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예상속 최형섭·오원철 등 과학 초석 다진 인물과 기본에 대한 성찰 필요
국제화와 세대교체로 과학 생태계 새로운 활력 불어 넣어야

2016년 새해가 시작됐다. 올 한해는 어떠할까? 희망은 순풍에 돛단듯 순항이다. 현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한민국 위기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무역 수지나 기업들 희망퇴직 실시, 표류하는 정치 등등을 보면 올 한해 거친 풍파가 예상된다.
우리 바람과는 다르게 개개인이나 과학공동체에, 국가에, 거기에 세계에도 다사다난이 쓰나미처럼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근거 없는 낙관으로 현실에 뒤통수 맞는 우(愚)를 되풀이 하기 보다는 아예 올 한 해도 힘들 것이란 각오로 긴장하고 시작하면 낭패를 덜 할 것으로도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 올해가 과학기술계로서는 의미가 깊다. 대한민국이 과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50년, 동양에서는 지천명의 나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하늘의 뜻을 알고 본격적으로 능력을 펼치기 시작하는 나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1966년 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과학연구소로 출발한다. 이름과 뜻은 거창했지만 출발은 초라했다. 예산도, 인력도, 부지도 모두 미정이었다. 초대 소장인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 당시의 정황이 그려져 있다.

"1966년 2월3일, KIST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막막했다. 소장만 임명해 놓았지 돈도 없고, 직원도 없는 상황이었다. 예산을 담당하는 경제기획원에서 언제 돈을 주겠다는 확답도 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무실이 없어서 어머님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서 집무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일은행 청계천 6가 지점장이 나를 찾아와 자기네 사무실을 쓰라는 고마운 제안을 했다. 돈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권해 은행 2층에 사무실을 얻었다. 건물 옆이 어물시장이라 파리가 들끓고 칸막이도 없어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KIST는 이처럼 초라하게 출발했다..."

어물전 옆에서 시작된 한국 과학기술이 1인당 국민 소득 80달러 국가를 3만달러가 되게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보람찬 인생이었다고 회상할 자격이 있다 하겠다.
한국 사회가 오늘날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데는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우리가 종으로 전락한 조선시대 말기와 외세에 의해 해방된 50년대 대한민국의 영토와 사람은 그 전과 큰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에 신분제가 무너지며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민주주의와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자본주의, 같은 원재료라도 제품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과학기술이 결부되면서 대한민국은 5천년동안 지속된 가난의 굴레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살이는 살아있는 존재(생물)이다. 한 순간의 안정은 있지만 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가난에서 벗어난 것은 잘했지만 그 다음이 또 존재한다. 일부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 살기를 바라고,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살기에 경쟁력이란 것은 정체된 순간 밀리게 돼 있다. 한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남들이 못갖는 실력을 갖춰야 지속가능하다. 일순간의 성취에 안주했기 때문에 1997년의 외환 위기를 겪었고, 그 때 긴장해서 다 같이 노력해 위기를 벗어났으나 다시금 새로운 먹거리 찾기 보다도 갖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남 탓을 계속하며 위기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오고 있다.

과학계에서 있어서도 지난 50년은 성취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10년 혹은 20년전부터 투입대비 산출이 낮고, 과학계의 사명감이 희미해져 가고 있으며, 성과도 오히려 기업연구소에서 가시적이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거기에 5년 단임 정부들은 결과적으로 과학계를 전리품에, 실험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면서 지금은 위태롭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지천명의 나이가 된 과학계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산전수전을 다 겪고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가 된만큼 이제 해야할 것의 하나는 자신들의 일은 자신들이 해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치인들 만나 정치가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안하는 것처럼 과학자들 만나면 관료탓은 해도 과학자들 스스로에 대한 지적은 못하는 분위기라고 과학계를 잘 아는 어느 교수는 말한다. 연구 분위기가 침체되고 연구에 집중할 수 없으며 성과가 안나오는 것이 다 관료탓, 정권탓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 거버넌스가 계속 과학자들을 옥죄는 방향으로 바뀌고 이제는 예산도 깍이는 등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연구 여건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대해 순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직접적으로 반발하고, 저항하고, 그러면서 결과에 책임을 지는 과학계 모습이 오히려 자신들의 자유도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이런 대목에서 과학계가 함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지난 과정에 대한 '성찰'이 아닌가 한다. 다들 열심히 살아왔다. 공부 내용도 어려웠고, 학위 과정에서의 사제 관계, 선 후배 관계, 동료 관계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유학도 물 설고 낯 설어서 힘들었으리라. 국내에 남은 사람은 유학간 사람과 비교되는 것도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연구소에 들어와 재능과는 무관한, 하고 싶은 연구와는 거리가 있는 연구를 해야 하고, 연구비가 권력인 현실에 순응하는 것도 기분이 안좋았을 것이다. 연구에 몰입하고 싶어도 평가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연구비 확보도 쉽지 않으며 과학자의 길을 택한 것을 후회도 많이 했으리라. 아이와 부인 등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도 고민이 될 터이고. 정권 마다 과학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언제부터인가 기관장이 정권의 전리품이 되며 정치적 연줄이 있는 사람들이 오게됐고, 기관장마다 기관 운영 철학이 달라 일관성을 갖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외부 여건이 힘들다고 남탓만 한다고 내 인생을 누가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님은 지난 20년의 실험 대상 끝에 과학계 공통이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 아닐까? 원래 권리란 그에 걸맞는 희생과 투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과학계는 그동안 날로 늘어가는 예산 가운데 정부의 당근과 채찍을 일응 즐기면서 온 대목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보니 당장은 편한데 미래가 안보이고, 한 번 뿐인 인생의 보람도 찾을 수 없고, 각종 감사 등 연구를 옥죄는 상황은 더욱 짙어진다.

상황이 잘 안풀릴 때는 원점으로 돌아가 생각하라는 것이 현인들의 가르침이다. 연구의 원점은 무엇인가, 왜 연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기본을 다시금 성찰하고, 지나온 50년을 되돌아 보며 거기에서 해답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듯 하다. 50년을 맞는 시점에서 지난 50년을 되돌아 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지난 50년을 보면, 칼로 무자르듯 나누기는 힘들지만 대략 민주화 이전과 이후의 과학계 운영이 좀 달라진다. 민주화 이전에는 예산이 작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공 사례들이 나왔다. 민주화 이후에는 장관 인선에서부터 기관장 인선 등에 정치가 개입되며 예산은 늘었지만 과학계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전 가장 권위주의 정부라던 박정희 시대에 최형섭 장관,오원철 수석 같은 걸출한 인물이 나오며 과학계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오명 최순달 한필순 같은 과학계 인물이 등장해 국가 과학기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는 잘 뒤돌아 보지 않는다. 인물은 물론이고 업적에 대해서도 깍아내리려 한다. 하지만 50년을 맞이한 지금 당시 인물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고, 무슨 자세로 일했으며, 그 결과 남겨진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배울 것은 어떤 점인지 등에 대해 한 번은 성찰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과학자들도 본인들의 연구 분야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결국 연구 여건이 본인들의 연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주변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주어진 상황에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연구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한국 과학계가 미래를 내다보며 해야할 일 가운데 또 하나는 '국제화'이다. 모방 과학의 단계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하는 연구를 우리도 하면 됐다. 사실 그래야 연구비를 딸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 관료들은 과제를 심사하면서 다른 나라, 특히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이슈가 된 과제를 하면 후하게 점수를 주고, 세계에 없는 연구를 우리가 한다면 평가절하하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큰 이유는 우리 독자 상품이 없어서이고, 이는 과학기술이란 기초체력이 부실하기 때문임을 다 알지 않는가? 때문에 이제는 세계에 없는 연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연구는 리스크가 크다. 또 우리는 새로운 연구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작한 경우도 많다. 리스크를 줄이고, 진짜 새로운 연구를 위해서도 과학기술의 국제화가 필요하다. 우리 과학자들이 학회를 많이 가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발표를 하는 경우는 드물고 포스터 게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세미나 등에서도 질문을 하고 새로운 사람과 교류하기 보다는 가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진정한 국제화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과학 언론이나 과학사 연구, 과학철학, 과학문화, 과학축제 등등에서도 본격적으로 선진국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어찌보면 우리가 모방을 하며 성장을 했기에 이제 창조와 혁신을 이야기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과학계의 국제화가 본격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끝으로 과학기술 50년을 맞아 해야할 중요한 일의 하나가 세대교체인듯 하다. 과학계에서 40대, 50대 인물들이 등장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연구실안에서 연구만 하고 있다. 여전히 과학계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제1세대 등 원로 과학자들이 대다수이다. 과총에서 여는 신년 하례회나 과학기술 관련 각종 세미나, 의견 수렴 토론회, 심지어 시민단체 모임 등에도 주빈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은퇴한 분들이다.이 분들의 공로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분들의 공이 지속적으로 빛나기 위해서도 젊은 세대가 나와 소통해야 하는데 이들은 실험실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고, 또 못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선배들 앞에 나서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익숙지도 않을 것이며, 한 마디 했다가 혹시 뒷감당을 못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실험에 바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순환이 되어야 한다. 연구계에서 10년, 20년 연구한 사람들은 자격이 있다. 이제는 나와서 연구 여건을 제대로 만드는 행동을 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느꼈던 불합리를 고치며 더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 맞이하는 상황들은 초유의 일들이다.대한민국은 아직 건국이 완성된 나라가 아니다. 독립 70년에, 건국 67년의 신생국이다. 그 신생국이 50년만에 오늘의 성취를 이룬 것은 대단한 일이다. 고속 성장을 하다보니 못챙긴 것도 많았고, 어느 정도 자라다보니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할 일도 많이 생겼다. 이러한 때에는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선진국으로부터는 기본을 제대로 더 배우고, 후발국에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며 세계와 함께 지내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우리가 몰랐고, 알고도 눈을 감아 결국은 망국으로 갔다. 21세기는 다르다. 세계가 더욱 좁아졌고, 때문에 더 노력해서 이웃과 사귀어야 한다. 국제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끝으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미래 50년의 주역은 원로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여야 한다.원로들은 새로운 세대를 후계자로 인정하고, 더 나아가 이들을 독려해야 한다.그래야 선순환이 이뤄지고 아름다운 전통이 만들어진다.

과학기술 50년, 성취와 함께 우리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해로 만드는 슬기로움이 과학계에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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