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더 적극적인 사회적 참여 필요"
바이러스 연구자들 "신종질병 국제적 공조 시급"

한 달 전,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른해질 무렵 바이러스 과학기술자들에게 잠이 확 깨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 다시 고위험성 신종 바이러스인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국내 감염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1997년 조류독감·2002년 사스·2009년 신종플루에 이어 이번에는 메르스 후폭풍이다. 신종 고위험성 바이러스가 인간을 괴롭히는 일이 이처럼 매번 반복되지만, 정작 과학기술계는 뚜렷한 대응을 보이지 않는다. 과학계가 너무 소극적 대응을 한다고 일반 대중들과 누리꾼들이 냉담한 반응을 드러내기도 한다.  

과학기술계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왜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지 짚어봤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 "국내 메르스 전문 연구자가 없다…기자 보다 우리가 더 몰라요" 

기자가 바이러스 연구자에게 물었다. 메르스에 대해 알려달라고. 연구자는 대답했다. "기자들이 더 잘알아요. 저희도 잘 몰라요. 아마 다른 신종질병이 나올때마다 제 답변은 그럴 수 밖에 없을 겁니다"라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L 바이러스 관련 연구자의 말이다.  

바이러스 연구자들도 해당 바이러스 자체를 실험하지 않은 한 바이러스를 모를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다. L 연구원은 "대다수 바이러스 연구자들이 이미 공개된 보건정책 자료나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 수준에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에는 메르스 관련 바이러스 연구자가 단 1명도 없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연구자들도 메르스 바이러스와 직접 부딪혀 실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사회적 불안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메르스가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로 관련 바이러스 연구 경험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계열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적극적인 정보의 중심 역할을 하는데 부담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메르스 관련 사태가 커지자 바이러스 연구자들 사이 한 모임이 있었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 대응을 어떻게할지 자연스럽게 논의됐지만, 결론은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나서서 이야기하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모임에 참석한 한 연구원은 "과학계가 사회적 현상에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근본적 이유는 과학계 전반에 퍼진 수동적 문화"라며 현재 메르스 관련 객관적인 정보를 사회에 제공하는 부류는 과학계가 아닌 의료계와 학계"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과학계 침묵 현상을 두고 연구자들의 상황은 이해가는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일반 대중 보다 바이러스 체계나 기본 지식을 갖춘 과학자들이 정보의 신뢰성을 위한 사회적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하는 의견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래도 기본 학문적 체계를 갖춘 과학자들이 중심을 잡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 과학자는 "우리 사회가 바이러스에 대한 과학적 접근에는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바이오 생물 계통 또는 바이러스 연구자들이 더 활발한 과학적 토의로 혼란스러운 정보 중에서 적극적으로 과학적 진실을 밝히고 합리적 대책들을 건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계 한 원로는 "앞으로 국가 차원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신종질병과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며 "과학계가 신종질병의 직접적인 해결사 역할을 연구를 통해 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국민이 불안해 하는 사회적 심리를 안정시키는 객관적 정보 제공의 중심역할도 적극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한국 과학계, 신종질병 국제적 공조하며 대응 연구 나서야"

우리나라에 메르스 관련 연구자가 없는 이유는 신종 바이러스 연구의 특성 때문이다. 누구도 메르스가 이렇게 문제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연구자들이 새로운 바이러스 연구를 하려면 미래에 닥칠 주요 감염성 질환에 대해 후보군을 예측하고, 가능성 높은 바이러스 대응 연구를 하기 마련이다. 가령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로 변화된다는 전망에 따라 뎅기열 같은 아열대성 질병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연구가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연구자들이 메르스 같은 새로운 신종변이 바이러스를 연구대상 후보군에 포함하기 힘들며, 개별적으로 정말 운좋게(?) 메르스에 관심을 갖게 된 연구자가 있더라도 고위험성 신종 바이러스를 연구하는데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일단 고위험성 신종 바이러스를 연구하려면, 일단 직접 해외에 나가 바이러스를 가져와야 한다. 이동 절차도 복잡하거니와 당국의 허가도 얻기 힘들다. 설령 바이러스를 한국에 가져온다 치더라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인증받은 '생물안전3등급(이하 BL3:Biosafety Level-3) 연구시설'에 보관해 연구할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질병관리본부 산하 연구시설과 일부 대학교 연구실을 제외하면 고위험성 바이러스를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는 한국화학연구원 바이러스시험연구동이 유일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과학계에서 신종질병대응기술융합클러스터(단장 김범태)가 결성돼 메르스를 비롯한 구제역 등 신종질병 관련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앞으로 연구를 적극 펼쳐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메르스와 같은 고위험성 신종 바이러스를 위해 과학기술계가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연구를 통한 해결책 제시다. 연구를 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 항체 치료제 개발까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상 걸리게 된다. 2009년 인플루엔자 대유행 이후 연구자들이 항체 치료제 개발을 추진해 왔지만, 문제가 다 사그라들고 최근에서야 항체 치료제가 출시됐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 사이 신종질병 관련한 연구활동은 앞으로 국제적 공조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어차피 예상하기 힘든 신종질병 바이러스 연구를 국내 R&D자원으로만 해결해 나갈 생각을 하지 말고, 처음부터 국제적 공조를 이룬 공동 정보 공유 및 연구 체제를 갖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5년간 바이러스 연구에 몸 담아온 K 연구자는 "바이러스 연구는 국경이 없어야 한다"며 "언제 어디서 창궐할지 모르는 고위험성 변이 바이러스를 인류가 대응하기 위해 한국 과학계도 하루 빨리 국제적 연구 무대에 참여해 함께 기여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메르스, 냉철한 분석 의연한 대처' 대덕넷이 추구하는 보도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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