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세계최초의 핵잠수함이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노틸러스호라고 명명된 이 잠수함은 북극점을 빙하 밑으로 횡단함으로써 핵잠수함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잠수함은 매우 효과적인 군사공격용 선박이지만 잠수 중에는 디젤엔진으로 충전시킨 배터리를 사용해야 하므로 잠수시간을 늘리려면 절전을 위해 크기와 무게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승무원들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공급의 한계로 최장 잠수시간은 수일을 넘기지 못한다. 

원자로와 같은 위험천만한 장치를 잠수용 배에 장착한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았으나 그 결과는 기존 잠수함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게 하였다. 무진장의 에너지원을 얻게 되어 선박의 크기나 무게를 제한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선체를 견고하게 함으로써 심해 잠수가 가능해졌고, 물을 전기분해하여 산소를 공급할 수 있게 되어 핵잠수함은 한 번도 물위로 떠오르지 않고 지구 한 바퀴 이상을 돌 수 있게 되었다.

잠수함과 원자로의 만남은 가히 어색함의 극치였으나 오히려 효과의 극치를 연출하였다. 많은 이들이 이 무리한 조우를 이렇게 설명한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이만리'에 나오는 네모선장의 잠수함은 바다에서 무한정으로 얻을 수 있는 나트륨을 원료로 사용하는 배터리로 추진되는데 바로 이것이 핵추진 잠수함의 인사이트를 주었다고.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잠수함의 이름을 따서 최초의 핵잠수함에 노틸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선박과 어울리지 않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조우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화포와의 만남이다.  고려말 왜구의 침략으로 인해 민간의 피해가 자심하였다. 설령 왜구의 침략을 물리친다하더라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침략을 당한 쪽이 짊어져야 했으므로 최무선 장군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왜구가 상륙하기 전에 바다에서 왜선을 파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상대의 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격할 것인가였는데 최무선 장군은 화포를 선박에 장착하여 적의 배를 원거리에서 쏘아 격침시킴으로써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예상은 적중하여 1380년 전라도 진포에 침략한 왜선 500여척을 괴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는 1571년 유럽의 연합함대가 오스만 함대를 격파한 레판토 해전에서 서양 최초로 전함에 화포를 장착한 것보다 190년 앞선 것이다. 

이후 서구열강의 해전양상은 화포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에 최무선 장군이 그 효시가 된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최무선 장군의 것을 재현한 것이다. 당시 조선의 화포기술은 왜군보다 월등히 앞섰으며 선박은 배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어서 밑이 뾰족한 왜의 첨저선보다 화포의 반동을 충분히 흡수하여 화포의 명중률을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은 주변설명에 불과하다.

IT 시대에 이르러 자신과 어울리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기기를 마구 쓸어 담아 장착하는 손바닥만 한 선박이 등장하였다. 바로 시공간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폰이다. 

처음에는 기본적으로 이메일과 제법 어울리는 조우에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무지막지하게도 자신보다 몇 십 배 큰 PC를 장착하더니 카메라, 켐코더, TV를 먹어치우고 이제는 '앱'이라는 것으로 오디오와 녹음기, 책 심지어 악기를 자유자재로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조만간 현금, 신분증, 각종 열쇠 등 주머니에 남은 마지막 하나까지도 소화시킬 것이 쉽게 관측된다. 핵잠수함이나 화포전함과 다른 점은 장착하는 방법이 매우 '스마트'하다는 것뿐이다.

융합과학의 융합은 'fusion'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convergence'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융합과학은 용융(鎔融)을 전제한다는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융합과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심오하게 연구개발해야 하는 것으로 곡해한다. 서로 다른 과학과 기술이 공촛점에서 수렴(收斂)토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있는 융합과학이 될 수 있다. 융합과학은 새로운 연구개발의 과제가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수렴이며 새로움으로 인한 어색함을 의미있게 푸는 과제이다.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 만남을 가능케 하였는가?  '해저 이만리'에서 네모선장의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과 깨끗한 지구, 전쟁없는 평화, 자연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무제한의 에너지를 발생하는 엔진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는데 이를 현실에서는 원자로 엔진과의 만남을 주선하였다고 할 수 있다. 

최무선 장군 역시 민초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애민정신이 무리한 만남을 조화롭게 성사시켰다고 해야 할 것이다. 스티브잡스는 사악하다고 할 만큼 냉혈적인 이성에 가려진 불세출의 예술가적 감성을 디지털로 표현하고자 했던 열망이 어색한 만남을 따뜻한 피가 흐르는 기기의 출현으로 잇게 했다고 하면 이를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만 치부할 것인가? 연구자들에게 닥치게 되는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들의 연민에 수렴될 때 새로운 경지를 여는 융합과학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유장렬 박사
유장렬 박사
융합과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접목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로 별개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분야가 모여 합목적인 새로운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장렬, 융합과학의 첫걸음'을 통해 연구자들의 고민을 파헤쳐보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예정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울대 식물학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 생물학 석사을 거쳐 미시간주립대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5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중이며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회장, 한국생물정보시스템생물학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SCI 등 주요학술지에 128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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