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커뮤니티서 문제 제기···"국방·우주·원자력 등 과학기술 전문 분야 발전 저해"
전문성 갖춘 관료 드물어···국제협력 등에도 부정적 영향

"공무원 직무순환제는 국방, 우주, 원자력 등 과학기술 전문분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다. 전문성과 경험을 두루 갖춘 해외 담당관들과 '대적'할 수 있는 관료가 없다. 이대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승산이 없다."

"같은 보직에 계속 있으면 나태해지고 비리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구더기가 무서워 계속 장을 담그지 못한다면 한국 교육도 미래가 어두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하던대로 가자고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출연연 기술사업화, 창업분야에서도 순환보직으로 인해 경험이나 감각을 갖춘 전문가가 없다. 2~3년 주기로 이 상황이 반복된다. 정부가 4차산업혁명과 창업을 중시하고 있지만 적어도 출연연에서는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그동안 창업과 기술사업화 등을 모두 경험하고 내린 결론이다."

12일 한 과학기술계 커뮤니티의 단체 SNS는 이른 아침부터 뜨거웠다. 과학자, 교수, 언론인, 시민 등 다양한 직군의 회원들로 구성된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회장 정용환)은 과학기술과 공무원 직무순환제를 놓고 열띤 논의를 펼쳤다.

과학기술분야 공무원 직무 순환제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인만큼 공무원의 전문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수면위로 거론되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이날 토론은 한 회원의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회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의견을 피력하면서 국가 발전을 위해 현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목소리가 모아졌다.  

이들은 공무원 직무 순환제도로 인한 장점에 공감하면서도 ▲전문성 갖춘 관료 양성 실패로 국방, 우주 등 첨단과학기술 분야 이해 부족 ▲지속적인 관료 교체로 국제 무대서 활약할 전문 관료 양성 실패 ▲교육의 질 저해 등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지적했다.

 1. 출연연 전문가A 
공무원 직무순환 제도가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과학자, 엔지니어, 공무원 모두 피해자다. 매번 새로운 공무원들이 올 때마다 다시 알려줘야 한다. 운영체제를 새로 깔고 재부팅하는 것처럼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특히 국방, 우주, 원자력 같은 전문분야에는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하다. 현 제도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낡은 제도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승산이 없다.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주저앉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커져만 간다.

이제는 집단의 이익을 벗어나 공익과 국가대계를 고민해야 한다. 과학기술정책에 국한하면 낭비되는 요소가 결코 적지 않다. 이스라엘 무기체계 담당관은 적어도 10년은 같은 보직을 갖는다고 들었다. 반면 한국은 직무를 순환하다보니 각 전문 분야에서 해외 담당관들과 국제무대에서 대적할 수 있는 관료가 없다. 상당수 관료는 각종 국제 회의에 나타났다가 어느 나라 관료의 친구도 되지 못하고 전근가게 된다.

한국에서는 국제협력, 정책, 기술을 분리해서 사용하는데 외국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를 과연 분리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연구를 수행하면서 국제협력을 위한 도움을 제대로 받는 것도 필요하다. 상대측과 공동연구를 하고 싶어도 이상한 형태로 방문하거나 워크숍만 하는 등 국민 세금만 낭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 출연연 전문가B  
공무원 순환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국가 미래가 없다. 시스템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현재 시스템은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까지 올리는데 기여했지만 그 이후로는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3. 출연연 전문가C  
한국은 전 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국가 중 하나이며, 혁신적인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혁신을 위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는 국가가 없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봐도 한국은 혁신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대단한 나라다.

하지만 과학기술정책이나 과학 기술 수준 제도 시스템 운영 측면을 보면 아쉬운 면이 많다. 특히 전문성이 매우 떨어진다. 연속성도 보장이 안되기 때문에 과학 발견 시대에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발명의 시대로 전환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4. 의료계 전문가  
이제 부정부패를 우려해서 사람을 자주 바꾸고,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정치가 기술을 통제하기 위해 교육자, 의료전문가, 기술자 등 전문직 종사자를 망신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규제 일변도의 입법을 양산하는 입법기관도 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

국가는 공무원을 장인급 능력을 보유할 인재로 육성한다는 분명한 목적의식하에 이들을 순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능력을 취득할 경우 한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이상 전문가로서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5. 교육계 전문가  
교육계 입장에서 보면 순환제도는 교육의 질 개선에도 손을 못대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직이 바뀌면 업무 파악을 위해 전임자가 무엇을 했는지 파악해서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새로운 시도를 하겠는가. 업무를 시작하고 문제점을 파악하면서 이를 바꿔보려하면 보직이 바뀌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전문성이 생길 틈을 안주니 복지부동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고질적인 공무원 사회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해야 하는데 큰 그림을 그리면서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서로 공감하면서 작은 변화를 추구하다보면 서서히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6. 공직자(30년 이상 근무)  
공무원의 업무는 연구원, 의사, 교수 등 전문직과 달라서 여러가지를 알아야 잘 수행할 수 있다.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고, 문제가 있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공무원은 예산과 법률로 일하는데 하나의 업무를 맡아 배우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넣어 예산이나 법률에 반영하고 착수하기까지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2년 주기로 순환보직을 운영하는 것이 좋다. 역대 정부에서 장·차관이나 실·국장들이 한 자리에 오래 있는 경우에 문제가 많았다. 다만 국제협력에 국한해서 생각해보면 평생 국제협력 업무만 하면서도 인사나 처우에서 불이익이 없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한편, 토론을 지켜 본 한 출연연 전문가는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토론회를 제안하며 "국제협력분야에서 외국은 10년 이상 동일한 인사가 나오는 반면 한국은 매번 바뀌는 문제점이 있어 왔다"면서 "순환보직의 장점을 고려하는 한편 전문 공무원 육성에 따른 혜택 등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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