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출연연 기관평가서 연구원 창립 이후 처음으로 1위
미흡·보통 등급 오가다 절치부심 끝에 '우수'…"비결은 소통"

한의학연구원은 2013 출연연 기관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춘계 등반대회에 참석한 한의학연 전직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모습.
한의학연구원은 2013 출연연 기관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사진은 지난 5월 춘계 등반대회에 참석한 한의학연 전직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모습.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평가 결과가 기관의 우열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성적표를 받았을 때 그렇듯, 평가결과에 따라 희비가 교차한다. '만년 꼴찌'에게는 특히 그렇다.

한국한의학연구원(원장 최승훈)은 정부출연연구기관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에 속한다. 연구직, 행정직 모두 합쳐 140명이 조금 넘는다. 1년 예산은 400억원에 불과하다. 내년에 기관 창립 20주년을 맞는 '꼬마 연구원'이다.

이런 작은 연구원이 최근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최근 공개된 2013년 정부출연연 경영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은 것. 그것도 이번에 평가를 받은 36개 정부출연연 가운데 1위의 점수로 우수 등급 평가를 받았다. 한의학연 구성원들은 "혹시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로 나타날지 몰랐다"며 자신들의 결과에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의학연은 만년 꼴찌였다. 특히 2010년과 2011년에는 2년 연속 최하위 등급인 '미흡' 판정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지난해에도 절치부심, 전 구성원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보통'에 그쳤다. 한의학연이 기관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은 것은 연구원 개원 이후 처음이다. 대부분 '미흡'이었고 잘해야 '보통'이었다.

이런 연구기관이 규모에서 많게는 10배 차이가 나는, 기관 역사에서 2배 차이가 나는 쟁쟁한 연구기관들과 경쟁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특히 이번 평가는 미래창조과학부 출범 이후 첫 출연연 경영평가이자, 종전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기관평가로는 마지막이다.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한의학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절치부심(切齒腐心)

한의학연은 지난 1994년 보건복지부 산하 정부출연연으로 출범했다. 말이 정부출연연이었지 제대로 된 연구기관으로서의 모습을 갖춘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한의학연이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이전한 것은 지난 20004년. 1994년부터 이 때까지 10년의 기간은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1년 예산은 고작 30억원 안팎. 연구원까지 포함해 전 직원이 30~40명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연구성과가 나올 리 없었다. 장기적인 연구 프로젝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2004년 대덕으로 기관을 옮기고 소속 부처가 과학기술부로 바뀌면서 서서히 정부출연연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30~4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국가적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다른 출연연을 그저 부럽게 바라만 봐야 하는 시기였다.

당연히 평가에서도 늘 낙제점이었다. 큰 연구성과도 없고, 워낙 규모가 작다보니 안정된 기관경영의 틀을 갖추기도 쉽지 않았다. 단 한번도 '우수' 등급을 받은 적이 없다. '보통' 등급을 받으면 "이 정도면 잘한 것"이라고 위안을, '미흡' 등급을 받으면 "우리같은 기관에서 당연한 결과 아니냐"고 자조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절치부심, 이를 갈았다. "언젠가는 우리도 보란듯이 제대로 된 기관으로 인정받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마음을 다졌다.

일취월장(日就月將)

지난 2011년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2년 연속 '미흡' 판정은 새로 부임한 최승훈 원장이나 구성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경영분야와 연구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진단과 개편이 단행됐다. 특정주제로 토론을 벌이는 전직원 소통의 장인 'KIOM 문사연(問思筵)'을 도입해 시행하고 연구기관 내 각 부서간 벽을 허물기 위해 내부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인터랩 세미나'도 열고 있다. 또 한의학 전공자가 비전공자 동료 연구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의학 강좌'도 자체적으로 시행했다.

이와 함께 독서를 통한 창의력 증진을 도모하는 'KIOM 백북스', 미래 보건의료 트랜드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외부 유명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창신강좌'도 도입했다.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외부로부터의 평가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가족친화경영 인증을 받고 남녀고용평등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기관이 안정되니 우수한 인력도 한의학연 문을 두드렸다. 연구원에서 대학 교수로 이직하는 일반적인 현상을 깨고 대학 교수가 연구원으로 입사했으며 양의를 전공한 의사가 한의학연에 들어오기도 했다. 또 한의기술표준센터장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송양섭 박사를 선임하는 등 내부 구성원간 소통은 물론 다른 출연연과의 소통·교류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최승훈 한의학연 원장.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덕목으로 기관을 이끌고 있다.
최승훈 한의학연 원장.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덕목으로 기관을 이끌고 있다.
최승훈 한의학연 원장은 "지난 19년 동안 조금씩 틀을 갖춰가고,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제야 결실을 맺은 것"이라면서 "한의학연은 외부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마침 제가 원장이 됐을 때 이런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공(功)을 구성원들에게 돌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 원장은 이번 평가결과에 겸손했지만 출연연 기관평가에서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 아는 사람은 안다. 실제 리더십의 비전과 공약이행 항목은 적지 않은 배점을 차지한다.

최 원장 집무실 벽면에는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한자성어가 걸려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히 착한 것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 사상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아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이르던 말이다.

"한의학연 원장 부임 전에 노자 도덕경편을 다시 읽으면서 임기 동안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했어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곳곳에 스며들면서 모든 것을 다 적시지 않습니까? 형태가 없으면서도 어떤 곳에 가든 그 형태를 따르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다 이롭게 하잖아요. 어떤 기관의 수장을 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한데, '상선약수'의 덕목만 잊지 않는다면 소통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 원장이 취임식 때 전 직원에게 강조했던 말도 '상선약수'다.

한의학연과 최 원장은 이번 기관평가 결과가 정부출연연으로서 제대로 된 기틀을 갖추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꼬마 연구원'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부출연연이 수행해야 할 고유 임무에 충실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연구성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한의학연의 복안이다.

최 원장은 "한의학연이 여러가지 면에서 출연연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평가는 한의학연이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의 조직적 틀을 갖췄다는 인정을 받게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며 "이러한 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평가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발표된 '2013년 연구기관 평가'에서는 36개 정부출연연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이 가운데 한의학연을 비롯한 8개 기관이 '우수', 23개 기관이 '보통', 5개 기관이 '미흡' 평가를 받았다.

한의학연구원 본관에 게시된 기관평가 최우수 축하 플랜카드.
한의학연구원 본관에 게시된 기관평가 최우수 축하 플랜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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