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KAIST 캠퍼스폴리스에서 상담선생님으로 '변신'

"거기 학생, 지난번에 헬멧 안 쓰고 오토바이 탔지?"라며 KAIST 학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람보아저씨'가 "학생, 왜 이렇게 어깨가 축 쳐졌어? 이리와서 커피 한잔 하고가"라고 말하며 KAIST 학생들의 인생 상담선생님으로 돌아왔다.

1986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첫 신입생을 받을 당시부터 12년간을 경비와 캠퍼스폴리스로 근무한 방선권 씨(60세)는 KAIST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람보아저씨'로 통했다. 아침 7시 부터 교내 곳곳을 돌며 안전시설을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람보아저씨'는 교내 규정속도(시속 30km) 위반 차량, 오토바이 탑승시 헬멧 미착용 학생들을 찾아내 가차없이 벌금 스티커를 발부했다.

서너 달 전에 적발됐다가 요리 조리 잘 도망갔더라도 '람보아저씨'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차량이 눈에 띄면 즉시 잡아내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 여기에 15분 이상 지속되는 애정어린 훈계는 '람보아저씨'의 트레이드 마크. 월남전에 참가해 '무공훈장'을 받은 사연을 시작으로 국가유공자이기 때문에 아들을 현역 입대시키지 않아도 되지만 병무청까지 쫓아가 입대시킨 사연에 이어 '안전규정'에 대한 내용까지 전달하기에 15분이라는 시간은 람보아저씨에게는 짧기만 했다. 특히 월남전 얘기는 빼먹지 않아 별명도 '호랑이 람보 아저씨', '람보 아저씨'가 됐다.

12년간을 KAIST학생들과 함께 보낸 람보아저씨는 멀리서 그 모습만 보여도 무언가 '찔리는' 학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학교의 명물. 그런 그가 지난 2004년 정년퇴임을 맞아 학생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학교를 떠나게 됐을 당시만 해도 '람보아저씨'는 KAIST의 전설 속 인물로 사라지는 듯 했다.

◆ "우리 학생들이 불러줘 다시왔지, 안 그랬음 나 여기서 못봤어"

청색 제복에 환한 웃음. "아이고 왔어요? 어서 들어와. 오늘 바람이 좀 부네~ 우리 따뜻한 커피 한잔 할까?" 그가 퇴임을 한지 2년이 지난 후 KAIST 후문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람보아저씨'라는 별명과 예리한 눈초리로 학생들에게 벌금스티커를 발부하고 훈계를 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따뜻함. 그 따뜻함이 전해지는 커피를 사이에 두고 람보아저씨와 마주했다.

커피가 맛있다는 말에 그는 "그럼, 우리 학생들 커피 한잔씩 타주면서 쌓은 실력이니까. 간이 딱 맞지?"한다. "폴리스를 할 때보다는 후문 경비로 있으니 학생들과는 좀 멀어지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그런데 오히려 지나다니는 학생들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게되고 더 친해지는 느낌이야." "어이~ 학생! 뭘 전공하시나?"라며 학생들을 불러세운 람보아저씨는 "커피 한잔 할텨?"라며 학생들을 경비실에 초대한다.

공부만 열심히 하기에도 바쁜 학생들이 온갖 고민들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인생상담을 시작했다는 그에게는 조금 더 많은 학생들의 상담을 해주고픈 마음에 하루 해가 짧다. "하루는 우리 여학생이 고개를 푹 숙이고 후문쪽에서 걸어오드라고. 그냥 보내기에 마음이 너무 안됐어서 잠깐 불러세웠어. 그리고 데려와서 커피 한잔 타주면서 '우리 예쁜 학생이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라고 물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글쎄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더만 그려. 그래서 내 그랬지.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제일로 좋은건 아니다. 그 사람이 웃을 때 내가 같이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인거다 그랬지. 그랬더니 눈물 딱 그치고 공부하러 간다더라고."

람보아저씨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작은 책상 위 성경책에 가 닿는다. "그 학생이 크리스마스에 날 찾아왔드랬어. 그러더니 이걸 삐죽 내밀데.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지. 그 이후로 학생들 상담을 줄기차게 하는겨."

캠퍼스폴리스 시절에는 학생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를 쫓아다니며 해결사 노릇을 했던 '람보아저씨'. "학생들은 저 멀리서 내가 보이면 막 숨기도 하고 무서워했지. 그런데 지금 이렇게 상담해주는 맘이나 그 때 학생들 혼냈던 맘이나 매한가지여"라며 웃는다. 12년을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쌓아온 추억들이 새록 새록 떠오를 때면 KAIST의 발전과 함께 늘어간 람보아저씨의 주름 속에서 미소가 피어오른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학생들 세워 놓고 훈계한 적도 있고, 파출소에 있는 놈 데려다 기숙사에 눕히기도 했지. 헬멧 안쓰고 꽁지빠지게 달아나는 놈 잡겠다고 용을 쓰기도 했고…." 학생들에게도 자신들을 향한 람보아저씨의 애정이 전해져 람보아저씨를 감동시킨 일은 람보아저씨에게 언제 꺼내보아도 좋을 큰 감동을 준다. 퇴임을 1년여 앞뒀을 무렵. 그날도 학생들의 사건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던 람보아저씨의 순찰용 오토바이가 교통사고가 났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KAIST 학생들은 100만원이 넘는 돈을 모아 그에게 전달했다.

"우리 학생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감동도 했고 하는 일에 보람도 많이 느꼈어. 그리고 여기 다시 돌아온 것도 다 우리 학생들 때문이여." 정년퇴임 후 6개월 동안 KAIST와 학생들을 그리는 마음에 종종 학교를 찾았던 람보아저씨는 우연히 마주치는 안면이 있는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텅 빈 듯한 허전함을 느꼈다.

"학생들이 과속을 하고 있으면 '아이고,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많이 다칠텐데'싶고, 불법으로 주차한 차들이 있으면 '이거 차 돌리고 이러면서 우리 학생들이랑 부딪히면 안되는데'싶고 안타까운게 한둘이 아니었지. 그러던 차에 다시 KAIST에서 일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더만 그려. 학생들이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지."

"우리 학생들 아니었으면 나 여기서 못봤을껴"라고 말하는 람보아저씨. "본래도 훌륭한 학교지만 갈수록 성장해가는 학교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큰 자랑거리이고, 여기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젊게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크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어"라고 전한다. 학생들과의 추억이 가장 소중한 재산이라는 람보아저씨는 캠퍼스폴리스가 아닌 경비일을 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하루 세번 이상의 학교 순찰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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