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900일의 몸부림' 주제로 이순석 박사 강연
대덕에겐 '공유 시스템', 개인에겐 '동사적 삶' 강조

"연구소를 다녀보면 뛰어난 기술이 엄청나게 쌓여있습니다. 쌓여있는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출연연의 곳간을 열어젖히고 목적함수의 실현을 위해 인적·지적·물적 자원의 교류를 자유롭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낯섦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난 3년간 '새로운 통찰을 생각하는 사람들'(새통사) 모임을 이끌어 온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은 134차 새통사 모임에서 '900일의 몸부림'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며, 대덕의 변화를 위한 공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6년 2월부터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보직을 맡은 이순석 박사는 새통사를 매회 이끌어왔다. 900여일을 이끌면서 '우리가 채워야 할 5가지와 우리에게 필요한 1가지'를 깨닫게 됐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박사는 새통사를 통해 가장 크게 변화한 건 '자신'이라고 밝혔다. 1993년 ETRI에 첫발을 디딘 그는 출근, 회의, 연구, 토의, 퇴근, 주말 휴식이라는 반복되는 연구 생활을 해왔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모으는 일은 생각지도 않았단다.

그는 "시시각각 새로운 경험으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을 느꼈다. 특히 900일의 여정을 20권의 수첩에 남기면서 정리가 됐다"면서 "사람이 살아 움직이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며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은 사람의 혼 '얼'이다. 사람은 동사적인 삶으로 시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덕특구를 비교·설명하고 있는 이순석 박사의 모습. <사진= 김인한 수습기자>
대덕특구를 비교·설명하고 있는 이순석 박사의 모습. <사진= 김인한 수습기자>
◆"구획된 연구단지... 매일 만나서 얘기 나누고, 기술 공유할 수 있었으면"

최근 현장에선 마곡, 판교, 홍릉의 행보가 이미 대덕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곡에는 축구장 24개가 들어갈 수 있는 17만5000m²(약 5만3000평) 부지에 LG사이언스파크가 들어서면서, 약 2만2000명의 석·박사 인재를 흡수했다. 판교와 홍릉에서도 이미 4차 산업혁명 시스템을 접목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외부의 변화에 대해 이 박사는 "마곡, 홍릉, 판교에는 수많은 기업과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고려장'"이라며 "우리 스스로 비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축적된 대덕의 기술을 어떻게 공유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넓은 땅에서 자기 땅만 지키고 살아가면 남을 이해할 수 없고, 축적·공유·공감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덕 내 공유와 소통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한 것.

 

이순석 박사는 "이 넓은 대덕연구단지 땅에서 자기 땅만 지키고 살아가면 남을 이해할 수 없고, 축적·공유·공감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덕 내 공유와 소통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진은 구획된 대덕연구단지의 모습. <사진=김인한 수습기자>
이순석 박사는 "이 넓은 대덕연구단지 땅에서 자기 땅만 지키고 살아가면 남을 이해할 수 없고, 축적·공유·공감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덕 내 공유와 소통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진은 구획된 대덕연구단지의 모습. <사진=김인한 수습기자>
◆일의 방식, Top-down에서 '메이커'들이 오픈 소스 형태로 전체를 만들어가는 형식돼야

이 박사는 공유 시스템과 일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화두를 계속해서 던졌다. 4차 산업혁명이 가깝게 다가오면서 변화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박사는 "무한 다품종 소량 생산시장은 각자의 개성에 맞는 서비스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면서 "과거에 일직선상으로 일하던 것들을 이제는 정보를 공유하는 방향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각자의 개성에 맞춘 무형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Bottom-up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오픈 소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함께 경험하고 커가는 것"이라며 "오픈 소스를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술과 시장생태계는 밀접하다. 시장이 활발해야 기술의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4차 산업혁명에서는 다중이해관계자가 모여 있어도 이해의 상충을 조절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면서 "기술 하나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기술이 시장에서 꽃 피려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고, 이해관계자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축적된 기술과 사람으로 새 판짜기, 동사적 삶과 용기

대덕연구단지는 45년 동안 축적된 기술과 사람이 있다. 이 박사는 지금이야말로 새 판을 짜야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연구원들이 가만히 있으면 심심해 죽는 사람들이다. 가치를 수행하는 목적만 있으면 목표는 자발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집단"이라면서 "우리의 시선을 끌어올리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 가치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구획된 연구단지를 통합의 장으로 만들려면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 박사는 "무언가 낯선 것을 접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며 "용기가 생기면 점을 찍을 수 있고,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된다. 출연연을 얽히고 설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는 반드시 갈등이 생기는데, 그 갈등을 맞이할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함진호 ETRI 박사, 성단근 KAIST 교수, 이순석 ETRI 부장, 한기철 ETRI 전 소장, 하원규 ETRI 박사.
왼쪽부터 함진호 ETRI 박사, 성단근 KAIST 교수, 이순석 ETRI 부장, 한기철 ETRI 전 소장, 하원규 ETRI 박사. [사진=김인한 수습기자]
새통사는 강연을 진행하고 서로 격의 없는 토론을 진행한 뒤 강연 전문과 후기를 남기고 공유한다. 

134차까지 진행해 온 이 박사에게 소감을 묻자, "돌아보면 내가 진화한 시간이었다"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의 세계를 접하고, 그걸 4~5시간 정리하면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앞으로도 새통사를 통해 '나와 우리만의 세상'에 갇히지 않고 더 나아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새통사는 다가오는 디지털혁명에 도전하는 기술을 탐색하기 위한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자발적 공부 모임이다.
 

 

'동사적 삶'을 강조한 이순석 박사에게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머리는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며 "젊은 친구들이 남 신경쓰지 않고 끌리는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진=김인한 수습기자>
'동사적 삶'을 강조한 이순석 박사에게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머리는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며 "젊은 친구들이 남 신경쓰지 않고 끌리는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진=김인한 수습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