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원자력연, 대덕특구본부 등 주요 기관 방문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졌던 지난 23일 대덕연구개발특구는 30년 만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을 맞았다.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 수석이 김광모 (주)테크노서비스 사장(전 청와대 비서관)·박종률 전 SK가스 사장과 함께 대덕특구를 방문한 것.

오원철 전 수석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덕연구단지,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등 국가의 전략적 집중 산업지역을 지정, 우리나라가 단 기간에 세계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밑그림을 그린 일등 공신이다. 대덕특구의 초석을 쌓아올렸던 오 전 수석은 30여년이 지나 '과연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산업전략 밑그림이 잘 가동되고 있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30년 만에 대덕특구를 찾았다.

그는 대덕 뿐만 아니라 여수, 순천, 구미, 울산 등에도 들러 30년 전 추진했던 산업화의 초석이 어떤 결과를 맺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오 전 수석은 대덕의 주요 기관을 하루 종일 방문하는 동안 특유의 힘 있는 목소리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날 오 전 수석은 대덕특구 대표적인 민간 R&D기관인 SK기술원(원장 김완식)을 방문, 김완식 원장과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기술원 내 연구팀에서 개발한 성과물을 소개받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연구성과 전시장에서 각 팀의 성과물을 둘러본 뒤 "모든 시스템이 30년 전 기획하에 착실히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방문한 곳은 한국원자력연구소. 여기에는 박창규 원자력연구소장과 함께 한국 원자력기술 자립의 주역으로 통하는 한필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오 전 수석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박창규 소장에게 연구소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덕은 앞으로도 한국 경제를 계속 책임져나가야 할 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소가 어떻게 움직여나갈 것인지 알고 싶다."

이에 박 소장은 한국형 원자로와 정읍 방사선연구원 등의 사례를 들며 앞으로 원자력 분야의 기술사업화를 초점으로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오 전 수석은 한 회장과 박 소장과 함께 한국 원자력계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뒤 연구소 주요 시설 중 하나인 '하나로'를 견학했다. 그는 견학 내내 기술적인 면에 의문이 생기면 지체 없이 질문에 질문을 거듭했다.

이어 그가 향한 곳은 'LG 화학기술연구원(원장 유진녕)'이었다. 오 전 수석은 유진녕 원장과 각 연구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구원의 R&D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뒤 정보전자소재연구소의 주요 랩(Lab)을 방문했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LCD, OLED 소재 관련 실험실. 오 전 수석은 세계 최초로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인 OLED 핵심 물질을 확보하고 있는 연구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오 전 수석은 "원래 꿈꿔왔던 것이 이뤄진 듯 하다. 3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모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에서 활동하고 싶었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이에 앞서 오 전 수석은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이사장 박인철)에 들러 지난 30년 간 대덕연구단지의 변천사를 듣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는 박인철 이사장을 만나 "30년 전 당시 구상한 것이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했다"며 "정부출연연구소가 민간 연구기관에 대해 역량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한데 오늘날에는 민간과 연계가 없이 독립적으로 분리돼는 부분이 있어 아쉽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박 이사장에게 "대덕특구가 R&D 부분과 민간시장 수요 부분을 연계해 기술사업화에 힘써야 한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현재 오 전 수석은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 고문으로서 관련 홈페이지(http://www.ceoi.org)를 운영하고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을 만들었나'와 '한국형 경제건설' 등의 저서를 꾸준히 집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오원철 전 수석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상공부와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의 주요 산업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박정희 행정부의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였다. 1928년 10월 황해도 풍천에서 태어난 오 전 수석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당시 공군소위로 임관해 1957년 8월 소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사천, 마산, 진해, 대구의 항공창의 운영에 참여하면서 엔지니어로서 활동했다.

5·16 이후 그는 상공부 화학과장으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년 1월 13일에 발표)의 화학공업 부문을 입안하고 정유공장과 비료공장, 시멘트공장 관련사업을 추진했다.

1965년 이래 석유화학공업 육성 계획을 직접 입안해 추진하던 중 오 전 수석은 1970년에는 광공전 차관보가 됐다.

승진한 후에도 석유화학공업 육성은 계속 책임을 맡아 울산의 석유화학 공업단지를 건설(1972년 완공)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1971년 11월에는 경제 제2수석비서관으로서 방위산업 육성의 총책임을 맡게 됐다. 그는 이때 '공업의 단계별 육성'과 '엔지니어링 어프로치'로 요약될 수 있는 '한국형 경제개발 모델'을 정립하고 중화학공업 건설을 위한 구체적 계획인 '공업구조개편론'을 세웠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채택해 1973년 '중화학공업화 정책선언'을 한 후 오 전 수석은 10·26사건 때까지 대통령 정책보좌로서 경제건설, 인력양성, 국토개발, 자주국방을 4대 지주로 삼는 박정희 대통령의 근대화 이념을 실천에 옮기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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