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미래 과기행정은 과학계 고립문화 타파부터"

"과학행정 체제가 미비한 점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과학강국 입국을 원한다면 과학행정의 실수요자인 과학자들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부터 버려야 합니다. 또 있습니다. 서로를 좀 끌어내리지 맙시다. 남을 탓하는 행위는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과학기술부 고위 공직자의 직언이다. 과학행정의 실무부처 관계자들은 선진 과학행정의 구현을 위해선 과학자 마인드부터 폭넓힐 필요가 있다고 이구동성 외치고 있다. 더이상 과학자적 특성을 운운하며 닫힌 마음에 갇혀 있거나,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열린 마음과 넓은 시각으로 과학행정 체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미래를 대응해야 한다는 관료들의 목소리가 높다. '국가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한 배를 타고 있는 가운데 과학행정 공무원은 행정만을, 과학자는 자기 연구과제에 국한된 시각을 견지하고 있어 서로 소통(疏通)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과학행정 공무원들은 '꽉 막힌 연구현장 문화'가 과학계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소 내부에서조차 정보교류가 원활치 못하고, 각종 투서가 만연하는 등 연구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여러 고질적 병폐들이 보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 내 밥그릇만 바라보는 현장과학자…"전체 보는 시각 가져야" 지난 2002년 출범한 B출연연 바이오 분야 연구사업단. 출범당시 과기부는 암 치료 연구에 집중하는 사업단의 테마를 발표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부딪쳤다. 현장 박사들의 반대 목소리와 불만이 잇따라 개진된 것이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왜 우리는 지원해 주지 않느냐"며 나섰고, 심지어 한 연구원은 "대기오염으로 가로수가 죽어가고 있다. 위암, 간암 연구보다 이걸 먼저 지원해야한다"는 기획서를 가져와 담당 공무원을 당혹스럽게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같은 사례는 예산을 움직이는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겪고 있다. 과기부 한 공무원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기획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연구에 열의가 있는 것은 좋지만, 조금 더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새로운 과학정책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출연연 톱브랜드(Top Brand)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도 공무원들은 과학자 집단의 이기주의적 발상을 지적한다. 톱브랜드 프로젝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연구원만의 중점사업을 키우겠다는 것.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해 현장 과학자들이 적지 않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과기부 인사는 "중점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 연구자의 경우 자기 분야에 대한 지원비가 적어지기 때문에 불만을 갖는다"라며 "과학자들이 좀 더 넓은 시각을 갖고 자기 분야를 뛰어넘어 국가 전체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기부를 비롯한 정통부·산자부 등 연구비 집행부처 관계자들은 "과학자와 공무원이 서로 이해하기 위해 진정으로 한 발짝 다가서야 할 때"라는 의견이 많다. 산업자원부의 한 공무원은 "연구자들이 과학행정 시스템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행정부처 시각에서 연구현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행정부처도 과학현장 접근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정부 부처에서는 과학자들의 닫힌 문화를 지적하고 있다. # 연구과제 이해못하면 공무원 전문성 없다? 현장성 부족을 인식한 정부 부처는 기획 단계부터 현직 과학자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의견을 수렴하는 등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수많은 과학자 목소리를 전부 아우를 수 없다 보니, 공무원들은 여러가지 애로사항을 성토한다. 공무원들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을 상대할 경우 그들의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장성이 없고,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연구자 자신의 과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중요한 연구인데 왜 이해를 못하느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과기부 P과장은 "연구자들은 정부의 전문성을 탓하지만, 실제로는 혁신본부와 과학기술부의 명확한 구분도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을 적잖게 본다"며 "현재 과학행정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연구개발 사업을 펴는 것은 국가 연구개발 담당자로서는 갖춰야 할 기본"이라고 밝혔다. # 과학계 고질적 문제 '대화 부재'…"과학자도 행정시스템 이해 필수" '과기행정의 불합리성을 타파하자'는 현장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정부부처 공무원들도 상당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부총리 체제로 새롭게 출범한 지 갓 2년 밖에 되지 않아 진행 과정에서 시행착오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으니 지속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자성적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정부 부처 공무원 입장에서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과학자 스스로 변화된 과학행정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만을 생각하며 '비효율적'이란 잣대를 들이댄다는 관료들의 목소리가 높다. 현 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를 수용해야만 안정적 변화가 가능하나, 이에 대한 시도는 하지 않고 비판이나 부정적 시각만 견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부분 공무원들은 연구자들이 산자부·정통부·과기부 등 주요 과학행정 부처와 비교하며 서로의 단점만 부각하는 사례라든지, 모든 정부사업은 기획예산처 등과 공동으로 추진됨에도 "왜 연구비 집행을 하지 않느냐"는 항의가 많아 애로사항이 많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과학행정의 커뮤니케이션 부재는 공무원들과 과학자 사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구현장 내부에서조차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PBS시스템 아래 있다보니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타 연구부와 공유할 경우 불이익을 입는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 같은 연구소 소속이라도 소속 부서가 다르면 정보공유가 잘 되지 않는다. 단순히 사이가 좋지 않으니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 보다 독자적으로 연구를 추진하는 것이 편하다는 연구현장 내부의 목소리도 크다. B연구소의 한 책임연구원은 "과학계 현장 박사들도 문제점이 크다"고 지적하고 "사업과제를 수주할 때, 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해 로비활동을 펴는 등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 선의의 경쟁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국민에게 다가서라"…홍보마인드 강화 '지적' "홍보에 적극적인 과학자는 전체의 5%도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국가사업의 주체는 '국민'인 만큼, 과학계에서 먼저 대중에게 다가서야 안정적인 과기행정 체계도 구축해 갈 수 있습니다." 과학행정의 밑바탕을 이루는 대중의 과학화. 진정한 과학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과학자 및 공무원 상호간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국민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수단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선 공무원들의 의견이다. 공무원들은 과학자들이 작성한 서류 '해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고충을 토로한다. 보도자료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자료에 전문용어가 너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기에 앞서 과학계 스스로도 알기 쉽고 친근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바램이 많다. 과기부의 한 고위 인사는 "대개의 연구원에서 보내오는 보도자료들을 보면 '무슨 기술 개발했다'는 것만 나오지 그게 어디에 쓰이고 그로 인해 어떤 점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해 그런 부분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며 "보통 연구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무관심하다"고 꼬집었다. 과학자들의 홍보마인드가 '별 것 아닌 문제'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과학행정 공무원들은 "과학계의 부족한 홍보 마인드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라며 아쉬워했다. 과학기술 자체가 국민의 관심을 끌어야만 지원 가능한 대상이 되고, 행정부서 역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 과학계를 보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기부에서 연구조정 업무를 보고 있는 한 공무원은 "국민-공무원-과학자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행정시스템이 바뀌어도 효율이 있을 것"이라며 "정부 부처는 국민의사를 대변하는 기관인만큼 과학계 스스로가 국민에게 먼저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덕넷 특별취재팀 = joesmy@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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