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KAIST '사운드볼' 개발…'소리' 자유자재로 갖고 놀다

김양한 교수팀, 소리간섭현상 이용 연구 박차
보강과 상쇄로 인한 소리 제어…"아직 개선할 부분 많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잠시 사색에 빠지고 싶은 욕구.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개인적인 활동 조차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나에게 좋은 음악이 다른 식구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로 다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TV 시청을 위해 볼륨을 크게 튼다고 해도,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볼륨을 줄이려고 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 사람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한 장소에서 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두 사람이 각자의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과학적으로 답은 '있다'. 바로 KAIST(한국과학기술원·총장 서남표)에서 '사운드볼'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버추얼 스피커라고도 부르죠. 소리를 볼 모양으로 집중시켜서 한 공간 안에 있어도 소리를 다르게 들을 수 있고, 안 들을 수도 있는 거죠.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현재의 연구개발을 좀 더 진행시키면 손가락으로 그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어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허허허."

KAIST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RHR:High Risk High Return)' 정책 지원으로 '사운드볼(Sound Ball)'이라는 새로운 컨셉의 음향 시스템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김양한 기계공학과 교수. 이미 2007년 '음향집중형 개인용 음향시스템'을 개발해 낸 바 있는 그는 이 세상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며, 원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소리' 박사다.

김 교수가 개발 중인 사운드볼 음향시스템은 2007년 개발된 음향집중형 개인용 음향시스템의 확대된 개념. 음향집중형 개인용 음향시스템이 컴퓨터 모니터에 소형 스피커 9개를 수평으로 배열, 컴퓨터를 사용할 때 사용자의 귀 주변에서만 소리가 들리게 하는 시스템이라면 사운드볼은 공간으로 확대된 개념인 것이다. 


이는 새로운 정의의 3차원 음정을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큰 체육관이나 공공기관에서 방송을 할 때 한 사람에게만 소리를 집중해서 방송을 듣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집에서도 TV 시청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세상이 바뀌는 거죠. 3차원 음향을 도입하게 되면, 극장도 바뀌게 되고, 집에서도 원하는 사운드볼을 들으면서 쉴 수도 있는 거죠. 아무에게도 방해를 주지 않고 디스코도 출 수 있고, 요가도 할 수 있고요. 기대되지 않습니까?"

◆ 보강과 상쇄로 인한 소리 제어…"아직도 개선할 연구 많다"
▲쇠파이프로 연결된 둥그런 모양의 공간 안에 32개의 스피커가 사방에 달려 있다. ⓒ2010 HelloDD.com
사운드볼은 소리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고 사용자만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아니면 어느 공간에서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공간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상을 실현한 개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이는 소리가 2개 이상의 파동으로 섞여 가면서 간섭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진동이나 파동과 같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인 위상이 같게 되면 서로 만나 소리가 커지게 된다. 반면 위상이 반대인 파동끼리 만나면 작아지게 되는 것. 소리가 커지는 경우를 보강간섭, 작아지는 경우를 상쇄간섭이라고 하는데, 김 교수팀의 사운드볼은 청취영역에서 보강간섭이 일어나고, 다른 장소에서는 상쇄간섭이 일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김 교수팀은 약 2∼3평 남짓되는 공간에 쇠파이프와 스피커로 연결된 공 모양의 공간을 구축했다. 사방에 달려 있는 32개의 스피커에서 서로 다른 주파수의 소리를 내게 해 가로 세로 80cm의 정방형 공간의 청취영역을 만들었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스피커가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청취영역과 제어영역은 넓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는 32개의 스피커로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원 모양으로 달려 있는 32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주파수의 소리가 정방형의 청취영역에서는 다른 공간보다 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면 제어 영역에서는 청취영역에서보다 소리가 작다. 제어 영역에서도 각도에 따라 소리의 크기는 차이가 난다.

김 교수 연구팀의 장지호 학생은 "어느 한 곳에서는 소리가 나고, 어느 곳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게 제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상태"라며 "일단 지금의 상태에서 점점 공간의 크기를 확대해 나가면서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개념이 실용화 될 경우 남에게 피해 줄 걱정 없이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음아고가 소리를 제어하며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인다.

◆ 10년 넘게 진행해 온 연구개발…"소리에 미쳤다"
▲ 직접 만든 가야금과 함께 포즈를 취하는 김 교수.  ⓒ2010 HelloDD.com

사운드볼과 음향집중형 개인용 음향시스템은 김 교수가 10년 넘게 진행해 온 연구 분야다. HRHR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실험실 조차 꾸릴 예산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김 교수는 "예산이 없어서 많이 고생을 했죠. 그러나 예산이 없다면 그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지금은 그래도 실험실이 꾸며진 상태지만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종이에 그리면서 연구를 했죠. 지금은 아주 좋아진 겁니다"라고 말했다.

예산이 없어도 즐겁게 연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김 교수의 소리 사랑 때문이다. 일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은 바로 그의 연구실. 그가 직접 만든 가야금과 바이올린이 걸려 있고, 소리에 대한 각종 서적들로 발 디딜틈이 없다. 취미가 전공이 된 케이스다.

"우리 세대 때는 음악을 좋아해도 그것을 직업을 삼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엔 음악하면 다 굶어 죽는 줄 알았죠. 그래서 음향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 음향학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들 한 마디씩 했었죠. '한국에 가서 써먹을 곳이 없을 텐데 어떻게 할 거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음향학에 대한 분야가 유망해져 있더라고요. 시끄러운 소리도 줄여야 하고, 또한 개인생활이 늘어가면서 음악 소비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죠."

한 마디씩 끝나고 '껄껄껄' 웃는 모습이 소탈해 보였다. 재미있게 말하는 걸 좋아한다는 그의 강의는 언제나 인기 만점. 어려운 공학 개념도 쉬운 말로 이해가 갈 수 있도록 풀어 설명하기 때문에 김 교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김 교수는 "학부생들에게는 인기만점 교수님이지만, 대학원생들에게는 호랑이 교수입니다.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힘들지만 지금까지 연구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을 많이 준 대학원생들에게 많이 고맙다"며 "앞으로 계속 연구를 진행하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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