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퇴진한 한국전기초자 서두칠 전 사장, 일본 속 한국기업 경영에도 영향줄까?

지난 9일 한국전기초자 서두칠 사장실에 이례적인 손님이 찾아왔다. 전기초자의 모(母)회사인 아사히글라스 일본 본사로부터 날아온 다나카 부사장. “서두칠 사장의 사임 의사를 수용합니다.”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김영사)라는 한국전기초자의 회생기에 나오듯 기적을 일으킨 주역이 현장에서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사임소식이 전해지며 한국전기초자의 주가는 요동을 쳤다. 9만6천원에서 이틀 연속 하한가 행진을 하며 27%가 하락해 6만9천4백원이 됐다. 기업가치가 27%나 떨어질 정도로 그의 비중은 컸다. 그의 퇴진을 보고 한 외국계 기관투자자는 “일본식 경영에 대한 경종(警鐘)”이라고 표현했다. 주가 이틀연속 하한가

한국전기초자는 구조조정의 총아, 한국식 경영모델의 수립 등으로 평가되며 고공비행을 해왔다. 그러나 조종사가 바뀌었다는 소식 하나에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 오너도 아닌 전문경영인의 거취에 따라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은 한국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 외국의 경우 ‘CEO주가’가 따로 있어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작았었다.

사임소식이 알려진 뒤 만난 서두칠 사장은 극히 담담해 보였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경영 전략을 둘러싸고 아사히글라스 본사와 줄다리기를 하던 끝에 최고경영자로서의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기 때문인 듯싶었다. 뛰어난 경영실적을 보여 ‘발언권’을 갖고 있는 서사장과, 대우그룹으로부터 전기초자를 인수하며 백지위임을 하면서까지 사장직을 ‘강권’했던 아사히글라스의 밀월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 이유는 수요급감이다.

초박막액정(TFT-LCD)의 보급에 따른 시장잠식과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로 모니터용 유리의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수요자격인 가전사들은 주문 감소와 함께 가격인하를 요구했다. 전기초자는 1년 3백65일을 일하는 만큼 원가경쟁력을 갖고 있고, 고객들과의 공존을 위해 가격을 최고 12%까지 내려 공급했다. 수출도 늘려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이른바 코스트 리딩 스트레티지(Cost Leading Strategy). 뛰어난 원가경쟁력을 가진 만큼 다른 회사들이 따라올 수 없을 때 공격적 경영을 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한편 수익을 창출해 차세대 사업으로 생각하는 초박막액정 라인 건설 등으로 전환하자는 전략이었다.

이에 대해 대주주인 일본 아사히글라스는 난색을 표했다. 한국전기초자만 살아남으려는 것이냐는 반론이었다. 일본과 구미, 동남아 등에 20개가 넘는 공장을 갖고 있는 아사히글라스로서는 그룹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던 것. 특히 서사장 주장대로 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본 내 공장 중 몇 개는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가격을 유지하면서 감산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자는 수세적 자세를 보였다. 이른바 프라이스 메인터넌스 스트레티지(Price Maintenance Strategy).

일본 본사는 한발 더나아가 그동안 경영을 전면 위임했던 서사장에게 수출을 줄이라며 본사 영업팀을 전기초자로 파견하는 한편 단독 대표에서 공동대표제로 바꾸며 일본측 임원을 임명하는 등 권한에 견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가격정책 둘러싸고 대립 이에 대해 서사장은 ‘사임’이란 강수를 써가며 저항했다. 한국적 구조조정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만큼 자신이 사임할 경우 아사히 글라스도 피해를 볼 것이란 계산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사장은 감산은 원가상승→가격경쟁력 약화→생산성 하락→감원 등의 수순을 밟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난 3년간 휴가 한 번 제대로 못가며 회사 정상화에 앞장선 직원들이 직접적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사장은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사히 글라스 그룹 전체를 ‘구조조정’하는 안을 내놓았다. 요코나라비(橫竝:일종의 호송선단식 경영)식 경영이 아니라 잘하는 놈은 키우고 못하는 놈은 문 닫아 그룹 전체의 파이를 키우자는 것. 합리성과 전체 파이를 중시하는 미국식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호송선단식 경영에 익숙한 일본 본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로 비춰진다.

지난 연말부터 줄다리기를 하던 양자는 지난달 5일·20일, 이달 5일·9일에 일본 후쿠오카와 부산 등에서 만나며 절충을 모색했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고, ‘50%+1주’를 가진 지배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해 ‘서사장의 사임 수용’을 통보했다. 이번 서사장 파동을 놓고 ‘일본식 경영’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는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의 주가는 현재가치도 중요하나 미래가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기초자는 97년 말 서사장이 취임한 이래 몸을 던지는 경영에 의해 단시간 내에 퇴출 1호기업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급변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최고경영자로서 전권을 갖고, 오너 이상의 열정으로 회사를 경영했기 때문이다. 생산뿐 아니라 판매 전략, 미래 비전 등에 있어 한국전기초자는 아사히글라스의 계열사 이전에 독립된 회사로서 독자적 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의 감산 결정처럼 튀는 놈 정 맞는 식으로 경영에 제약이 가해지고, 독립된 회사로서 움직이기보다는 여러 회사 중 하나로 그룹 전체의 경영방침에 좌우될 경우 회사의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차세대 아이템으로 준비하는 초박막액정 등으로 순조롭게 아이템이 교체되는 기존의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되고, 감원 등으로 노사문제가 야기되면 회사의 앞날이 밝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독자 경영과 달리 아사히글라스 세계 전략의 한 부분으로 ‘단순 생산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은 현금 흐름이 압도적으로 좋고, 노사관계도 안정적이며, 공정도 자리잡은 만큼 당장의 큰 영향은 없겠지만 점차 환경이 변화되며 기존의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미국식 경영’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아무리 본국의 공장이 문 닫을지라도 주주를 위한 가치경영을 하는 입장에서는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의 사장을 해임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오히려 그에게는 실적에 비례하는 성과급이 지급됐을 것이라는 주장.

2001 재도약, 2002 변혁, 2003 성취 등의 비전을 내걸고 변화를 향해 순항하던 전기초자는 主조종사를 잃게 됨에 따라 일정 부분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무엇보다 현장에서의 솔선수범을 바탕으로 나온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어온 만큼 후임 조종사가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부분도 있다.

서사장 퇴임이후 가장 먼저 나온 조치는 사실상 감산이다. 고로의 정기보수에 따른 자연스런 조치라고 회사측에서는 발표하지만 보수기간을 조정하고, 현행 2시간 일하고 10분 쉬는 체제를 개편해 휴식시간을 대폭 늘릴 방침이어서 실제 생산은 3분의 1 이상이 줄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차세대 아이템으로 추진키로 했던 초박막액정표시장치용 유리 생산을 위한 기술 및 설비 도입도 보류키로 했다.

서사장 퇴임에 대해 직원들의 반응은 갈라진다. ‘초짜맨’으로 서사장의 개혁을 지지했던 사원들은 회사내 분위기가 바뀐데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반면 그동안 반감은 있었지만 그의 카리스마에 눌려 말을 제대로 못 냈던 비주류들은 “우리가 노예냐.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사장의 경영스타일을 보고 그에게 대표이사 수락을 간청하고 경영전권을 위임했던 일본측 임원들도 지금은 “1년 3백65일을 일하는 게 사람으로서 할 일이냐.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새로운 경영진은 고로 정비 등의 조치로 인한 인원 축소나 임금 삭감 등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다. 단독 대표가 된 일본 아사히글라스의 코시다 도쿠노스케 회장이 노조측과 이 같은 내용에 이미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사장은 ‘개구리’론으로 대답한다. 찬물에 있던 개구리가 물이 서서히 더워지면 모른 채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물이 뜨거운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움직일 수 있는 활동력을 잃어 손쓰기에는 늦는다는 것이다. 서사장의 경영에 대한 기본 자세는 “경영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란 한 마디로 대변된다. 1천7백여명의 직원은 물론 딸린 식구와 협력업체를 생각하면 최고경영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그는 아침 6시에 출근해 현장을 둘러보고 직원들의 근무교대시간에 맞춰 새벽에도 경영설명회를 열었다. 그가 없어진

전기초자는 당분간은 현금흐름이 우량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변화의 핵심 모멘텀이 사라진 만큼 장기적으로는 변화를 촉발하고, 직원들의 정신자세도 일정기간 지켜지겠지만 자본금 4백억원에 부채비율 37%, 연간흑자 1천7백억원의 화려한 실적은 ‘과거’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그와 같이 일했던 직원은 “외자 유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개별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자국이기주의에 의해 단순생산기지로 만들려는 것을 보며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고, 먹고살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마음 경영’이란 새로운 한국식 경영모델을 세운 서두칠 사장이 없는 한국전기초자의 앞날은 또 하나의 경영 사례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다.

출판호수 596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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