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이제 두 말이 필요 없겠습니다. 그는 '영웅'입니다. 48년 동안 품어왔던 한국 축구의 비원을 푼 사람이 그였습니다. 지역감정과 이념논쟁, 세대갈등 등 나라를 분열시키는 모든 요소도 그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모두 하나가 됐고 중심에는 그가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영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8개월 전 처음 한국팀 사령탑을 맡았을 때 우리 모두는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지난해 5월과 8월 프랑스 및 체코와 가진 평가전에서 모두 0-5로 대패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때 그에게는 '오대영 감독'이라는 비웃음과 멸시가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등 유럽의 쟁쟁한 나라들과 성공전인 평가전을 끝마치고, 마침내 4일, 2002 월드컵 D조 예선 첫 경기에서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2-0으로 잠재운 지금.

그래서 한민족의 오랜 염원이었던 16강 꿈에 성큼 다가선 지금.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모든 '영웅'이 그렇듯 그 또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정계나 재계 모두 그의 '리더쉽'을 학습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여러 민간 경제연구소도 그의 리더쉽을 한국 정치나 재계에 접목시키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딩크 교훈'이 가장 잘 접목될 곳은 아무래도 벤처기업일 것 같습니다. 또 '히딩크 리더쉽'을 가장 열심히 학습해야 할 사람도 벤처기업 CEO일 것 같습니다. 꿈과 비전으로 '無에서 有를 창조'한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제1교훈: 도전 정신 2000년 12월. 히딩크가 한국을 택한 것은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린 명장입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월드컵 5회 출전에 4무10패의 성적을 낸 초라한 팀입니다. 아시다시피 단 1승도 올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국내 감독들이 책임을 지고 경질됐습니다.

누가 감독이 돼도 결국 경질될 운명일 수 밖에 없는 곳이 바로 한국팀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히팅크는 결국 '한국호'를 선택했습니다. 경질될 수도 있는 운명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것입니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벤처정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그는 명장의 이름 값을 톡톡히 해내고 말았습니다.

◆제2교훈: 비전 제시 "한국 선수의 자질은 충분하다." 한국 부임 후 히딩크의 일성입니다. 16강 꿈에 대해 모두가 의심할 때 그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선수들에게 불어넣었습니다.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잘 조직하면 16강이 가능하다는 논리였습니다.

때론 비전이 흔들려 보이기도 했습니다. 작년 프랑스와 체코에 연속으로 0-5로 대패하면서 애인까지 대동하는 바람에 '부도덕한 외국인'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신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결국 그가 옳았습니다. 우리 선수에겐 자질이 있었고 비전은 헛된 꿈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실현 가능한 단계에 있고 그의 카리스마 지도력이 유난히 돋보이고 있습니다. ◆제3교훈: R&D 투자 히딩크가 유난히 강조한 것은 '체력'입니다.

차두리나 설기현, 박지성 등에 대한 직간접적인 애정 표현이 그렇습니다. 비난도 많았습니다.

국가 대표에게 중고등학생과 비슷한 훈련을 시키고 체력 단련이나 하고 있으니 마음 급한 사람이 보기에는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축구에서 '체력'은 기업으로 치면 'R&D'와 비슷할 것입니다.

당장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히딩크가 그렇듯 R&D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기업들도 주주들의 아우성에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또 축구나 기업 모두에게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기술이 없는 기업이 영생할 수 없듯, 체력 없는 팀의 한계도 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히딩크는 성공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팀을 만들어냈습니다.

◆제4교훈: 비즈니스 모델 확립 R&D 투자는 비즈니스 모델 확립에 따른 것입니다. 즉 히딩크의 독특한 체력 강화 프로그램은 승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유럽 팀에 약한 변모를 일신시키려면 체력 강화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했던 것이지요. 그래야만 최소한 '지지 않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으로 치자면 부도를 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에야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으로 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고요. 히딩크의 비즈니스 모델은 R&D 투자에서 얻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빠른 조직 축구'라 할 것입니다. 이는 4일 장신 군단 폴란드와의 대결에서 유감없이 발휘됐습니다. 불굴의 투지가 드러난 거죠.

◆제5교훈: 시스템 경영 히딩크는 '강인한 체력과 빠른 조직 축구'란 비즈니스 모델을 달성하기 위해 시스템 경영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으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면서도 제1의 가치를 조직의 목표에 두고 이를 시스템으로 풀어나갔습니다.

타고난 신체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 즉 비즈니스 모델이 히딩크에겐 '조직 축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튀는 스타의식에 대한 경고입니다. 걸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타의식 때문에 자칫 조직 축구에 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됐던 안정환과 김병지에 대한 오랜 경고가 사례입니다.

안정환과 김병지는 1년 가량 대표팀에서 탈락한 뒤 최근에는 히딩크호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됐습니다.

◆제6교훈: 투명 경영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국내 어느 감독보다 히딩크가 강점을 가진 게 바로 이 분야입니다. 그에겐 원래 어느 선수이건 친소나 연고가 있을 리 없습니다.

오로지 비즈니스 모델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선수만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체력'과 '기량'이었을 것입니다.

차두리나 박지성을 발탁했을 때, 또 안정환이나 김병지를 제외시켰을 때, 간혹 불만과 의혹이 일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같은 불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겐 팀 내외를 막론하고 부정과 의혹이 개입할 소지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이방인으로서 국내 축구인으로부터 질시의 대상이었을 그는 어디서도 부정을 저지를 수 없는, 그래서 척박한(?) 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히딩크 리더쉽은 '원칙주의'로 표현됩니다. '정도경영'이라 할 수 있지요. 온갖 비리로 얼룩진 벤처 업계엔 큰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7교훈: 글로벌 경영 국내 감독이 갖지 못한 히딩크의 최고 가치입니다. 그가 글로벌 경영을 한다는 것은 그가 서구인이고 선진 축구를 잘 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그의 철학 자체가 글로벌 경영과 딱 어울립니다.

막판 평가전에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등 세계 최강팀과 결전을 벌이도록 한 게 그렇습니다. 이는 일본 팀 감독인 트루시에의 정책과 대별되며 세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죠.

결국 한국팀이 넘어야 할 산은 유럽의 최강팀들이고 이를 넘지 못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게 사상 누각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적중한 것입니다.

결국 히팅크호는 막판 평가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해 부산대첩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삼성·LG·SK 등 대기업 모두 글로벌 경영을 외치고 있고 벤처기업도 수출만이 살 길인 상황이어서 히딩크의 과감한 시도가 더 돋보입니다.

물론 오늘 한국 축구가 올린 성과가 모두 히딩크만의 몫은 아닙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한 23명의 대표팀 선수들과 스탭, 연이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징이 된 '붉은악마'의 열광적인 응원, 그리고 '붉은악마'와 함께 흔들림 없는 응원 대오를 갖춘 5천만 국민 모두의 열정과 꿈이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히딩크에 대해 더 이상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그가 이룬 성과는 물론이고, 한국 땅에 남겨놓은 교훈이 있다면 말이지요.

아이뉴스 24 =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