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노조 입장차이 커…현재로선 정규직 전환 불가능
출연연 비정규직 문제 심화 가능성 농후…"정부 대책 필요"

원자력연구원비정규직지회는 1일 원자력연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정명령' 이행을 촉구했다.
원자력연구원비정규직지회는 1일 원자력연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정명령' 이행을 촉구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정연호)의 '고용' 논란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원자력연은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전고용노동청에 비정규직 직접 고용 시정명령 조치를 연기해줄 것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전노동청은 지난달 26일 원자력연구원이 도급을 준 비정규직 직원 73명을 '불법 파견'했다며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들은 원자로인 하나로 관련 업무를 하는 연구원 내 하청업체인 ㈜코라솔과 ㈜한신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거나 일한 적이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다. 이들 가운데 3명은 연구원에서 정년퇴임을 했고, 10여명은 중간에 그만두거나 다른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원자력연은 8일 "노동청이 직접 고용을 명령한 대상자 73명 중 일부는 정년 퇴직 후 근무 중이고, 일부는 그만뒀거나 다른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어 연락 조차 되지 않는다"며 "20여명만 직접 고용이 가능할 뿐 대부분 법적인 문제 등으로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노동당국의 입장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직자나 중도퇴직자의 경우 본인의 명시적인 의사가 있으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은 앞서 노동청에 소명을 했지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만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었다.

노동당국의 시정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원자력연 측은 우선 2년 이상 일한 근로자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기복 홍보부장은 "요건에 해당하는 20여명에 대해서는 연구원이 직접 고용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정부에서 정하는 정규직 인원과 예산이 제한돼 있어 고용 형태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노동청이 정한 23일까지라는 시한도 촉박해 시정명령을 이행하기 어렵다"며 "시정명령을 미뤄달라는 가처분 신청이나 행정소송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력연의 고용 논란은 비정규직들이 대량 해고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1월말 방사선 측정기 교정업무에 9년간 종사했던 2명이 해고된데 이어, 지난 3월에는 하나로 핵연료 생산과 관리를 하청받은 업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10여 년간 핵연료 생산 공정에 종사했던 숙련된 노동자들이었다.

한상진 원자력연 비정규직지회장은 "해고 통보를 받았는데 누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 급여의 3분의 1 수준만 받았다. 계약이 갱신되는 해에 고용 불안에 시달려 왔어도 열심히 일했다"며 "쌓였던 울분이 터진 셈이다. 아마 해고 통보가 내려지지 않았다면 그상태 그대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사실 노동위의 결정은 한끗차이였다. 도급과 파견의 인식 차이가 희비를 갈랐다. 대전고용노동청의 판단은 "근로계약이 외형은 도급이지만 실제는 근로자 파견에 해당해 파견법을 위반했다"는 것. 앞서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역시 원자력연 내 하청업체인 한신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다 해고당한 노조원 강모 씨 등 2명에 대해 '부당해고 및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충남지노위의 판정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었지만 대전노동청은 사법권을 가진 기관인데다, 최근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과 맞물려 원자력연으로서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 원자력연 고용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처음 논란이 됐던 건 부당한 대량해고였다. 비정규직 노조에 따르면 원자력연은 핵연료 생산, 판형핵연료 생산, 시설운영을 담당해오던 11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6월 30일자로 해고했다. 이들은 길게는 11년 동안 원자력연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에서 사용하는 핵연료 생산업무에 종사해 왔던 노동자들이다.

이에 대해 원자력연은 '부당해고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언급된 11명은 연구원이 고용한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원이 해고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 측은 업무에 있어서 정규직과 다름이 없었고, 지시 또한 원자력연 측으로부터 하달받았기 때문에 관련이 없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들이 일을 진행함에 있어 업체의 지시가 아닌 원자력연의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것은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이들이 원자력연에서 수행하는 일은 도급에 해당되는데, 계약상 도급직들은 업체에서 파견된 현장 책임자에게 업무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연 도급직들은 연구원 이메일 계정을 통해 수시로 업무를 보고받았다. 논란이 되고 부터는 업체에서 현장책임자가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진 지회장은 "형식적으로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용역 노동자였지만 실제로는 연구원이 사실상 채용을 결정했고, 업무에 대해 직접 지휘 감독했을 뿐만 아니라 결과물에 대한 보고도 받아왔다"며 "하청업체들은 도급 대상 업무를 수행할 기술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업무와 관련된 시설과 기자재 등도 확보하고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즉, 형식만 도급일 뿐 사실상 파견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파견에 해당한다고 해도 하청업체가 파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이 없고, 업무의 성격도 파견업에 허용되지 않아 불법파견에 해당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에 원자력연은 "파견법 위반 판정은 도급 기준보다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파견 업체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파견을 할 수 없는 업무이기 때문이 아니다"라면서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서 예산과 인원에 제한이 있어 본연의 연구 업무가 아닌 분야에 대해서는 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등에서 길게는 15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상시적인 고용 불안과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해왔다. 2011년 백색비상사태가 발령됐을 때도 유일하게 현장을 지켜 사태를 최소화했다. 현재 세계 최고 품질의 NTD 반도체 생산, 하나로 원자로 안전에 밀접한 계통관리, 핵연료 생산, 전국에 있는 방사선 계측기 검·교정 등으로 원자력연과 하나로의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과 다름 없다."

비정규직 노조의 주장이다. 하는 업무가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자력연 측의 주장은 확고하다. 도급직 근로자들이 하는 업무는 단순·반복적인 기술업무로, 연구부문 비정규직이 수행하는 업무와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연에 따르면 연구시설 관리와 핵연료 피복관 제조 등 단순·반복적 기술 업무의 경우 아웃소싱해 추진했고, 이같은 행태는 당시 출연연 인력 운용의 한계점 등과 맞물려 어쩔 수 없이 자행됐던 일이었다. 민환기 행정부장은 "단순·반복적 기술업무까지 정규직이 수행할 만큼 인력이 충분하지도 않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업무는 아웃소싱해 추진하는 것이 인력 운용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비정규직 노조 측의 주장 '정규직 전환'…"현재로서는 불가능"

원자력연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규직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노동당국이 내린 시정 명령 역시 정규직 전환이 아닌 직접 고용 형태여서 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

현행 개정된 파견법에서는 직접 고용의 의무만 부과하고 있을 뿐, 고용 형태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기간제 근로 계약의 방식을 취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즉, 파견계약 기간이 만료돼 직접 고용하는 경우 계약직과 무기계약직, 정규직 등 어떤 형태로 직접 고용할 것인가는 기관의 협의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민환기 원자력연 행정부장은 "정규직의 경우 일반적인 조건에 만족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현재 직접 고용을 해야 하는 인원들은 대부분 그 조건에 미치지 못한다"며 "직접 고용의 형태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논의돼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 파견 분야는 4개로,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비롯해 핵연료 생산 업무, 방사선 장비 검교정 업무, 조사재 시험시설 근무 등이다.

그들이 파견된 분야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해도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문제가 되는 건 당장 현재 원자력연에서 종사하고 있는 비정규직들이다. 도급 근로자들의 경우 엄연히 다른 기관의 노동자들인데,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원자력연의 비정규직들은 그대로 방치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소리다.

민 부장은 "우리 연구원 뿐만 아니라 그 부분에 대해선 출연연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는 문제다"며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내려온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정부의 입장은 없는 상태다"고 토로했다.

한편 원자력연은 당초 시정명령을 이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노동당국의 시정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연구원 채용 규정을 어겨야 하는 만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노동청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 위해 법 위반으로 형사입건될 수 있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도 비정규직지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한상진 지회장은 "우리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은 원자력연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존을 볼모삼아 온갖 악행을 자행한다 하더라도 불법파견 철폐, 비정규직 차별 철폐, 정규직 전환을 위해 흔들리지 않고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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