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지식정보인프라 21호

같은 요리책을 보고 같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도 요리사에 따라 맛은 천지차이가 난다.

혹자는 '많이 해보면 저절로 실력이 는다'거나 '음식 맛은 손맛'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수학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과학 정보가 요리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가장 먼저 조미료를 넣는 순서다. 설탕, 소금, 식초, 간장, 된장 같은 조미료들은 어차피 한데 섞이는 것이므로 넣는 순서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소금분자는 설탕분자보다 알갱이가 작고 재료를 꽉 조여 주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일단 소금을 넣은 뒤 설탕을 넣으면 단맛이 재료에 스미지 않는다. 간장 역시 마찬가지다. 때문에 단맛이 중요한 요리를 할 때는 분자량이 큰 설탕부터 넣어야 제 맛을 낼 수 있다. 또, 참기름은 다른 양념이 재료에 스며드는 것을 방해하므로 맨 나중에 넣어야 하고, 휘발성이 있는 식초 역시 조리 과정의 후반부에 넣어야 한다.

다음으로 음식의 온도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등 맛은 온도에 따라 느껴지는 강도가 크게 다르다. 특히 짠맛과 쓴맛은 높은 온도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식으면 강하게 느껴진다. 식은 요리가 맛없는 것은 온도가 낮아지면서 쓴맛과 짠맛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

또, 단맛은 35℃ 정도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펄펄 끓는 국물을 떠먹어가며 간을 맞추면 소금국을 끓이기 십상인 이유도 그 때문이며, 아이스커피에는 설탕과 시럽을 많이 넣어도 달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맛과 온도의 상관관계 탓이다.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맛을 내는 사과, 포도, 귤 등의 과일을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하면 단맛은 억제되고 신맛은 그대로 남아 맛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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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재료 사이의 궁합도 중요하다. 미역에는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붙는 것을 방지하고 유해물질을 해독해주는 알긴산 성분이 있는데 파와 함께 조리하면 이 성분의 효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역국에는 파를 넣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시금치는 많이 먹을 경우 결석이 생기는 결점이 있는데, 근대와 함께 먹으면 결석의 위험이 더 커지고 반대로 참깨와 함께 먹으면 위험이 줄어든다.

재료 사이의 찰떡궁합으로 유명한 것들도 있다. 당근을 요리할 때 기름을 사용하면 지용성 비타민의 흡수가 좋아지고, 콜레스테롤 걱정 때문에 꺼리게 되는 새우를 표고버섯과 함께 요리하면 표고버섯의 성분이 새우의 칼슘 흡수를 돕고 콜레스테롤은 낮춰 주는 역할을 한다. 또, 배에는 전분과 단백질 분해효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쇠고기 요리에 사용하면 고기를 연하게 하고 소화도 쉽게 만든다.

음식재료가 멋진 요리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마치 마법같이 보인다. 유명한 요리사들에겐 일반인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비밀스런 능력이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요리는 수학 문제처럼 정직하다.

좋은 재료를 정해진 양만큼 사용하고, 정해진 수순으로 만들면 맛있는 음식이 탄생한다. 요리하면서도 공식이나 과학 원리를 생각해야 하다니! 가슴이 답답한 사람도 있을 터.

하지만 뿌듯하지 않은가. 부엌에 서는 순간, 우리는 모두 과학자다. 오랜 시간 인류가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직접 깨우치고 발명해낸 생활 과학의 전령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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