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흔 KAIST 교수-서유택 에너지연 박사…"창의력이 세상 바꿔"

32살 젊은 나이로 세계적 과학저널인 네이처誌에 이름을 올린 서유택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 서 박사의 연구성과 덕분에 지금까지 알고 있던 '불타는 얼음' 메탄 하이드레이트(hydrate, 얼음이나 물속에 가스 등이 포함된 화합물)의 탐사영역 자체가 뒤바뀌게 됐다. '심해저 깊은 곳에만 존재한다'는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비교적 근해인 깊이 500m 연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기 때문이다.

세계 과학계가 이번 연구성과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서 박사의 연구성과 배경에는 하이드레이트 연구분야 대가로 불리는 이흔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교수와 서 박사는 사제(師弟) 지간이다. 학사과정부터 이 교수와 연구를 함께 해왔으니 벌써 15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긴 세월을 함께 지냈다. 막역한 사이로 발전할 법도 하지만, 서 박사는 아직도 이 교수 앞에서 숨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한다. 강한 훈련과정이 기억에 남아 있어 남다른 경외심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서 박사의 말 한마디 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묻어난다.

서 박사는 "교수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제자 자랑을 좀 해 달라'는 주문에 "이미 서 박사는 우리나라 관련 연구분야 20걸 안에 드는 인재"라고 소개했다. 학문적인 기초가 완성된, 창의력 있는 인재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날 보고 가스 하이드레이트 분야의 대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진짜 대가는 내가 아닌 서 박사"라면서 "'에너지·환경' 분야에서 서 박사 같은 능력 갖춘 이는 교수 중에도 보기 드물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 교수의 '제자 자랑'이 분명 과장은 아니다. 서 박사가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만큼 충분히 검증된 인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4월 이흔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얼음 수소' 기술이 개발될 때도 주도적으로 참여, 공동저자 형태로 등록하는 등, 박사후 연구과정부터 두각을 드러내 왔다.

◆ 이흔 교수 연구실은 창의력 발전소?···"신입은 3년간 수습기간"

이 교수의 제자 자랑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교수의 연구실 시스템을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과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이런 창의력은 반짝이는 아이디어 같은 것이 아닌, '다양한 지식'을 기반으로 집중력을 발휘할 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때문에 이 교수는 연구실에 새 학생이 올 때마다 "3년만 고생하라"는 말부터 한다. 석사과정 2년에 박사과정 1년을 포함한다. 별도의 연구과제를 주지 않고 다양한 연구를 공동참여하게 하며 많은 경험을 쌓도록 한다. 이런 경험이 창의력으로 연결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서 박사도 같은 훈련과정을 거쳤다. 연구를 위해서는 NMR(핵자기공명분석법) 같은 특구 기술을 필요로 했으며, 방사선동위원소 기술, 물리, 화학 등 다양한 공부를 섭렵했다.

서 박사는 "교수님은 연구의 큰 방향만을 잡아 두고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을 강조했다"며 "다른 연구소를 방문해, 화학실험을 위한 질소통을 들고 다니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번에 네이처에 등재된 연구성과 역시 교수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서 박사가 박사후 연구과정을 수료했던 캐나다 국립연구소가 이 교수 연구실과 학문적 파트너 관계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스하이드레이트 분야가 취약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없으니 '나가서' 배우고 오라"고 권유하며 서 박사를 관련 연구소에 파견했다. 서 박사는 관련 연구를 마치고 귀국해 에너지기술연구원에 입사했으며, 서 박사의 뒤를 이었던 이종원 박사(현 공주대학교 교수) 역시 이흔 교수의 제자다. 이들 2인은 모두 이번 논문의 공동제자로 등록돼 있다. 이 교수는 "연구팀 모두에게 동일한 과정을 강조하며 창의력 배양에 주력하고 있다"며 "실제 창의력이 있는 팀원은 연구과제가 바뀌어도 몇 개월안에 적응하는 능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 "능력 검증받은 젊은 과학자 대폭 지원하자"···키워드는 '창의력'

이들 사제지간은 앞으로도 신재생 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주력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앞서 이 교수는 서 박사의 앞날부터 걱정했다. 애써 기른 창의력을 살리기 위해 많은 연구를 시키고 싶은 스승의 욕심 때문이다. 이 교수는 "서 박사가 현재 에너지연에 근무하지만, 그의 창의력을 살리려면 팀 단위 연구체계 보단 개인 연구가 적합할 것"이라며 "서 박사 같은 세계적으로 검증받은 인재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박사는 관련 논문이 네이처에 등재되던 날 예쁜 딸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기쁜 일이 한꺼번에 생겼으니 앞으로 더 잘 해 나가보겠다'는 서 박사는 "교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청출어람 이란 단어가 가장 적합한 인재가 서유택 박사"라며 "서 박사 같은 인재가 길을 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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