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을 보고 뛰고 있는 벤처기업들은 많지만 '글로벌 스탠더드' 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향후 기술적 흐름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무대에서 한국기업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이 IT라는 이름으로 여러 산업 분야의 회사들을 모여서 일회성 행사를 남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철저한 기획과 프리마케팅으로 세계적인 투자설명회, 전시회 등은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반도체 관련 기고를 하고 있는 김홍덕세미컴대표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주]

지난 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반도체 벤처 대회 (Semiconductor Venture Fair)가 열렸다. 인포캐스트라는 회사가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이 행사에서는 반도체 관련 회사들과 VC들이 참석, 진지하고 차분하게 대화.상담이 이뤄졌다. 90여 회사가 참가한 이 행사에는 300 여명의 반도체 분야 전문 투자 심사역과 엔젤 투자가들이 모였다.

참가기업들은 6개의 룸에서 동시에 프리젠테이션을 가졌다. 이틀간 가진 모두 180회의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이들은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자사의 독특하고 경쟁력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비젼을 제시, 자금유치를 통한 도약을 꾀했다. 이들 중 2000년에 설립된 회사 수가 20여개, 지난해 설립된 회사만도 8개나 되었다. 모두가 경쟁회사의 비즈니스 진척 상황을 파악하고 분야별 전문가들의 업계분석과 전망을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보다 신뢰감 있는 회사를 찾아 건실한 투자를 하려는 열기는 20분의 세션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어 로비 이곳 저곳에서 개별적인 상담이 계속됐다. 이 중 네트워킹 프로세서에 관한 칩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들간의 투자 유치 경쟁이 가장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신생 회사들이 비즈니스 디벨롭먼트 분야를 아웃소싱해 전문적인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해외 마케팅 인력.채널이 부족한 국내 주문형 반도체 회사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 캐피탈을 비롯한 투자 회사들의 중역들이 중심이 된 공개 패널 세션에서는 이동 통신.무선 시장을 놓고 커지는 SoC및 내장형 메모리 칩 그리고 반도체 지적재산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투자를 받으려는 회사나 투자회사 한결같이 “우리는 팀 어프로치를 함께 한다”는 자세여서 한국에서 가끔씩 보여지는 일방적인 저자세 혹은 수치를 동원한 장미빛 비전 제시와는 좋은 대비가 됐다. 여기에서 만난 한 투자 자문역은 투자한 회사의 마케팅.금융 전략회의를 매주 정기적으로 가지지만 개별 회사의 경영과 전략에 개입은 철저히 배제한다고 했다.

이스라엘, 독일, 캐나다에 본사를 둔 반도체 회사들은 더러 프리젠테이션을 했지만 아쉽게도 한국 회사들은 전혀 없었다. 이들 중 어떤 한 미국회사는 그 경쟁사인 한국회사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젠 우리도 국내에서만의 SoC개발.판매에 머무르지 말고 해외에서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및 프리 마케팅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IT라는 이름으로 여러 산업 분야의 회사들을 모아서 하는 마구잡이식 행사는 지양해야 한다. 보여지고 발표하기 위한 수치 제시용 행사를 위해 정부 산하 기관이나 단체가 하는 IR행사, 전시회에의 참가비를 지원하고 한국관을 만드는 일… 이런 것들 만으로는 점점 전문화되는 하이테크분야의 마케팅 추세를 따라갈 수 없다.

실리콘 밸리를 자주 오가며 느끼는 것은 우리도 이젠 특정 산업의 전문 마케터.투자회사들을 상대로 이런 이벤트를 기획.운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대만은 올해에 “대만 모바일 데이”, “대만 바이오 데이”등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홍덕 세미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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