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단상]국가 위기 속 R&D혁신 성공하려면?

대통령도 나섰다. 국가 수장이 R&D혁신을 직접 챙긴다니, 그 팩트 자체가 해외토픽감이다. 주변국들의 부러움 대상이 될지, 조롱거리가 될지는 앞으로 하기 나름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국가과학기술심의회,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 등 기존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만 국가 R&D혁신을 이끌고 가기에는 아무래도 힘이 딸린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조선업과 같은 국가적 산업들이 휘청이고, 4차 산업혁명이 불어닥치는 위기에서 어떤 누가 대통령이라도 요즘 과학기술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오죽 답답해하지 않을까 싶다. 치고 나가도 모자를 판에 정작 변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국가적 위기의 방증일 수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 R&D혁신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될까말까한 문제가 됐다. 그렇게 고질적인 문제로 번졌다.

이유가 어찌됐든 대통령이 직접 R&D혁신을 관장한다는 것은 이전보다 과학기술계 혁신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나온 R&D혁신은 크게 2가지로 압축된다. 정부 관료주의 개선과 연구현장 주체들의 변화다. 산·학·연 연구주체들이 역할에 맞는 연구를 하도록 개편하고, 연구자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불만제로 환경 조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실 이같은 혁신안은 현장에서 크게 새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작년 5월 미래부가 발표한 'R&D혁신방안'의 되풀이고, 과거 개혁안들의 재탕쯤으로 여겨진다. 현 정부 뿐만 아니라 과거 정부도 때만 되면 R&D혁신을 외쳤다. 대선(大選)때만 되면 과학기술 육성 카드가 고개를 들지만, 정권을 잡으면 투입 대비 성과에 대한 불만으로 과학계 개혁카드가 등장했다. 과학계 개혁을 외친 역사만 따져도 한 정권을 넘어 수십년이 넘는다.

그래서 혁신은 진행됐을까? 지지부진했다. 실패라고 결론 지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미래도 비전도 신선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통이 안된다고만 강조할 뿐이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안이라도 현장과 괴리된 정책 추진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R&D혁신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현장의 소통관계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부 관료 생각대로 현장과 괴리된 정책에 매달릴 처지가 아니다. 탁상행정에서 나온 혁신안은 과학계 다양성을 포괄하지 못하고, 과학자들의 공감도 없다.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듯 과학관료들이 현장을 파고든 정책을 내놓고 현장에서 연구자들이 혁신을 이끌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5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밥먹듯 드나들었던것처럼 박근혜 대통령도 현장을 알아야 R&D혁신을 실제로 이끌어낼 수 있다. 칼을 뽑아든 이상 박근혜 대통령에게 R&D혁신을 추진할 힘이 약해지면 안된다. 이왕 챙길거면 제대로 챙겨야 한다. 미래부도 현장으로 와야 한다. 한 원로 과학자가 "한국 과학기술 정책 50년 역사는 갈수록 현장성 없는 허울뿐인 정책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 R&D혁신 문제는 별도의 트랙에 올려 놓고 세계 동향과 함께 치열하게 호흡하며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서 과학계 내부의 고질적 문제가 복잡해 보여도 정부와 현장과는 일단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정부 관료와 과학자들은 좀 더 섞이고, 어울려야 한다. 결국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같은 비전과 목표를 향해 뛸 준비가 되어야 혁신이고 변화이다. 그 추진력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만 변화면 될 문제가 아니다. 현장의 선수들이 변하지 않으면 혁신안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 과기전략회의때 강도 높은 대통령의 질타를 받은 출연연 과학자들은 '이렇게 하라할때는 언제고 지금에 와서 뭐라 하느냐'라고 한탄한다. '어느 장단에 춤추라는 말이냐'는 비아냥도 적잖게 들린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이제와서 출연연이 백화점식 연구한다고 혼나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 말이 맞다. 과학기술계는 시키는 대로만 했다. 정부가 하라는 대로만 해서 지금 이 모습이 된 것일 수 있다. 과감하게 낡은 틀을 스스로 깨지도 않았고, 이렇다할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일부 과학자 그룹의 메아리가 있었을 뿐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맥아리가 없었다.
 
연구자들은 연구환경을 개선하는 과학 공동체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지난 역사를 곱씹어야 한다. 자유(자율성)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인류 전쟁 역사 속에서 얻은 뼈저린 지혜다. 예산도 인력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울분을 토해야 하고, 연구의 연속성과 다양성을 훼손하는 뿌리깊은 관료주의에 저항해야 한다. 정부 간섭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독일의 연구자율법을 우리 과학계에서도 발휘될 수 있도록 배우고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결국 정부의 혁신안에 결정적 발목을 잡는 것은 현재 연구자들의 관성이 될 수 밖에 없다. 국가의 연구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여전히 자기 연구과제하느라 바쁘다. 세계발 경제위기 때문이 아니라 혁신에 대한 변화 준비가 안 된 과학계가 위기를 맞고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혁신이 필요하다고 다시 호들갑 떨게 아니다. 과학계가 구조변화에 제대로 적응 못해 발생할 수 있는 과학계 내부발 국가의 위기를 걱정할 때다.
 
단기 연구과제에 급급하는 연구자가 아니라 국가적 화두를 가진 과학기술자가 많아지도록 과학계 스스로 깊은 성찰을 하고 변화의 흐름에 합류해야 한다.

과학계의 현실을 세계의 거대한 기술혁명 흐름이라는 큰 틀에서 보고 정부나 연구현장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우선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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