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연 수조 30년史, 6일 대덕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서 기념
연간 약 70여척 시험평가 지속 유지

1967년 한국은 GATT에 가입하면서 수출의 활로가 넓어졌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섬유와 신발을 비롯한 경공업 중심의 산업은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조선업에 뛰어들 생각을 했다. 조선업에 뛰어들기 위해 박 대통령이 선택한 인물은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 정 전 회장은 박 대통령에게 조선소 건설을 제안 받고 기술 제휴와 차관 도입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조선소를 건설한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차관을 해줄 수 없다는 기업들의 냉대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정 전 회장이 선택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정 전 회장은 차관을 해주지 않으려는 은행에 거북선을 내보이며 한국 조선 공업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은행장은 미소를 지으며 한국의 조선소 건설을 위한 차관을 내줬다.
 

▲왼쪽 위부터 선형시험수조 설치 부지 사진과 수조를 건설하는
인부들의 모습, 오른쪽 마지막 사진은 해양공학수조 설립을 기념해
첫 삽을 뜨는 모습. 
ⓒ2008 HelloDD.com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이 조선소 건설 차관 도입을 위해 외국 은행에서 거북선을 꺼내보인 유명한 일화다. 그로부터 40년 후. 한국은 명실공히 세계 1위 조선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반을 세우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맨 땅 위에 조선소를 만든 추진력과 모험성에도 불구하고 조선업 초짜인 한국에게 배를 맡기기엔 위험성이 너무 컸다.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는 조선산업의 경우 실제 배와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안전성과 위험성을 검증한 뒤 실제 배를 짓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 합리적 순서. 그러나 당시 한국엔 모형 배의 사전성능을 평가할 만한 시험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막막한 상황에 구원투수가 됐던 건 박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국해양연구원의 모태가 됐던 한국선박해양연구소의 설립을 지지했고, 1978년 선형시험수조의 완공에도 조력했다. 사전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수조를 갖추게 된 한국은 조선 강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한국 조선의 역사와 함께 해온 해양연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이하 MOERI·소장 임용곤)의 선형시험수조가 6일을 기해 30주년을 맞았다. 같은 날 1998년 완공된 해양공학수조 역시 10주년이 됐다.

◆ 1년에 70척 제작…"바다와 똑같은 환경 갖춰"

▲배를 제작하는 과정. 주문에 맞는 맞춤 제작 시설이 연구소 내 자리하고 있다. ⓒ2008 HelloDD.com

"1년에 보통 60∼70척 정도 제작합니다. 한 척 하는데 4000만원에서 5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들죠. 기간은 보통 4∼5달 걸립니다. 실제 배를 짓기 위해 시험하는 모형선이기 때문에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수조에서 바다와 똑같은 환경을 갖춰놓고 배를 시험하기 때문에 오차가 거의 없죠."

반석호 MOERI 해양운송연구부 부장은 선형시험수조에서 23년을 일해온 전문가다. 그는 "선주의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성능으로 보는 것이 연비와 엔진의 크기, 회전수, 속도"라며 "가능하면 같은 엔진이라도 다른 요소에 따라 배가 빨라질 수 있어 제대로 측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MOERI에서는 건조 이전에 선박의 모형선을 30분의 1이나 40분의 1로 제작해 유체역학적인 성능과 효율을 최적화시키고 설계에 반영한다. 모형선을 수조에 띄워 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선형시험수조 위 모형배가 캐리지에 고정돼 있다. 이 곳에서 저항과 추진 및
조종 평가가 수행되게 된다.
ⓒ2008 HelloDD.com

선형시험수조에서는 모형선의 ▲국내외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선박의 기본 성능 평가와 ▲해군, 해경 등의 특수 함정 및 잠수정의 선형 평가 및 개발 ▲추진기 및 프로펠러 성능 시험 및 설계 ▲해양구조물, 시추선 등의 내항성능 등을 평가한다.

시험항목으로는 ▲저항시험 ▲자항시험 ▲프로펠러 단독성능 시험 ▲반류분포계측시험 ▲유선조사시험 ▲파고계측시험 ▲유장계측시험 등이 있다. 반 부장에 따르면 실제 바다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조파라는 것을 이용해 바다 위 파도와 같은 웨이브를 만들어낸다. 똑같은 파고가 전달되는 것을 2차원 파도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 해상 위 파고는 제멋대로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 문제. 그는 "3차원 파도를 해양공학수조 위에서 재현할 수 있어 실제 바다 위에 있는 것처럼 성능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양공학수조는 파고 뿐만 아니라 바람과 조류 등을 재연, 연구소 속 조그마한 바다를 연상케 한다.

▲실제 해상 위 조건이 그대로 재연되는 해양공학수조. ⓒ2008 HelloDD.com

선형시험수조에서는 저항·추진·조종 평가를, 해양공학수조에서는 모형선의 운동 성능을 시험할 수 있다. 실제로 본 선형시험수조는 끝이 점으로 보일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모형선을 고정하는 캐리지(carriage) 위에는 배의 성능을 시험하는 여러 설비들이 갖춰져 있었고, 그 위에서 연구원들이 작업하는 공간이 있었다.

캐리지가 움직이면 고정된 모형선도 함께 움직인다. 바다 위를 전진하는 유람선처럼 200m 길이의 수조를 항해하면서 성능 평가가 진행된다. 반 부장은 "선형시험수조와 해양공학수조에서 성능을 정확히 평가하기 때문에 성능 향상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선형시험수조 캐리지 위에서 본 수조, 캐리지를
움직이는 연구원, 캐리지를 움직이는 동안 모형선의 성능을 보여주는 컴퓨터,
캐리지 위 조종실에서는 언제나 연구원들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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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부장은 선박성능평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파했다. 그는 "선박 한 척을 지을 때 마다 모양이 다른 주문생산이기 때문에 평가 과정 속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바로 수정해야 한다"며 "그러지 못할 경우 거액의 손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안을 위해 칸막이로 가려놓은 모습. ⓒ2008 HelloDD.com
 실제로 수조 밖 모형선을 만드는 곳에서의 사진 촬영은 쉽지 않았다.

기업마다 모형선의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고, 또 그것이 기업의 비밀로 이어지기 때문. 반 부장은 "모양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기 때문에 업체들 사이에서는 비밀"이라며 "알려질 경우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반 부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발전을 위해선 수조의 크기를 좀 더 늘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성능 평가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좀 더 막강한 조선 왕국의 실현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1978년 설립…水槽 30년사를 돌아본다

▲선형시험수조 전면 모습. ⓒ2008 HelloDD.com

선형시험수조 설립으로 한국 조선업의 부흥이 도래했다. 선형시험수조와 해양공학수조는 한국 조선업체의 기술 경쟁력 향상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 영역을 개척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이다.

선형시험수조는 1978년 3월 완공돼 한국의 조선산업계와 학계, 해군과 정부 등의 수요에 부응해 선형 개발을 수행해 왔다. 지난 30년간 총 1200척, 연간 약 70여척(약 40과제, 25개 조선사, 약 60억원)의 시험평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산업계를 지원해 왔다.

선형시험수조는 대형 선박 건조 이전에 선박의 모형선을 제작해 선박의 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예측하고 개선해 안전하고 경제적인 선박을 개발·설계·생산하기 위한 실증시험을 하는 연구시설. 총 200m(길이)×16m(폭)×7m(깊이)의 규모를 자랑하는 직사각형 대형 수조다.

수조를 만들기 위해 당시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잠시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예산을 받기 위해 정부와 외국을 돌아다니며 지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지원을 받아 쓸 수 있었다.

▲UNDP에서 차관을 받았다는 증명패 ⓒ2008 HelloDD.com

당시 어려운 나라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 예산을 받았지만, 수조를 짓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반 부장은 "후진국에 도움을 주는 UNDP(국제연합개발계획)에서 선박연구소 설립을 위한 무상 지원자금 140만 달러가 확정, 1983년 종료시까지 230만 달러가 투입으로 수조 설립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1981년부터 시작된 ADB(아시아개발은행) 차관으로 5년간 810만 달러가 투입, 이 예산으로 122종의 기계장치와 연구 기자재를 마련했고, 연구원들의 교육 훈련과 기술수준을 향상시켰다. 반 부장은 "당시 한국에서 처음 설립된 선형시험수조를 통해 많은 배가 이 곳을 거쳐 출항했다"면서 "지금은 각자의 수조시설을 갖춘 국내 최대의 조선업계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역시 이 곳을 거쳐갔었다"고 밝혔다.

▲해양공학수조 측면 모습. ⓒ2008 HelloDD.com

해양공학수조를 비롯해 선형시험수조는 국내 조선업체의 기술 경쟁력 향상 뿐만 아니라, 국외 시설사용 시 발생할 수 있는 경쟁국가로의 핵심정보 유출방지에 기여한다. 또한 국외 설비 사용시 해외로 지출되는 비용 약 100억원을 절감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현재 MOERI는 수조 시설을 갖추지 못한 중·소 기업들의 배 사전성능평가를 지원하고, 연구개발 노하우를 국내 조선소내 연구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등 한국 조선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MOERI는 국내 뿐 아니라 국제 공동연구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ITTC(International Towing Tank Conference:국제수조회의)는 선박과 해양구조물의 모형시험과 이론적 연구에 관한 정보자료교환, 그리고 연구방향 제시를 위해 1932년 각국의 수조 대표자로 발족된 국제 학술회의 기구다. 3년 마다 한 번씩 회의가 개최되는 ITTC에 우리나라는 1978년 제 15차 회의부터 참가했다.

총 13개 부분의 커미티에서 MOERI 연구원 5명이 위원으로 참석해 활동중이다. 반 부장은 "커미티의 위원으로 위촉돼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연구활동을 인정해 준다는 의미"라며 "유럽 수조의 역사가 오래 됐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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