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연구자들 사이 '한물간 용어'로 취급…연구과제 선정서 번번히 고배
연구자들 "인공지능 연구에 장기적으로 관심 가져야"

"인공지능은 최근 10여 년간 연구자들이 기피하는 연구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과제 선정 과정에서도 신경회로망(Neural Network) 등 인공지능 용어가 들어가면 한물간 연구로 취급 받았습니다."(한보형 포항공대 교수)

"알파고(AlphaGo)는 구글의 반짝 '쇼'에 불과합니다. 구글의 성공적 마케팅이 주효한 것으로 보며, 큰 기술적 진보는 없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대중의 반짝 관심이 곧 사라질 것 같아서 우려스럽습니다."(박상규 ETRI 인공지능연구 엑소브레인(ExoBrain) 과제 책임자)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의 대국이 9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인공지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전문가들은 알파고로 인해 폭발적인 대중들의 관심에 기대감을 표하면서도 단기적 관심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현상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이해, 중장기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 알파고는 구글의 성공한 마케팅?…"큰 기술적 진보 아니다"

인공지능 연구는 사용자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구분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딥러닝(Deep Learning), 시그널 프로세싱(Signal Processing), 추론·지식 활용 연구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딥러닝 연구는 알파고와 같이 기계의 반복 학습을 통해 수행된다. 시그널 프로세싱은 영상·음성 처리 등을 연구하는 분야로,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한 '지니톡' 등이 해당된다. 

IBM 왓슨(Watson)과 일본 토다이(Todai) 로봇 프로젝트는 추론·지식 활용 연구의 대표적 사례다. ETRI 연구진, 솔트룩스 등의 벤처기업 등이 참여하는 'ExoBrain'과제도 이러한 연구의 일환이다. 

엑소브레인 과제 책임을 맡고 있는 박상규 ETRI 본부장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구분 대상을 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판별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음성인식,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국내연구진이 자국 언어인 한국어 처리를 가장 잘하는 것과 같다.  

지난 2014년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인수한 구글은 이를 기반으로 구글딥마인드헬스(Google Deepmind health)를 설립하고, 해당 분야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알파고가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성능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성공적 마케팅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 일각에서는 기존 국내 연구자들이 알파고를 모방한 프로그램 개발 자체는 가능한 단계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프로그램 실효성과 전체적인 방향성 등을 고려해 개발한다면 얼마든지 개발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상규 본부장은 "기존 국내 딥러닝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공유된 알파고 소스를 활용한다면 유사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가장 큰 관건은 프로그램 활용성과 빅데이터 확보 여부"라고 말했다.   


◆ 인공지능 연구는 연구자들에게 기피 대상?…과제 선정서 번번이 탈락하기도

지난 10여년간 이 분야 인공지능 연구는 연구자들이 기피하는 대상 중 하나였다.

한보형 포항공대 교수는 "연구 과제 선정 과정에서도 인공지능 용어가 들어가면 낡은 용어(Term)로 취급받고 과제선정에서 탈락되었으며, 연구자들의 트라우마 중 하나였다"고 토로했다. 

박상규 본부장은 "인공지능 분야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그동안 외면받은 분야 중 하나였다"면서 "현재 관련 전공자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분야는 수십년 전부터 개념이 정립되어 있었으며 관련 연구가 진행돼 왔다. 지난 1996년 IBM의 인공지능'딥블루(DeepBlue)'와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의 대국으로 대중들의 관심이 잠시 높아졌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으로 인해 대중과 정부 차원에서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달 중으로 정부 차원의 인공지능 관련 연구정책 발표도 예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누구보다 관련 연구진은 정부와 국민의 반짝 관심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어 음성 DB를 개발해 기업·학계에 배포한 이영직 ETRI 박사는 "대국에서 승패여부는 의미가 없다"면서 "기계는 많이 학습할수록 성능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기계가 아무리 많이 학습해도 감정을 느낄 수도 없으며, 범용으로 활용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 "알파고 대국 통해 AI 연구 현황 점검과 연구 활성화 계기로"

연구자들은 대국 자체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하고 있다. 단순한 현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장기적 차원의 고민과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박상규 본부장은 "엑소브레인이 내년을 목표로 핵심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 연구는 퀴즈나 대국과 같은 기능으로는 의미가 없다"면서 "금융, 의료 등 관련 산업 분야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내 연구진들의 기술 수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딥러닝, 빅데이터 등 연구분야가 최근 들어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만 세계적 수준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보형 교수는 "국내 연구는 인공지능 핵심기술연구 보다는 응용 분야에 치우쳐 있으며, 성과가 빨리 나올 수 있는 단기적 과제에 집착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 분야는 꾸준히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집중해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정부 차원의 소프트웨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면서 "일반적 수준의 인력 양성 보다는 특출난 인재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정된 자원과 예산, 인력 확보 등 현실적 문제 속에서 효율적 연구 방향 설정 등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영직 박사는 "인공지능 분야는 2등 기술 연구 보다 1등 기술 연구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선진국과 대비해서 우리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자원을 투입하고, 인류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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