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은 '우리는 잘 모른다'는 무지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됐다"

◆인류의 끝없는 욕망 '과학혁명'

오랫동안 개별 사피엔스는 무지했다. 역사의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1500년 경 사피엔스는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생명체의 운명을 바꿀 혁명을 일으켰다. 하라리는 이 혁명을 과학혁명(the Scientific Revolution)으로 명명한다. (사피엔스 p.346)

과학혁명은 인류 스스로의 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이다. 인류는 과학혁명과 함께 새로운 힘의 원천인 진보사상을 지니게 됐다. 진보의 사상은 인류가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를 극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다. 인류가 역사의 주체로 다시 깨어난 것이다. 

인류가 누리는 자본주의는 성장을 지고의 가치로 섬긴다. 이 가치관을 이끄는 견인차는 과학혁명에 의한 진보사상과 인본주의다. 하라리에 의하면 약 1500년 이전까지 인류는 자신에게 새로운 의학적·군사적·경제적 힘을 얻을 능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지배자의 관심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집중됐다. 새로운 힘을 획득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능력 강화를 우선했다. 과학기술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공동체의 부를 창출하고 복지의 향상을 이끄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5세기 동안 인류는 과학연구에 투자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신뢰의 공유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1500년 무렵 지구상에 살고 있던 호모 사피엔스의 수는 5억명이었다. 2000년대는 70억명으로 불어났다. 인간은 생물종의 관점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종이 됐다. 500년간 인구는 14배, 생산량은 240배, 개인당 소비하는 에너지는 115배로 늘어났다. 지구 생태계 차원의 사피엔스는 자신의 복제품을 암세포처럼 자가증식을 거듭하는 포식자와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어떻게 이토록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과 융성을 가져오게 됐을까? 하라리는 그 답을 과학혁명과 자본주의의 결합에서 찾는다. 과학혁명으로 사피엔스는 다시 깨어나고, 미지의 영역을 찾아 나서고 그 앎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게 됐다는 것이다. (사피엔스 p.355)

과학혁명의 전개와 인간의 욕망.<그림=하원규 박사>
과학혁명의 전개와 인간의 욕망.<그림=하원규 박사>
모든 생물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위험한 종이다. 그것을 각인시켜 준 사건은 원자폭탄의 개발이다.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앨러머고도에 최초의 원자폭탄이 터졌다. 핵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 폭발을 목격한 후 힌두 서사시(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이젠 나는 죽음이 됐다. 세상을 파괴하는 자가 됐다." (사피엔스 p.351)

1969년 인류는 달에 착륙했다. 이것은 역사적 위업 정도가 아니라 진화적, 우주적 업적이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욕구는 끝이 없다. 제국자본주의 체저로서의 과학혁명은 스스로 신이 되려는 자화상을 상상한다. 그러나 그 탐욕의 화신은 사피엔스의 세계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가르고, 푸른 지구 행성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인간 욕망의 심원은 어디 쯤에 있을까?

◆무지의 발견 + 과학적 진보사상 = 근대과학의 본질

근대는 세상과 사물에 대하여 '우리는 잘 모른다'는 과학적 사고와 함께 출발했다. 하라리는 1500년 경 일어난 과학혁명을 '무지의 발견'(The Discovery of Ignorance)에서 찾는다. 중세까지 인류는 전지전능한 신의 권위에 의존했다. 따라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지를 인정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발견에 대한 모험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은 지금까지 지식의 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무지의 혁명(revolution of ignorance)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가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사피엔스 p.356)

무지의 발견은 자연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눈을 뜬 신문명 개화다. 무지의 발견은 곧 전통지식에서 근대과학으로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었다. 종교 시대는 세계의 모든 것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다. 알고 싶은 것은 성경이나 코란, 불교 경전이나 유교 경전에 모두 담겨 있고 또 위대한 신, 과거의 현자들의 말씀만이 중요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면서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젠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능력을 향상시키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사상을 가지게 됐다. 지적 탐구심을 향상시키고, 자신을 진보시키려는 새로운 상상력의 탄생이다. 인간이 역사의 흐름의 주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7만 년 전의 인지혁명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의 돌연변이였다. 이에 반해 500년 전 과학혁명은 인간이 스스로 자각하고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자발적 지적 변이였다. 과학혁명의 본질은 무지의 수용과 진보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상상력의 탄생이다. 동시에 새로운 보편적 질서의 발견과 여기에서 촉발된 믿음의 소산이기도 하다. 

전통 지식과 근대과학의 관점 비교.<자료=하원규 박사>
전통 지식과 근대과학의 관점 비교.<자료=하원규 박사>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The New Instrument)이라는 과학선언문에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주장했다.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는냐 안 주느냐의 여부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 전환을 선언했다. 

현대과학에는 도그마가 없다. 경험적 관찰들을 모은 뒤, 수학적 도구를 통해 하나로 결합하면 된다. 과거에는 논리학, 문법, 수사학이 교육의 핵심이었다면 현대과학은 수사학과 논리학은 철학의 한 분과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통계학이 없었고, 모든 학문 분야의 왕자는 신학이었다. 현대과학의 통계학은 많은 학문의 기초 필수과목이 되고 신학은 신학교에서만 가르친다. 

그렇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과학과 기술, 종교, 이데올로기 그리고 자본의 만남으로 인해 발생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냉철하게 저울질해 새로운 과학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신들의 무장해제, 권력·자원·연구의 대동맹

과학혁명 이전에는 번개를 신의 분노라고 생각했다. 분노한 신이 죄인을 처벌하기 위해 때리는 망치로 여겼다. 18세기 중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 하나가 시행됐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번개는 단지 전류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실험하기 위해 번개를 동반한 폭풍 속에서 연을 띄운 것이다. (사피엔스 p.377)

프랭클린은 이 실험을 통해 번개는 신의 변덕이 아니라 전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리고, 피뢰침을 발명했다. 과학의 힘으로 새로운 지식을 얻고 또 어떤 난제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린 것이다. 하라리는 이 사건을 신들의 무장해제(Disarming the Gods)라는 은유적 표현을 하고 있다. 

이로써 힘의 원천은 신에서 과학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지만 새로운 지식의 추구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과학이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지는 이데올로기, 정치, 경제의 힘에 영향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과학의 욕망과 형태를 규정한다. 과학과 제국과 자본의 피드백은 지난 500여년 간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엔진이었다. 진보는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상호지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힘을 얻은 자본과 국가 그리고 종교는 그 힘을 이용해 새로운 동력을 얻는다. 그 중 일부는 또 다시 과학연구에 투자된다. 과학 그 자체만으로 세상의 전체 시스템을 작동하는 힘이 없다. 과학의 발전이 정치적·경제적·종교적 관심에 의해 연구의 방향성이 좌우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랭클린의 피뢰침 실험도와 '선순환 강화 고리 연대'로서의 과학 혁명.<자료=하원규 박사>
프랭클린의 피뢰침 실험도와 '선순환 강화 고리 연대'로서의 과학 혁명.<자료=하원규 박사>
과학과 기술의 융합은 새로운 권능을 창출한다. 정치 권력은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 싶어한다. 국가와 자본가에 의한 자원투자가 일어나면서 자본주의가 한층 고도화된다.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새로운 자원에 대한 투자가 정당화되고 투자의 우선순위가 좌우된다. 여기에 제국주의자의 유혹이 스며든다. 이처럼 권력, 자원, 연구라는 3개의 요소는 멋진 선순환 고리를 강화한다. 그들은 원천적으로 상호보완과 공통이익을 누리는 운명공동체다.

제국주의와 과학은 환상적인 커플이 되었다. 과학은 투자됨으로써 발전하고, 성장한 과학은 제국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과학혁명 이후 유럽인들의 탐험과 정복은 영토의 확장과 지식획득으로 정렬되었다. 제국의 과학을 떠받치는 것은 자본주의이다. 미래는 현재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는 진보사상이라는 가치관은 그 불쏘시개다. 때를 맞춰 신용창조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시스템으로 옮겨붙는다. 이로써 불확실한 모험적 경제활동은 안정적인 체제로 착근할 수 있게 되었다.  

하라리에 의하면 유럽제국은 획득한 지식에 의하여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근대과학과 유럽 제국주의 사이에 강력한 대동맹의 형성이다. 그렇지만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고자 하는 과학적 정신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촉매로 동원되었다.

◆제임스 쿡의 시선, 빅데이터와 제국거점 확보

화폐·제국·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적 존재다. 마찬가지로 과학도 인간이 만든 가상적 질서다.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분석돼야 한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진실이 아니다'라고 규정한 것은 근대인간의 판단이다. 르네상스를 계기로 유럽제국을 중심으로 근대과학이 발전한다.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둥글고 상상 이상으로 넓고 거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과학적 정신은 미지의 대항해 길을 추동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발명 중의 하나는 화약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그 화약을 주로 폭죽에 사용했다. 몽골의 침입에 송 제국이 무너질 때도 중세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조직하여 엄청난 무기를 발명하여 제국을 구하겠다고 생각한 황제는 없었다." (사피엔스 p.373)

아시아가 유럽에 비해 뒤처지게 된 것은 테크놀로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유럽에 비해 탐험과 정복의 정신구조가 취약했다. 또 이를 받쳐주는 가치관이나 신화, 사회정치 체제도 상대적으로 성숙되지 못했다.

유럽의 제국주의는 역사상 존재했던 다른 모든 제국주의 행동방식들과 완전히 달랐다. 과거의 제국 추구자들은 자신이 이미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복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활용하고 퍼뜨리는 것에 불과했다. 아랍인, 로마인, 몽골인, 아즈텍인들이 탐욕스럽게 새 땅을 정복한 것은 권력과 부를 찾아서였지 새 지식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사피엔스 p.402)

제임스 쿡의 태평양 여행.<자료=네이버 지식백과>
제임스 쿡의 태평양 여행.<자료=네이버 지식백과>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새 영토를 찾아 나섰다. 아득한 대양을 횡단하며 새 지식을 획득하고 축적해갔다. 18-19세기 유럽을 출발해 먼 나라로 향한 원정탐험대는 거의 모두 과학자를 배에 태우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새로운 과학지식의 발견이었다. 제임스 쿡은 영국의 탁월한 탐험가다. 1762년 영국 정부는 쿡 선장에게 태평양 탐험 임무를 부여했다. 그의 탐험으로 오늘날 태평양 지도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이 탐사대에는 천문학자 이외의 다수의 과학자가 함께했다. 관련 분야를 아우르는 학제적 과학 탐사팀이었다. 

쿡 탐사대는 태평양을 탐험하면서 천문학, 지리학, 식물학 등 그 지역의 방대한 데이터를 체계화했다. 오늘날 IoT(사물인터넷)와 AI(인공지능) 등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의 촉발요인은 빅데이터에 있다. 그들은 이미 빅데이터의 전략적 가치를 읽은 선지자인 셈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탐사대가 수집한 새로운 지식과 데이터는 군사적 가치가 높았다. 

캡틴 쿡이 확보한 빅데이터 기반의 지식과 전략거점은 오스트렐리아와 뉴질랜드의 식민지화에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제임스 쿡은 위대한 항해가이자, 영국 제국주의의 팽창기반을 확보한 전략적 선봉자였다. 하라리는 "과학과 제국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제임스 쿡 선장과 식물학자 조지프 뱅크스 같은 사람들은 과학과 제국을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사피엔스 p.395)

◆하원규 박사는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사회정보학 박사를 마쳤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정보연구정책실장, IT정보센터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슈퍼 IT 코리아 2020' '꿈꾸는 유비쿼터스 세상'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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