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연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역학센터 책임연구원

◆증기기관차의 증기가 요리도 한다고?

몸집은 조그만 놈이 소리 하나는 우렁차다. 피식 피식, 폭폭, 폭폭, 푸아앙-. 기이한 소리가 절정에 달할 즈음 마침내 요리가 완성된다. 뚜껑을 열어 요리를 꺼내면 신기할 정도로 부드럽고 쫀득한 맛이 입을 사로잡는다. 바로 압력솥 이야기다.

쫀득한 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선 압력밥솥으로 더 많이 통용되긴 하지만, 어쨌든 이 조그만 솥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거칠게 김을 뿜어내며 들판을 달리는 증기기관차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리가 다 될 즈음, 작은 구멍을 통해 씩씩대며 증기를 뿜어 올리는 모습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압력밥솥과 증기기관차는 실제로도 동일한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형제지간이다. 프랑스인 드니 파팽(Denis Papin)이 그 아이디어의 주인공이다. 파팽은 1679년 증기 찜통을 발명하고 영국에 특허를 냈으며, 다음해 왕립학회에서 수증기의 압력으로 음식을 만드는 이 새로운 조리 기구를 발표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것이 바로 압력밥솥이다. 당시 파팽이 내놓은 압력밥솥의 구조는 압력솥 그 자체로 단단하게 밀폐할 수 있는 덮개와 불필요한 증기를 날려 보내기 위한 안전판을 갖추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는 압력밥솥을 만들 생각을 했던 것일까? 파팽은 원래 의사가 꿈이었다.

1647년에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당대의 유명한 과학자인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를 만나면서부터 과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위헌스가 몰두하고 있던 것은 실린더 안에서 소량의 화약을 폭발시키면 진공을 만들 수 있고 그 진공이 동력을 만들어내는 화약 진공 엔진이었다. 파팽은 화약 대신 다른 걸 선택했다. 증기였다.

그는 1679년 최초의 피스톤 증기 엔진을 만들었다. 파팽은 이 피스톤 증기 엔진을 동력으로 외륜선을 제작해 엘베강에 띄웠지만 바로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뱃사공들이 자신들의 밥줄이 끊어질 것을 염려해 외륜선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이유로 실용화에 실패하긴 했지만 하지만 그가 설계한 증기기관은 이후 다른 사람들이 개량해 산업혁명에 크게 기여한 증기기관차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파팽이 증기기관만큼이나 열정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 압력밥솥이었다. 그가 특별히 요리에 재능이 있거나 조리 기구 발명에 호기심이 있어서 연구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증기를 이용해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 수는 없을까?" 늘 다루어서 익숙했던 증기의 원리를 이용해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 보려고 궁리하던 그에게 압력밥솥이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압력밥솥과 증기기관은 둘 다 원리가 같았다.

압력밥솥 안에 있는 증기가 솥뚜껑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실린더 안에서 증기가 피스톤이 움직이는 모습과 유사하다. 파팽에게 증기는 이렇게 두 개의 서로 다른 발명품을 탄생하게 한 마법의 힘이었다.

◆직접 요리하며 압력밥솥 자랑해

일반 냄비에 감자를 삶으면 30분이 넘게 걸리지만, 압력밥솥에 삶으면 시간은 반 이상 단축된다. 맛도 훨씬 좋다. 왜 이렇게 빠를까? 왜 이렇게 부드러운 맛이 날까? 압력밥솥은 뚜껑을 꽉 닫아두기 때문이다. 뚜껑이 꽉 닫힌 솥 안에서는 수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잔뜩 모인다. 밥솥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물이 끓는 온도가 110~126도로 높아진다. 밥솥 안의 음식은 훨씬 빨리 한층 부드럽게 조리된다. 이윽고 압력이 일정 정도에 이르면 배기 구멍을 통해 증기가 빠져나가면서 요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것! 파팽도 자신이 만든 압력밥솥으로 요리한 맛있는 음식을 여러 사람 앞에서 자랑하길 꽤나 즐겼던 모양이다. 마치 주부들이 새로 장만한 주방기구를 뽐내고 싶어서 매일같이 갖가지 요리를 만들어 이웃들에게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오래되어 딱딱해진 쇠고기라도 이 압력밥솥이 있다면 문제없습니다. 최상품 영계처럼 부드럽고 맛있게 요리할 수 있거든요!" 자신감에 찬 파팽은 다양한 조리법까지 직접 기록했다. 양고기, 토끼고기, 쇠고기, 장어를 이용한 메인 요리에서부터 콩과 뿌리채소를 푹 익힌 사이드 메뉴, 그리고 버찌나 자두같은 과일로 만든 디저트까지 체계적이고도 다채로웠다.

그는 학회에 초빙돼 나가면 반드시 압력밥솥을 이용해 직접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크기로 보나 용도로 보나 전혀 다른 두 개의 발명품인 증기기관차와 압력밥솥. 그러나 한 사람의 빛나는 아이디어 덕분에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하는 멋진 발명품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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