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6년 1월 19일 출생…산업혁명 원동력 증기기관 발명

1712년 미국 다트마우스의 한 철물상. 저압보일러에 직접 연결돼있는 실린더 안에서 피스톤이 응축된 증기에 의해 감압되는 것을 이용한 증기기관이 만들어졌다. 토마스 뉴커맨(Thomas Newcomen)이 만든 이 증기기관은 당시로써는 대기압의 과학적 응용이 적용된 가장 실용적인 배수기관이었다. 그로부터 52년 뒤인 1764년 영국 글래스고대학.

한 수리공은 대학으로부터 뉴커맨의 배수기관 모형에 대한 수리를 의뢰받는다. 기계의 열 효율이 좋지 못한 점을 발견한 수리공은 피스톤이 움직이는 한 개의 실린더는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고 응축실린더인 다른 하나는 항상 차갑게 유지하도록 수리해 열 효율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제임스 와트(Watt, James, 1736)는 스물 여덟의 나이였다. 증기기관 개발로 산업혁명이 일어나도록 한 사람. 19일은 그가 태어난지 꼬박 271년이 되는 날이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이 와트로 여겨지고 있지만 뉴커맨이 만들어 놓은 기계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문제점을 개선시킨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와트가 최초에 뉴커맨의 증기기관을 보완해 만들었던 증기기관은 뉴커맨 것과의 유사성 때문에 특허권 사용료를 받기 힘들었다.

뉴커맨의 기관은 당시로써는 대성공이었고 발명 직후 4년 동안 8개국에 보급됐다. 뉴커맨의 기관을 수리하면서 와트는 '차가운 공기가 피스톤을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았을 때 낭비'라는 것을 발견하고 실린더 위쪽 끝을 막고 피스톤이 증기로 가득한 상자를 통과하도록 만들어 뉴커맨 엔진에서 찬 공기가 하는 역할을 뜨거운 공기가 하게 만들었다.

'보일러에서 증기에 수반되는 공기를 제거해야 겠다'고 생각한 와트는 냉각기에 공기펌프를 달아 커다란 빔이 위 아래로 느리게 움직임에 따라 응축된 증기와 함께 공기가 빠져나오도록 만드는 방법으로 회전운동을 가능케 하는 효율적인 응축증기엔진을 발명하게 된다.

산업혁명의 시초가 된 증기기관을 와트의 것으로 기억하고 그를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의 '완벽주의'가 가져온 연구 성과 때문이다. 뉴커먼은 실린더 내게 증기를 도입해 피스톤을 상승시키고 증기가 냉각되면 실린더 내의 압력이 내려가 피스톤을 대기압으로 내리누르는 '대기압 증기기관'만을 만들었지만 와트는 대기압이 아닌 증기압력으로 구동하는 발명을 해내 오늘날 증기기관의 기초를 구축했다.

열손실을 감소시키기 위해 증기 덮개를 달고 한쪽의 냉각수로 차갑게 유지되는 금속과 접촉시킴으로써 증기가 냉각되는 '표면'냉각기를 생각해내고 증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압력으로 작업을 계속 하도록 해 낭비를 막는 등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증기기관을 만들어내기 위해 완벽을 기했다.

18세기 중엽 영국. 방적기계·직물기계 등이 급속히 발달해 공업이 점차 발전하게 되면서 에너지원인 석탄 채굴이 활발해지고 지하수 배수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펌프를 구동하는 강력한 동력이 요구됐다.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와트의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불어일으킨 원동력이 된 것은 당연한 일. 우리는 그를 산업혁명을 발생시킨 증기기관 발명가로 기억하는 것이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절을 아버지 일터에서 보내는 동안 수세공(手 細工)에 관심을 갖게 된 와트. 1755년 런던으로 가 수학기계공 견습이 됐고 1757년 글래스고대학 수학기계공으로 임명됐다.

1763년 최초 발명품 투시화법기를 시작으로 복동기관, 유성기어장치의 회전기관, 보일러의 매연방지장치, 원심조속기, 압력계 등 발명과 마력의 단위에 의한 동력의 측정을 주요 업적으로 남겼다. 동료 볼트와 함께 완성한 증기기관으로 특허를 얻어낸 와트. 이후부터 모든 엔진의 출력단위가 와트 또는 킬로와트로 계산됐다.

마력이라는 단위를 처음 사용한 사람도 와트. 우리는 그를 증기기관 발명가로 기억하는 것과 함께 엔진의 출력단위, 전기 모터의 용량단위로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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