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늘지 않고 임금피크제 적용에 연구현장 '망연자실'
對정부 행정 시달림, 단기성과 압박…'이대로 가면 국가 위기'

대한민국 과학기술자들이 요즘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연구현장에서 묵묵히 실험에 집중하는 과학자들의 속마음이 궁금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연구를 業으로 삼는다는 것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40~50대 중견 과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토대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한국의 과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 현실을 직시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편집자의 편지]

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55세 책임연구원입니다.
1997년 IMF 직전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마치고 대덕에 있는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취직해 본격적인 연구인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37살이었습니다.

보통 출연연이나 대학에서 연구인생을 시작하려면 남자의 경우 아무리 빨라도 30대 중반이 됩니다. 과학자가 되려면 박사후 연수과정까지 거쳐야 돼서 30대 중반이나 후반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10년 먼저 사회경험하며 돈을 벌지만, 과학자들은 10년 늦게 시작하는 셈입니다.

출연연에만 들어가면 연구를 정말 열심히 할 수 있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연구소에 들어와보니 그 이후론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1998년 출연연 정년이 65세에서 61세로 깍였습니다. 가뜩이나 늦게 직장을 갖는 과학자 신분인데 정년까지 단축돼버려 실제 연구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봤자 20년입니다. 친구 교수들보다 4년 정년이 짧아 빨리 직장을 그만두게 됩니다.

연구소에 들어오자 마자 정년단축때문에 기가 막혔지만 그만둘 순 없었습니다. 나라의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고, 선배 과학자들이 국가를 위해 일해보자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간 큰 보람으로 돌아오겠지'하는 희망을 믿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는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망가졌습니다.
연구에 집중하기 보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정부 공무원들이 요구하는 서류작업에 허덕이고, 과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지 감사원 감사를 비롯해 온갖 감사가 줄을 잇습니다. 출연연 과학자들은 연구에 집중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행정처리에 여념이 없는 행정 과학자 신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증상이 심해지는 것 같아 국가 미래가 점점 어둡게 느껴집니다.

연구과제를 따내기 위해 정부 공무원들을 잘 모시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한국 과학자는 앵벌이라구요. 연구과제 수주 경쟁이 치열한데다가 최근들어 1~2년 단기과제가 유행하고 정부의 성과 압박에 과학자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러려고 오랜 세월을 공부한 게 아닌데, 평생 단기과제에 매달리면서 정부 공무원들이 요구하는 행정작업에 허덕일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합니다.

미국에서 박사후 과정으로 지낼때만해도 지도교수나 선배연구원 누구나 저를 동료로 생각하고 평등하게 연구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선배들이 저를 부려먹는 사람쯤으로 생각하고 대했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신선한 아이디어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과학자로서 우리의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가며 열심히 연구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과학자들 대부분은 억대 연봉을 받으며 넉넉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억대 연봉자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빚쟁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같은 50대 평범한 책임연구원의 경우 세금빼고 이것저것 빼면 실제 받는 월급은 500~600만원 선입니다. 고등학교만 나온 H사 중공업 다니는 한 친구는 연봉이 1억 원을 넘더군요. 친구 교수들도 다 저보다는 많이 받구요. 대학다니는 자녀 교육비 때문에 아내가 저보고 과외라도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자괴감까지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의 처우는 좋지 않습니다.

최근 정부가 출연연을 공공기관이라고 분류하고 다른 공공기관처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이제 60세 61세가 되면 월급의 10%, 15%를 깍인채 받게 생겼습니다. 다른 공공기관은 정년을 늘리면서 임금피크제를 한다는데, 과학기술자들의 정년 환원 이야기는 전혀 거론돼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61세 정년에서 65세로 환원해 주면서 임금피크제를 한다면 반발도 덜할거고, 국가적으로도 좋을텐데 한국의 과학자들은 그저 희생만 강요받는 그룹인 것 같습니다. 

후배 과학자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출연연 이직자 중 대다수가 65세 정년이 보장되는 대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올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경우 출연연 연구원들의 이탈은 가속화될 것이 뻔합니다. 교수로 간 동료들은 마음 편하게 학생들 가르키며 연구할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 들을때마다 속마음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내가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자의 삶을 선택했지만, 국가가 너무 과학자를 푸대접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과학자들은 국가의 경쟁력을 생각하면서 연구하지, 개인적 영달을 위해 일하지는 않습니다. 국가가 과학자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같은 처지의 이직하고 싶어하는 연구원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이런 불평등한 과학계 시스템은 출연연과 교수사회 간 우열 인식을 심어 갈등을 부추기고 연구의 질을 떨어뜨릴 게 뻔합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가와 다음 세대들에게 돌아갈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합니다.

요즘 제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아! 너만은 아빠처럼 한국에서 과학자는 되지 말아라. 차라리 학교로 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내 아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전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 국민들이 아는 과학자가 없다는 조사결과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황우석 박사가 그나마 인지도가 있고 안철수 정치인이 과학자로 인식되는 우리 한국 사회가 정말 과학에는 무관심하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료는 과학자를 푸대접하고, 국민은 과학에 무관심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참으로 두렵고 암담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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