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새벽 심장마비로 별세…국립현충원 안장 예정

故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 소장.<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故 한필순 전 원자력연구소 소장.<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 자립 신화를 이끈 원자력계의 '대부' 한필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이 25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故 한필순 박사는 한국형 원자로 설계기술과 중수·경수 핵연료 기술을 완전 자립화시키는 등 한국 과학기술계에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고인은 '원자력 발전기술의 자립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 가장 먼저 핵연료 기술 자립을 외치며 첫 원자력 발전기술 자립의 모태가 됐다. 원자로 설계기술 독립을 여러 가지 악조건에서 성공적으로 추진한 원자력 산업의 대부다.

故 한필순 박사는 1982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전신인 한국에너지연구소 대덕공학센터장으로 부임하며 원자력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1991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과 한국핵연료주식회사 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원자력 기술자립을 제1의 목표로 삼아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원자력발전 기술의 핵심인 한국표준형 원자로 개발, 열출력 30MW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개발 등 우리나라 원자력기술을 세계적으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2009년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UAE에 상용원전을 수출하는 데에는 기술 자립에 대한 고인의 투철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故 한 박사가 원자력 기술 자립화를 위해 해외로 떠나는 과학자들에게 '必 설계기술 자립'이라는 액자를 들고 만세삼창을 외치며 "실패하면 돌아오지 말고 태평양에 빠져 죽으라"고 말했던 어록은 지금까지도 과학자들 마음에 울려퍼지고 있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원자력연 고문으로 활약하면서 한국 과학계 발전을 위해 열정을 불태워 타계 소식을 접한 지인들을 더욱 숙연케 했다.

1933년 평남 강남군에서 출생한 고인은 공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문리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 석사, 캘리포니아대 박사를 거쳐 1970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무기국산화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 박사 슬하에는 장남 한기철, 장녀 한윤주, 차남 한기석 등 2남 1녀가 있다. 발인은 1월 29일이며 빈소는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다. 장지는 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다.

1986년 12월 12일 원전 설계기술 자립을 위해 미국으로 파견된 한국원자력연구소 직원들과 함께한 故 한필순 소장.<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1986년 12월 12일 원전 설계기술 자립을 위해 미국으로 파견된 한국원자력연구소 직원들과 함께한 故 한필순 소장.<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1984년 국산 핵연료 양산에 성공하고 월성 1호기에 시험 장전, 1년 연소 후 완벽한 상태로 인출됐다. 당시 기념사진.<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1984년 국산 핵연료 양산에 성공하고 월성 1호기에 시험 장전, 1년 연소 후 완벽한 상태로 인출됐다. 당시 기념사진.<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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