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이사관 특허청 김혜원 국장

'특허청의 '동방불패'를 아시나요.'

특허소송을 해본 기업인들이나 발명가들 사이 '동방불패'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특히 유기화학이나 약학 분야라면 더더욱 그렇다. 주인공은 정부대전청사 특허청의 김혜원 심사 3국장(51)이다.

김 국장은 특허청 개청 이후 만 2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이사관(2급)에 올랐다. 김 국장의 여성 이사관 승진은 현직 국가 공무원 중 일반직 여성공무원으로는 통계청 김민경 국장과 여성부 황인자 국장에 이어 세 번째다.

'동방불패' 라는 별명이 붙은 사연은 이렇다. 특허소송에서 승소 율이 1백%에 달하기 때문. 거의 백전백승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화학분야 특허 소송을 하는 변리사들 사이 그녀는 기피 대상 1호로 손꼽힐 정도이다.

김국장의 이런 승소 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도 특허청 내 알아주는 일꾼으로 통한다. 맡은 사건에 대해서는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심판장 시절 그녀의 퇴근시간은 자정 무렵으로 정해져 있다 시피 했다. 지기 싫어하고 맡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특유의 성격은 그녀를 사무실에 파묻히게 만들었다. 특허 심사관 1명이 1년에 3백여 건을 처리하는 것을 감안할 때 그동안 그녀가 처리한 특허 심사 건은 5천여 건에 이른다.

"일이 고되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고도의 전문성과 분석력, 판단이 요구되는 특허 업무가 개인적으로 적성에 맞기 때문에 신바람 나게 일했을 뿐이지요."

김 국장이 서울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특허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 78년. 특허청이 개청 한 것이 1년 전인 77년이고 보면 김 국장은 사실 특허청의 산증인이다. 당시에도 김국장은 '특허청 1호 여자 심사관', '특허청의 심사관 홍일점' 이라는 감투를 썼다. 지금은 특허청 내에 39명의 여성 심사관들이 포진해 있지만 그녀는 무려 17년 동안 '대한민국 유일의 여성 심사관'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그녀는 지금 특허청 내 심사관을 포함한 여성공무원 1백52명의 대모(大母)이지만 그동안 남성우월주의가 판치는 공직사회에서 겪은 서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부서에서 한번쯤은 거치는 '서무담당'이라는 자리도 번번이 후배 남자 심사관에게 돌아갔다. "여자이기 때문에 겪은 서러움은 말로 할 수 없지요. 중요한 일들은 남자들에게 모두 돌아가고 귀찮은 잔심부름 같은 일만 모두 저한테 넘어오는 거예요."

그녀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 87년에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캡토프릴' 사건. 당시 한-미간 첨예하게 대립한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했으며 의약, 농무 분야의 특허권 존속기간 연장등록제도를 도입, 미국과의 국제 통상마찰 해소 노력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녀는 또 여성발명가 협회 창설을 주도하고 지금은 연례행사로 진행되고 있는 여성발명가 우수사례 발표회를 지난 95년 기획한 바 있다.

이런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여성직원들의 '여자니까' 라는 식의 태도다. 불리한 때는 '여자니까' 라는 식으로 빠져나가고 필요한 때 역시 '여자니까' 라는 식으로 둘러대는 박쥐같은 사고방식은 여성 직장인들이 고쳐야할 점이라고 훈수를 뒀다. "앞으로는 '여성이 뭐가 됐다'는 식의 기사가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활동이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바쁜 직장 생활속에서도 그녀는 특허청내에서 학구파로 유명하다. 바쁜 업무중에도 틈틈이 짬을 내 학업을 계속했다. 2000년에는 약학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탁구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매사에 열정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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