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심의위 상정 2700점中 재활용 3.8%…"2600여점은 창고에"
출연연 3000만원 넘는 장비만 8500억원…정보공유등 대책 절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출연연의 연구장비에 대한 인식 부족이 심각하다. 연구나 과제 수행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필요 장비를 구입하지만, 막상 과제 종료 후 연구장비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와 기초기술연구회, NTIS(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재 출연연이 보유하고 있는 연구장비 중 3000만원이 넘는 장비는 총 1만5951점.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출연연이 7373점,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이 8578점을 보유 중이다. 장비구축을 위해 각각 6491억원, 2041억원 등 총 8532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문제는 많은 세금을 투입해 구입한 고가의 장비가 연구과제 종료 후 고철로 둔갑한다는 점이다. 출연연 연구장비는 6개월 동안 사용 빈도가 적으면 '저활용장비'로 분류되고, 6개월간 사용되지 않으면 '유휴장비'로 구분된다. 유휴장비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심사를 거쳐 불용처리되거나 재활용된다.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10개 출연연의 경우 2008년 이후 2634점의 장비가 불용처리됐다. 이 기간 동안 장비심의위원회에 상정된 2755건 중 3.8%에 불과한 105개 연구장비만이 재활용됐다.

불용장비가 가장 많은 출연연은 항우연으로 전체의 70%에 달하는 1928점을 폐기했으며, 원자력연과 표준연이 각각 238개와 177개의 장비를 불용처분해 뒤를 이었다. KIST의 경우 2011년 이후 97개의 연구장비를 불용처분했다.

항우연은 매년 장비심의워원회를 개최하는 대신 일괄처리하기로해 1928개 연구장비 모두 2011년 이후 불용처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항우연 불용장비 중에는 2010년 9월 13억5000만원을 들여 구입해 10개월 정도 사용한 장비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110억원을 들여 구축한 장비 16점도 6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아 유휴장비로 분류된 상태다.

연구장비가 사용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관련 과제 종료'다. 과제가 끝나 사용빈도가 떨어지면서, 보관·관리상태도 열악해졌다. 심지어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차장 등에 마구잡이로 버리기도 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준다.

KIST를 방문해 연구장비 관리 실태를 파악한 바 있는 이상일 의원실 관계자는 "유휴장비로 분류된 장비는 비닐에 덮여 있거나 방치돼 대부분 녹슨 상태였다"면서 "장비 중에는 창고 보관 기일이 지난 것도 있고, 주차장에 버려진 것을 주워 보관하고 있는 것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재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NTIS 확인 결과 출연연 연구장비 중 유휴상태인 것이 509점, 활용도가 극히 낮은 것(저활용장비)이 310점인 것으로 집계됐다. 유휴장비 중에서는 2010년 구입한 장비만도 25개가 포함돼 있으며, 저활용장비 중에서는 올해 3월과 4월 구입한 장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용하지 않는 이들 장비구입에 투입된 예산은 726억5000만원이다.

더불어 출연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 1만5951점 중 70%가 조금 넘는 1만1420점 만이 NTIS에 등록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국가 R&D 예산이 아닌 지자체나 산학협력단 지원 또는 자체 예산으로 구입한 연구장비는 NTIS에 등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의 28.4%에 달하는 4531개의 연구장비가 출연연이 보유하고 있지만 지식정보사이트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향후 연구기관이 R&D연구장비 구입을 신청할 경우, 심의위원회가 중복구매 심의 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똑같은 장비를 여러번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은 "과제가 끝나면 장비 활용이 떨어지고 관리가 되지 않아 불용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연구목적이 다했다고 장비를 무조건 버리기보다는 대학 등에 양도해 재활용하는 방안이 활성화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출연연이 모든 장비정보를 공유하고, 장비 선순환을 통해 예산 낭비와 중복투자를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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