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에 집중 투자···주력 제품 美 FDA 승인 예정
이직한 직원 거의 없고 엔젤투자자들의 지원 큰 힘

1996년 30대 중반의 젊은 연구자가 돌연 미국에서 귀국했다. 시애틀 현지의 벤처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자신의 연구 성과가 미국에 귀속되는 것을 피하고 모국의 바이오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귀국 후 이듬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 분야를 찾아 '뚜벅뚜벅' 연구개발에만 집중했다. 계획보다 연구개발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전직원들이 합심해 견뎌냈다. 노력의 결실은 진실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1세대 바이오벤처 진켐의 우진석 대표 이야기다. 진켐은 유전자(Gene)와 화학(Chemistry)에서 유래한 회사명처럼 유전자를 활용해서 화학물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춘 회사다.

주력 제품인 다기능성 식품 원료 '시알릴락토스(Sialyllactose)'는 올해 중으로 미국식품안전처(FDA GRAS) 승인을 앞두고 있다. 진켐은 미국식품안전처의 인증 획득을 위해 쥐, 개, 돼지 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진켐 연구진은 이를 기반으로 대량 생산 설비 구축, 글로벌 사업화 등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진켐 임직원들의 단체 사진. 창업 초기부터 함께 한 연구원들이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사진=진켐 제공>
진켐 임직원들의 단체 사진. 창업 초기부터 함께 한 연구원들이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사진=진켐 제공>
◆"쉽게 가기보다 어려워도 남이 안하는 길 선택"

"남들이 안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당화기술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세계에서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한 것이 20년이나 걸렸네요."(웃음)

우진석 대표는 지난 20여년간의 과정을 회상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의 한마디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바이오 창업 1세대인 그의 지난 과정들은 순탄치 않았다. 월급을 못 줄 정도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던 때도 있었고, 불가피하게 연구소를 이동하거나 주력 연구분야를 바꾸기도 했다. 생존 상 지분 구조도 많이 희석됐다. 그는 주변에서 남 좋은 일을 시켰다는 말도 듣지만 스스로 '행복한 사장'이라고 자부한다.

진켐이 설립된 1997년 당시는 바이오 창업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바이오기술은 연구소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유전자 치료제를 주요 연구분야로 삼았지만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에게 신약개발은 넘어야 할 한계가 많았다.

바이오기술은 어느 분야보다 자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특히 벤처는 규모상 여건상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 진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우 대표는 이대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2000년대 초반 그동안 연구개발했던 기술을 타 업체에 이전하고 새로운 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우 대표는 남의 것을 복제하면 금방 할 수 있지만 경쟁도 치열하고 미래 전망도 어둡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선택하고 고집했던 것이 당화(Glycosylation) 기술이다. 당은 생물학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기술로 생물이 자신과 남을 구별할 수 있는 이정표로 작용한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진켐은 고가의 당화 물질인 시알릴락토스(Sialyllactose) 생산 기술을 개발해 냈다.

우 대표는 "진켐은 시간이 오래걸렸지만 그동안 남의 것을 배끼지 않고 우리만의 기술을 개발해 왔다"면서 "그동안의 노력을 바탕으로 올해나 내년 중으로 결과를 낼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창업초기부터 지켜온 철학, 직원 대부분 이직 없어 100년 기업 꿈꿔"

그는 창업 초기부터 2가지 철학을 정하고 지켜냈다. 첫째는 앞뒤가 다른 사람이 되지 말고, 둘째는 남을 탓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이러한 원칙을 지켰다. 그 결과 스스로에게 원동력이 됐고 약속을 지켜내면서 자연스럽게 내외부의 도움으로 이어졌다. 

현재 진켐에서 근무하고 있는 20여명 중 대부분은 연구인력이다. 신규직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진켐이 첫 직장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이직이 없었다는 의미다. 대학생으로 우 대표와 인연을 맺은 직원들은 어느덧 40대 중후반이 됐다. 

직원의 상당수는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우 대표가 직원 전체에게 준 주식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보다 많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사장으로서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생각도 많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주식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1주라도 높은 가치로 만들어야 하겠죠."

현재 진켐의 주주는 대부분 연구자, 대학 교수, 제약회사 등 엔젤투자자다. 창업할 때를 제외하고는 벤처캐피털의 자금을 최소화했다. 지난 20여년간 주주들은 언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진켐을 지지해 왔다. 이왕 늦어진 것 해외에서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생명공학 기업이 되라며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대기업 사장 등을 역임했던 한 지인은 바이오 벤처가 성과를 과포장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바이오 벤처에 회의적이었지만 진켐의 주주가 됐다. 인허가를 담당하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담당자도 오히려 진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주주가 되고 싶다고 할 정도다.

우 대표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빨리 투자하고 수익이 나야하는데 매년 기술개발하겠다고 한 것이 길어져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가 창업하고 20년이 흐르면서 주변 바이오 벤처 중에는 빠르게 성장해 상장까지 성공하기도 했고 일부는 흔적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우 대표의 목표는 일본, 독일처럼 1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바이오 기업을 만들고 이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이다.

그는 "20년 걸린 회사인 만큼 점점 더 나아지면서 100년 이상 이어지고 우수한 인재들도 영입해 후배들이 기업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켜 바이오 기술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재야에서 묵묵히 R&D에 투자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는 기업들이 인정받는 환경도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실험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우진석 대표.<사진=강민구 기자>
실험장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우진석 대표.<사진=강민구 기자>
◆올해 말 美 FDA 승인 목표···글로벌 사업화 원년으로

진켐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알릴락토스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업체로 꼽힌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국에서 이미 제조특허도 확보했다.

시알릴락토스는 모유 속에 함유되어 있는 대표적인 HMO(Human Milk Oligosaccharide)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은 면역 활성, 감염 예방, 뇌 발달, 인지력 개선 등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 

연구진은 기존에 핵산, 당, 인산 등을 합성할 수 있는 유기화학응용 기술에 효소, 유전자조작 등이 가능한 생물학적 전환 기술이 더해진 기술력을 보유했다. 이러한 포도당화(Glycosylation) 기술을 활용하면 저가물질에 효소 등을 합쳐 30여종 이상의 당화물질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러한 당화물질은 기능성 건강식품, 의약품, 기능성 화장품 등에 활용 가능하다.

가령 1kg당 20달러 수준의 피루브산(pyruvic acid)을 시알릴락토스로 합성하게 되면 250배 가치를 높인 5000 달러 이상의 물질로 활용될 수 있다.

시알릴락토스의 효능.<자료=진켐 제공>
시알릴락토스의 효능.<자료=진켐 제공>
그동안 시알릴락토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 단계별로 합성, 추출 등의 단계별 제조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극소량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높고 활용성이 적었다.

전세계적으로 살펴보면 시약용으로 mg 단위로 일부 판매하는 곳은 존재한다. 하지만 진켐은 이를 kg 단위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면서 식품으로의 활용성을 높였다. 

특히 연구진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플랫폼 기술을 이에 적용했다. 이들은 사람이나 동물이 어떠한 물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환경을 외부에서 조성하면 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그리고 하나의 장소에서 여러가지 물질과 유전공학 방법으로 재생한 효소를 넣고 반응시키는 'One pot 효소반응시스템'을 개발해 냈다.

이 플랫폼을 활용하면 시알릴락토스 뿐만 아니라 화장품 소재, 맞춤형 소재, 의료기기용 소재 원료 등도 생산 가능하다. 진켐이 김병기 서울대 교수팀과 함께 개발해 적용해 출시한 한국화장품의 '제네르떼'가 대표적인 사례다.  

진켐 연구진은 시알릴락토스에 대한 다양한 기능을 연구해서 홍삼처럼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건강식품으로 먹을 수 있는 안전하고 효능있는 제품을 사업화해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생명연, 화학연 등 국내 연구 기관 뿐만 아니라 빌&맬린다 재단, 워싱턴대, 일리노이대 등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김리라 전무는 "진켐은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넘어 연구개발에서 사업화로의 전환 단계에 있다"면서 "업계 최고 수준의 생합성 공정 기술력과 시알릴락토스의 대량 생산 공급 기술을 통해 글로벌 사업화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 식이섬유 학회에 참가해보면 해외 연구자들이 먼저 진켐을 알아보고 축하한다는 말을 건넬 정도로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다"면서 "투자자, 연구자들에게 회사 가치를 전달하는 한편 사업화 책임자로서 나스닥 상장까지 이뤄내는 것이 꿈"이라고 덧붙였다.

20여년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진켐.<사진=강민구 기자>
20여년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진켐.<사진=강민구 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