인터뷰 직후 삼성융합의과학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마이오스타틴을 통한 근육 성장 및 발달조절 메커니즘과 함께 향후 적용 가능성 등을 소개했다. 마이오스타틴을 이용한 근육질환 치료제는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박사에 따르면 현재 동물실험을 통해 성능을 확인하고, 몇몇 환자그룹을 상대로 임상실험 단계에 있다.

 

이세진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30일 삼성서울병원 융합의과학원에서 마이오스타틴을 통한 근육 성장 및 발달조절 메커니즘을 소개하고 있다.
이세진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30일 삼성서울병원 융합의과학원에서 마이오스타틴을 통한 근육 성장 및 발달조절 메커니즘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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