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렴과 발산 과정 반복되며 생태계 만들어져야

4차 산업혁명이 글로벌 이슈로 부각된 지 수년이 지났다. 아직까지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특성과 대응방법에 많은 논란이 남아있지만, 첨단기술로 인해 사회 대변혁이 시작될 거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특이점(Singularity, 기술이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특정 지점)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미래학자 커즈와일은 2015년 생쥐 두뇌 정도의 능력을 확보한 인공지능이 2023년에는 인간의 두뇌를 능가하고, 2045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두뇌를 합친 것 이상이 되는 지점 즉, 특이점이 시작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최근 특이점 이론은 가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IBM의 인공지능 로스는 파산관리 변호사로 공식 선임되었고, IBM 왓슨의 대장암·직장암 진단 정확도는 90%를 넘어섰다. 테슬라의 AutoPilot은 이미 인간 개입을 배제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2045년 이전에 예상보다 빨리 특이점이 올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급진은 인류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더 큰 충격은 기술 자체의 깊이뿐만 아니라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요소들의 결합이다. 나아가 글로벌 기업들과 전 세계 연구자들의 협업 네트워크가 만든 위협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자동차 센서, 빅데이터, 딥러닝 알고리즘, 의료데이터 그리고 기업의 이익 등과 결합해 인간의 삶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충격일 이유도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최초로 언급한 미국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 역시 이러한 점에 주목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2가지 전략 즉, 줌인(zoom-in)과 줌아웃(zoom-out)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줌인은 기술 자체의 잠재력을 깊이 이해하는 전략이고, 줌아웃은 여러 기술을 멀리 보며 기술간 연결·융합과 상호작용, 인간에 끼치는 영향 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전략을 뜻한다.

미국 과학재단(NSF)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융합은 이질적 요소들이 하나로 모이는 수렴(convergence)과 외부로 확산되는 발산(divergence) 과정이 반복되며 여러 응용분야로 확대된다고 말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 같지만, 요지는 이렇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면 기술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줌인 시각과 기술과 경제·사회의 상호작용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줌아웃 시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의 관점은 줌인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을 단순히 첨단 기술이 가져올 미래 정도로 이해하는 탓에 정부의 정책 역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5G 통신 등 개별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래서는 반쪽짜리 혁명일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철학적 기반이 '융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줌아웃 전략에 더 주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련 기술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동시에, 미세먼지 문제해결에 어떠한 기술들이 융합되어야 하는지, 어떠한 기관들과 기업들의 협력이 필요한지, 제도적 보완방법과 기업·시민사회의 협조를 끌어낼 방안은 무엇인지까지 고려하는 포괄적 정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줌아웃 기반 전략에서는 초학제적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생태계적 관점도 요구된다.

중소기업 정책도 마찬가지다. 개별 기업의 경쟁력은 보유한 기술, 지식, 경험, 기술뿐만 아니라 네트워크의 융합을 통한 생태계의 유효성에 따라 결정된다. 지금까지 정부의 중소기업 기술사업화 지원사업들은 줌인에 몰입해 있었다. 중소기업에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지원사업을 추진할 때는 R&D지원, 기술평가, 기술이전, 마케팅, 신사업 발굴 등 기술사업화 개별요소를 따로따로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생태계 개념을 도입해 종합적으로 기술사업화를 지원하는 사업, 줌아웃 전략을 실현하는 사업이 시작되고 있다. 지원기관이 특정 요소를 단편적으로 기업에 제공하는 대신, 하나의 기업에 여러 분야 전문가가 붙어 상호 작용하면서 기술사업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결하는 체계,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사업이다. 이는 기술사업화 요소와 주체들이 하나로 모이고 발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NSF가 말하는 융합에 부합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KISTI가 추진하는 생태계형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은 2017년 대전시의 '생생기업 해커톤 캠프' 사업을 통해 국내 최초로 선 보였고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 줌인과 줌아웃을 아우르는 지원사업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국가 경제·산업 전반에 '집중하기'를 넘어선 '넓게 보기' 패러다임이 확산됐으면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전 세계적인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앞서갈 방법이기 때문이다.

◆김은선 박사는

김은선 센터장.
김은선 센터장.

중소기업 기술혁신 전문가다. 중소기업 기술혁신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며 다수의 혁신성장 성공사례를 창출해 왔다. KISTI 과학산업화팀장, 기술사업화정보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기술사업화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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