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산업 1번지 대덕 .... ‘뭉쳐야 산다’ 위기감 확산....일부는 고속성장 계속

대덕밸리 전자부품 제조 벤처기업 C사의 A 사장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 RI) 책임연구원 출신 A사장이 축적된 기술로 휴대폰 송수신에 필수적인 장비를 개발했지만 판로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장고 끝에 수도권의 ‘잘 나가는’ 마케팅 회사인 ‘J’사와 조건을 놓고 협상중이다. ETRI에서 잔뼈가 굵은 T사의 B사장. 이 사장은 고주파시스템의 소형 경량화 기술을 기반으로 MMIC(능동소자와 수동소자를 반도체 기판 위에 하나로 집적시킨 고주파집적회로)를 최근 제품화했다. 물론 세계적 수준의 제품이라는 찬사이지만 시장은 녹녹치 않았다.

때마침 불어닥친 IT업계의 불황은 이 회사를 생산과 마케팅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몰아넣고 있다. 실리콘밸리발(發) IT산업 위기론이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대덕밸리도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들고 있다.

IT분야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인 인텔의 순이익이 올 2분기 들어 94% 급감하는가 하면 국내 최대 반도체 메이커 삼성전자가 적자로 돌아섰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시장 상황은 최악이다. 대덕밸리도 예외는 아니다. 벤처기업 7백여 개의 평균 연령은 2살 안팎. 걸음마 수준이다.

이 가운데 IT분야 벤처기업은 절반 가량(48%)인데 이들 상당수가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문을 열었다. 2년여 동안 집안에 ‘꽁꽁 숨어’ 기술이나 제품 개발을 마치고 세상에 첫 선을 보이니 시장이 죽어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대덕밸리의 첫 코스닥 기업인 블루코드테크놀로지(www.bluecord.co.kr) 임채환 사장은 “벤처기업은 초기 시장 진입을 어떻게 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면서 “현실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기업이 서바이브(Survive) 하느냐 마느냐”라고 진단했다.

기업 분위기는 최근 대덕밸리 최대 벤처모임인 대덕밸리벤처연합회(www.ddva.or.kr)가 조사한 설문조사에도 엿보인다. 기업 애로사항이 뭐냐는 질문에 1백68명의 벤처기업인 가운데 36%인 72명이 ‘마케팅이 가장 어렵다’고 답변했을 정도다.

반면 ‘한번 부딪쳐 보자’라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첫번째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으로부터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하는 케이스. 반도체 제조공정인 PELED 원천 기술을 확보한 지니텍(대표 이경수·www.genitech.co.kr)은 최근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 이사를 지낸 인사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마케팅에 대한 전권을 주고 국내외 영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뭉쳐야 산다’는 인식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특히 시장과 정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과 기업 간, 사람과 사람 간 네트워킹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런 네트워킹의 대표주자가 대덕밸리반도체모임(회장:이중환 케이맥 사장)과 대덕밸리보안모임(회장:강창구 니츠 부사장) 등.

대덕밸리반도체모임은 지난 봄 30여개 업체가 참가한 가운데 닻을 올린 이후 지금까지 5차례 ‘회합’을 하면서 공동 기술 교류와 정보 교류 등을 통한 새로운 만남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기술베이스’인 대덕밸리 반도체 모임과 ‘생산베이스’인 천안반도체모임이 3차례에 걸쳐 대덕밸리와 천안밸리를 오가며 공동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연락책’ 대덕밸리벤처연합회 이인구 실장은 “처음에는 기업 간에 서먹서먹하기도 했지만 4∼5차례 만나는 동안 상대방의 특성을 알게되어 자연스럽게 공동개발 움직임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해외 틈새공략 작전.

지난주 미국 서니베일에서 폐막된 ‘반도체 축제’ 세미콘 웨스트에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등 반도체 메이커조차참가 인원을 축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덕밸리에서 10여개 업체가 참가하는 등 해외진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기업 간 만남의 공간 벤처카페 ‘아고라’에서 열린 유럽 강좌와 러시아 강좌, 중국 강좌는 연일 벤처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돋보이는 사례는 실리콘밸리와의 교류를 통한 공동 마케팅. 대덕밸리 최대 벤처기업들의 모임인 대덕밸리벤처연합회(회장 이경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인 네트워크인 SKIT(회장 하명환; 50여개사 참여)와 공동 마케팅을 펼치기로 합의했으며 9월쯤 실리콘밸리에서 IR을 가질 예정이다. ‘한번 해보자’라는 분위기 속에 낭보도 잇따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대덕밸리 벤처들의 연이은 코스닥행. 지난 한해 동안 코스닥등록 벤처기업이 2개인데 비해 올 상반기 중에 이미 3개가 넘었다. 업계에서는 올해 연말까지 모두 10개 정도의 코스닥 진출 기업들이 생길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IT 위기’ 속에서도 햇살이 비추고 있는 기업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통신장비제조 벤처기업인 해동정보통신(대표 장길주)의 경우 지난 한해 동안 1백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올 상반기 동안만 80억원의 매출을 돌파했다. 또한 지난해 32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한국인식기술(대표 이인동·www.hiart.com) 역시 상반기에만 30억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IT 위기’를 무색케 하고 있다.

또 지난해 상반기 10억원에 그친 반도체 장비업체 한백(대표 박근섭·www.hanvac.co.kr)도 올해 같은 기간 동안 23억원을 올려 두 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통신장비제조벤처 뉴그리드테크놀로지(대표 이형모·www.newgrid.com)도 상반기 동안 58억원의 계약고를 성사시켰다.

대덕밸리벤처연합회 이경수 회장은 “지난해에 비해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일부 기업들에서 속속 승전보가 날아들고 있는 상태”라면서 “자금이 고갈될 것으로 보이는 후반기가 문제”라고 밝혔다.

<대덕넷 구남평기자>flint70@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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