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KINS의 해외 출장기, 글 정승영 방사선평가실

어느덧 진한 커피향과 마른 풀냄새가 더욱 향기로운 가을이 온 것 같다. 몇일 전에 지난 캐나다 출장의 기억을 한번 되새김 해보라는 부탁을 받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본다.

6월이 여름의 열기를 한층 더해갈 즈음 월성원전부지에 건설중인 삼중수소제거설비(TRF)의 설계 및 제작사인 캐나다 AECL, TRF를 가동하고 있는 Darlington 발전소, 그리고 캐나다 규제기관인 CNSC를 방문하여 여러 현안에 대해 논의 하고자 규제부의 설광원 박사님과 방사선평가실의 송민철박사님 그리고 한수원의 TRF관련 담당자들과 함께 캐나다 출장길에 올랐다.

이번 출장은 다른 출장과는 사뭇 달리 단지 외국을 둘러보러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설계자로부터 TRF설비에 대해 좀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캐나다에 이미 가동중에 있는 Darlington TRF설비의 장단점들을 조목조목 살펴서 현재 건설중인 월성 TRF설비의 안전성을 검증하자는데 그 의미가 있었다.

일단 출장의 시작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내 식은땀을 쏙 뺀 주인공은 바로 미국이었다. 일정 등을 고려하여 캐나다에서 귀국 길은 미국시카고를 경유해서 돌아오도록 예약이 되어있었는데, 얼마전 미국 국토보안부 (U.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에서 미국공항을 경유하기만 하여도 미국 비자가 필요하다는 Suspension of Transit Without Visa를 발동했다는 사실도 모른 체 †˜을 놓고 지내다 출발 예정일이 임박하고서야 이를 알고 항공사와 여행사를 붙잡고 안절부절 하였다.

그래도 효험은 있었는지 늦게나마 캐나다에서 미국을 피해 바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었고 마침내 계획한 날짜에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글쎄 이 오류가 내 자신의 무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억울한 마음은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만약 미국을 지나가려면 비자수속비용 100불을 지불해야하고 나의 개인정보를 낱낱이 털어서 고한 다음에도 혹시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까지 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소중한 청년들까지 앞장세워서 진행 중인 미국과 이라크 무장세력과의 전쟁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캐나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미국공항을 경유해서 캐나다에 입국하려는 많은 외국인에게 자기네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미국이 막고 서서 꼬박꼬박 통행세를 챙기는 격 이었다.

아무튼 토요일(6월 25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같은날 저녁늦게 토론토 Pearson 국제공항에 도착하였고, 토론토 Mississauga에 있는 AECL근처의 Comfort Inn에 가기위해 미니밴을 탔는데 약간 시끄럽고 재미도 있는 파키스탄 아저씨가 잘못 적어간 모텔주소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안내하여 무사히 첫날밤을 Inn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행은 가까이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티 없이 하늘이 맑아서인지 태양은 너무도 강렬하였지만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은 알알이 달콤함을 품기에 너무도 좋은 계절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 쏟아지는 나이아가라 폭포 아래에선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과 통쾌함을 경험할 수 있었고 물보라가 만들어내는 선명한 무지개는 나를 아이들처럼 흥분케 했다.

아무튼 전날 저녁의 비행기 여독을 나이아가라의 물세례로 말끔히 씻고 월요일 아침 AECL에서 회의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먼저 삼중수소 제거설비인 TRF(Tritium Removal Facility)는 월성2발전소 인허가 심사 시 KINS에서 제안한 조건부사항으로 건설되는 시설로서, 삼중수소가 포함된 감속재 혹은 냉각재를 촉매탑과 초저온증류탑을 통과시켜 순수삼중수소를 분리해낸 후 스펀지형태의 금속 타이타늄과의 반응으로 안정화하여 금속용기에 장기 저장하는 설비로서 현재 월성발전소 부지에 건설 중이다.

이 설비를 운영하게 되면 향후 월성발전소 감속재내의 삼중수소농도가 약 60Ci/kg에서 10Ci/kg로 줄어들게 되며 이로 인해 월성원전 계통내의 삼중수소 저감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의 위해도 측면 또한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허나 세상사 좋은 것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 법. TRF는 원리 및 설비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생소한 원자력시설로 KINS는 심사초기에 꼭꼭숨은 여자의 속마음 같은 설비를 파악하느라 한동안 시간이 필요했다.

월요일(6월 27)에 시작한 AECL과의 회의는 회의장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며 다음날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일행은 월성TRF의 핵심설비인 액상촉매공정 (LPCE)과 헬륨을 사용하는 초저온증류공정(CD)을 선택하게된 경위 그리고 삼중수소 저장공정에 대해 미리 준비해간 질의를 쏟아 냈고, 이에 AECL측의 성실한 답변으로 회의의 열기를 더 하였다.

화요일(6월 28일) 오후에야 AECL과의 일정을 마친 후 그날 저녁은 KINS에서 근무를 하시다 캐나다에 토론토에 계시는 김선호 박사님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였다. 그리고 뒤뜰 잔디가 아늑하게 넓은 댁을 방문하여 보석처럼 건강하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 이야기며, 녹녹치 않았던 초기이민생활 이야기로 어느덧 밤이 깊었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수요일(6월 29일) 아침은 Darlington발전소를 둘러본 후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까지 가야하므로 아침 7시에 출발을 하였다. 토론토에서 약 두시간 거리에 있는 Darlington발전소 방문은 우리의 예상대로 출입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Darlington발전소에서 TRF책임자인 Denny Williams로부터 자세한 운전현황을 들을 수 있었고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TRF운전 담당자 토마스와 함께 설비를 상세히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발전소를 배경으로 우리일행은 어깨를 나란히 한 어색한 증명사진을 남기고 오타와를 향했다.

목요일(6월 30일)아침은 우리가 묵었던 Radission 호텔에서 간단히 해결한 후 CNSC에 예정된 방문을 했다. CNSC와의 회의는 차분히 진행되었으며 미리 보냈던 질의 중심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복기하듯 질의와 답변을 풀어갔다.

그런데 CNSC에서 지금 가장 기억나는 것은 방사선 전문가이면서 베트남출신의 머리가 윤기 나게 하얀 Dr. Lily Truong 이었다. 그날 같은 동양인 방문자에 대한 예의였는지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회의장에 나와서 내내 굳은표정의 다른 CNSC 동료들과는 대조적으로 조심스런 말씨와 웃음으로 우리를 대해주었다.

목요일(6월 30일) CNSC에서의 회의를 마지막으로 공식일정을 마무리하고 토론토를 경유하여 토요일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함으로서 긴장속의 출장 여정은 끝을 맺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아마도 비행기 탑승객의 60내지 70%이상이 유학이나 어학연수 중에 방학을 맞이하여 잠시 귀국중인 한국어린아이들과 이 여린새들을 보호해온 결의에 가득 찬 굳은 표정의 한국엄마새들 이었다.

글쎄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한참 마음이 어지러웠다. 나라 사정이 많이 나아지고 우리아이들이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자랑스러워 해야하는지. 하여튼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한국말과 기름진 영어가 섞여 여독에 지친 내 귀속을 내내 헤집었다.

이번출장을 돌아 보건데 설광원박사님과 송민철박사님의 철저한 준비와 한수원의 도움 덕분에 상당히 실속 있는 출장이었다고 자평해보며, 짧은 경험이나마 향후 보다 안전한 TRF설비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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