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청년, 부탁해 ㊼] 김영 기계연 박사의 연구 방법
"화학공학은 기계+화학"···두 분야 연결해 기계별 설계 조건 계산한다

김영 기계연 박사는 기계들의 설계 조건을 계산하는 화학공학자다. 작업복에 헬멧을 쓰고 맡은 기기가 잘 돌아가는지 점검하는 것도 그의 일과 중 하나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영 기계연 박사는 기계들의 설계 조건을 계산하는 화학공학자다. 작업복에 헬멧을 쓰고 맡은 기기가 잘 돌아가는지 점검하는 것도 그의 일과 중 하나다. <사진=한효정 기자>
남초 또는 여초. 특정 집단에서 한쪽 성비가 유독 높은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그중 '기계공학'은 이공계의 대표적인 남초 사회다. 

공과대학에서 10년, 한국기계연구원(원장 박천홍)에서 10년. 여성 동료를 만나기 어려운 분야에서 20년을 여성 공학자로 살아 온 김영 박사에게 이제 이 환경은 익숙하다. 
 
기계연 전체 정규직 연구자 320여 명 중 여성은 18명. 그 수는 늘고 있지만, 비율은 김 박사가 입사할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성이라 주목 받는 일도, 성별도 더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며 "기계 연구를 하는 데 성별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에너지기계연구본부 열시스템연구실에서 공장의 공정 설계를 연구한다. 실험실의 유일한 여성이라는 사실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연구실에서 몇 안 되는 '화학공학자'라는 것.
 
그는 "화학공학은 기계와 화학을 합친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며 "나는 연구실에서 그 두 분야를 잇는 역할을 한다"고 소개했다.

◆ 공장 설계 '최적화'에 파고들다

김 박사는 화학공학 중에서도 공장 설계 '최적화'를 전문으로 배웠다. 학부 수업 시간, 어려운 개념을 '인생의 최적화'부터 재밌게 설명한 교수의 수업을 듣고 이 학문을 더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여러 답 중 가장 좋은 답을 찾는 최적화 개념이 멋있었다"며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김 박사는 대학원에서 원유가 정유공장을 거쳐 주요소로 배달되는 공급망 최적화를 연구했다. 그는 기계연에 오기 전까지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냈다. 

학교를 떠나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 김 박사에게는 화학과 기계, 두 선택지가 있었다. 기계를 택한 것은 배운 것을 응용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는 "현장에서도 배울 것이 많아 처음에는 공장이 많은 울산이나 여수에서 직장을 구하려 했는데 우연히 졸업한 선배를 통해 기계연을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10년 동안 대전에 살았지만, 그때까지 기계연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마침 기계연에서도 김 박사가 필요했다.

◆ 기계와 화학 융합···신개념 '반응기' 개발 도전 

2년 전 촬영한 초고온 열교환기 성능시험장치를 이용해 연구하는 모습. <사진=김영 박사 제공>
2년 전 촬영한 초고온 열교환기 성능시험장치를 이용해 연구하는 모습. <사진=김영 박사 제공>

그가 몸 담은 열시스템연구실에서는 발전소의 공정 기술과 열교환기, 반응기 등 기계를 개발하고 성능을 향상하는 연구를 한다. 개별 기계를 만든 다음에는, 이것들을 하나로 묶어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김 박사의 능력은 여기서 발휘된다.

"제 일은 한 마디로 연결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기기들이 시스템에서 제대로 운전되려면 기계마다 최적화된 설계 조건과 운전 사양을 알아야합니다. 입사 당시, 이 설계 조건을 계산할 연구자가 필요했어요. 화학공학과에서 배운 것을 이렇게 활용하게 된 거죠." 
김 박사는 그동안 신개념 담수화 공장 설계 개발에 참여했다. 얼마 전부터는 남는 신재생에너지를 연료로 만드는 'Power to Fuel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시스템은 여러 기계 장치들로 구성된다. 태양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하는 기계,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합성가스나 메탄을 만드는 반응기 등이다.

그 중 연구실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반응기'. 반응기가 원하는 생성물을 만들려면 열을 제어하는 것이 중요한데, 연구팀은 기존에 상용화한 '열교환기' 기술을 변형해 크기가 작고 효율이 높은 '마이크로채널 반응기'를 개발 중이다. 

김 박사는 "태양이나 풍력으로 얻은 에너지는 남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에너지 공급을 조절할 기계와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기계의 핵심 기술을 확보한 다음, 경제적으로 최대 이익을 내는 시스템 최적화 연구에 돌입할 계획이다.

김 박사는 이 연구에서도 기계와 화학을 오간다. 그는 "기계에 대한 이해는 남들보다 부족해도 화학 반응은 익숙한 내용이라 실원들의 소통 중간다리가 됐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도 많다.

"기계공학자와 화학공학자가 하나의 문제를 보는 관점은 상당히 달라요.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여태까지 없던 새로운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기계와 화학공학의 융합이 또 하나의 역량이 된 거죠."
 
◆ 30대를 보내며···"10년 뒤 계획 세워야"

김영 박사가 말하는 젊은 과학은 '새로운 통찰'. 김 박사는 "60대에도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지금 역량을 높여야 한다"며 "역량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통찰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영 박사가 말하는 젊은 과학은 '새로운 통찰'. 김 박사는 "60대에도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지금 역량을 높여야 한다"며 "역량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통찰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요즘 김 박사는 연구원으로서 지금까지 잘 해왔는지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할지 고민이 늘었다. 그는 "젊은 과학자라면 '사색과 꿈 꾸기'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남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조금만 지나면 나와 내 동료가 중심이 되는 세상이 와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세상을 보고 구체적인 목표를 잡는 것이 필요하죠. 10년 뒤 뭘 할지 생각해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날 겁니다."

신재생에너지 시스템 연구도 이런 고민과 팀원의 공감을 통해 시작했다. "연구원을 다니는 동안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많아야 3개일텐데, 테마를 정해서 연구하고 싶어요. 그동안 과학자들은 자원 만들기에 집중하느라 자원 순환을 생각하지 못했죠. 앞으로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순환고리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박사는 이공계 인력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상황에도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는 "할 일은 많고 기회도 많지만, 연구를 하려는 학생들이 확 줄었다"며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미래를 다양하게 볼 수 있게 도와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내년이면 40대가 된다. 그동안 주변의 도움으로 자녀들을 키우고 학업과 연구도 쉬지 않고 이어왔다. 그는 "3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의미 있는 연구로 보답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 김영 박사는

KAIST 화학공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연구실에서 6개월간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냈다. 이어서 2008년 기계연으로 자리를 옮겨 에너지기계연구본부 열시스템연구실에서 공장 시스템 내 각 기계의 설계 조건을 계산하는 연구를 한다. 현재 탄소 재순환 시스템에 필요한 마이크로채널 반응기를 개발 중이다.

2004년 학회에서 대학원 지도교수인 박선원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사진=김영 박사 제공>
2004년 학회에서 대학원 지도교수인 박선원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사진=김영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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