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관 반대 입장···"공동체가 문제의식 갖고 막아야"
일각에선 찬성 입장···"특혜받는 것 당연한 과학도 의식 깨져야"
홍남기 차관 "미래 우수 인력확보 측면 병역특례 유지 필요···국방부 지속 논의"

"과학기술 인재가 병역특례를 받는 시기는 한창 창의력을 발휘할 나이입니다. 두뇌로 국방의 의무를 다할 방법들을 마련하고 국가가 이공계 상위 1% 인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국가의 총체적 이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신성철 DGIST 총장)

"과학계에 특혜를 준다고 과학계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나태한 집단이 될 수 있죠. 특혜 없이도 선순환되는 과학계 생태계가 구축될 때 비로소 과학계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문길주 UST 총장)

병역특례제도 폐지를 두고 과학기술계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국방부가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이공계 출신들에게 부여하던 병역특례제도를 2023년까지 전면 폐지키로 발표하면서 산·학·연 등 과학기술계 대부분이 병역특례제도 폐지는 국가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학도에게 당연하게 제공되는 특권의식이 깨져야 한다며 병역특례제도 폐지를 지지하는 등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 반대 입장 "국가 산업 한방에 무너질 수도"

"국가 경쟁력은 두뇌 경쟁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해 두뇌 경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이공계 병역특례제도 폐지는 두뇌 경쟁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산업이 한방에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박현욱 KAIST 교학부총장)

과학계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공계 병역특례제도 폐지는 국가 경제·산업이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박현욱 부총장에 따르면 한국 대기업 임직원 중 약 10%가 이공계 출신이고, 해를 거듭할수록 이공계 출신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공계 출신 우수인력이 한국 대기업의 경쟁력을 담보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이공계 병역특례제도를 폐지할 경우 수많은 석·박사들이 해외로 떠나고 이공계 기피현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의 연구인력 부족으로 국가 산업 경제가 위태해질 수 있다는 것이 박 부총장의 예측이다.

박 부총장은 "2012년 STEPI 보고서에 따르면 병역특례가 폐지될 경우 석·박사 학생 중 40% 이상이 해외로 유학 갈 것이라는 보고서가 있다"며 "올해 시점으로 봤을 때 40%가 넘는 학생들이 유학을 고려할 것이다. 엄청난 인재유출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 산업은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가운데 이공계 출신 우수인력이 배출되지 않으면 국가 자체가 휘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용현 국민의당 비례대표 당선인 역시 병역특례제도 폐지에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신 당선인은 "전문연구요원은 우수한 과학기술 핵심인력 양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산업기능요원도 기술기반 중소기업 육성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몇명의 인원을 병사로 더 보내는 것보다 이공계 우수 인력을 키우고 이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국방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 당선인은 "병특 폐지는 KAIST 등 이공계특성화대 졸업생은 물론 해외 우수대학에서 공부한 인재들의 진로 선택에 심각한 영향을 줄수 있다"면서 "이공계 우수 인력 수급은 국방분야 인력자원 못지않게 국가경쟁력 확보에 필수"라고 역설했다.

출연연 연구자들도 이공계 병역특례제도 폐지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표명했다. 조양구 표준연 박사는 "과학계 성장은 국가 성장과 귀결되는 중요한 문제"라며 "국가를 위해 과학계·산업계·국민 등 모두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계에서도 병역특례제도 폐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놨다. 김병진 쎄트렉아이 대표는 병역특례제도 폐지의 첫 타격은 중소기업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는 "중소기업에 탑 클래스라 불리는 인력들이 매년 1명~4명씩 병역특례로 들어와 큰 활약을 하고 있다"며 "병역특례가 폐지되면 탑 클래스 인력의 유인책이 없어질 것이고, 인력의 연속성도 깨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공계 특성화대학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김건영 KAIST 총학생회장은 "이공계 석·박사 인력들이 병사로 차출되는 것은 국방력에 큰 손실을 줄 것"이라며 "대다수의 과학특성화대학 학생들이 해외 유학을 택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발전에 상당한 저해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도 반대 입장이다. 홍남기 미래부 제1차관은 "미래 우수 연구인력 확보 측면에서 과학계·산업계 전문 인력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며 "국방부와 지속해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찬성 입장 "이공계 석·박사 특혜는 당연하다?···과학도, 특권의식 깨야"

병역특례제도 폐지가 국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의견 가운데 과학도들의 특권의식을 깨야 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적잖다.

문길주 UST 총장은 "군입대는 과학을 비롯해 예술, 인문 등 모든 분야가 경력 단절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계의 특권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과학계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면서 "기존 체계가 강해야 비로소 과학계가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출연연 B 과학자는 "공부만 잘하면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특권의식 자체를 깨야 한다"며 "국가의 혜택에 책임감을 가지고 국가 기대를 만족시키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출신 전자기기 산업계 A 대표는 "과학 불모지에서 현재 위치까지 만들어온 선배 과학자들을 기리고 척박했던 70년대를 회상하며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뜨거운 애국심을 품고 연구해도 부족할 판에 '편하게 연구할래', '손해 보는 연구는 안할래' 등의 잘못된 인식에 막혀있다"면서 병역특례제도 폐지를 지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B 대학 C 교수는 병역특례가 국내 현실에 꼭 필요한 제도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일부 이공계 학생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C 교수는 의하면 일부학생들의 경우 "병역특례가 폐지됐으니 해외 대학 갈 거야" 혹은 "정권이 썩었고, 난 피해자야" 등의 초등학생 사고방식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그는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분위기가 학계에 자리 잡았다"며 "여전히 큰 수혜자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도리어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학생의 특권의식이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역특례제도 폐지에 찬성한다는 학생의 의견도 있다. A 박사후과정 연구생은 "병역특례법 폐지가 연구현장에는 타격이 그다지 없을 것"이라며 "박사과정의 경우 기본 3년 과정에 추가로 1~2년을 더해야 한다. 특례제도를 활용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절반이 성공하지 못한다. 현역을 다녀와 학위를 따는 것이 시간상 더 이득이다"라고 말했다.

한 원로 과학자는 "이공계 병역특례제도는 과학계·산업계 전반을 고려해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며 "과학계도 국가 공동체의 올바른 개념을 인지하고 현명한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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