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기계연·기초지원연·생명연·에너지연·화학연 등
그룹 리더들 "협력, 공동연구···후속연구지원 필요"
과연 그렇기만 할까.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가 50년(KIST 설립 기준)을 넘었다. 연구자의 역량, 해외 네트워크, 연구팀 운영 등 그간의 경험도 축적됐다. 독보적 성과로 세계적인 연구그룹으로 인정받는 연구팀도 가시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희망봉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원장 조황희)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사장 원광연)는 공동으로 '혁신성장 견인을 위한 선도적 연구혁신 모형' 탐색을 실시했다.
이번 탐색은 연구회 소관 25개 출연연 중 가급 보안 기관을 제외한 19개 기관을 대상으로 했다. 출연연 기관 기준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되는 연구실 2개씩을 추천받았다. 출연연 연구그룹 37개가 후보에 올랐다.
STEPI는 해외 과학기술 연구소들이 선도 연구그룹인 COE(Center of Excellence)를 어떻게 발굴, 육성하는지 살폈다. 이후 우수연구실적, 우수한 인적자원, 안정된 연구 인프라를 기준으로 10개 연구실을 뽑았다. 또 심층조사와 직접 면담을 통해 6개 그룹을 선정했다.
선정 그룹은 ▲KIST 고효율 탈질촉매 연구그룹(발표 하헌필 박사)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역학 연구팀(김재현 박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면역치료제연구센터(최인표 박사)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광분석장비 개발 그룹(장기수 박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료전지 연구그룹(박석희 박사) ▲한국화학연구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기술 연구그룹(서장원 박사) 이다. 이 연구그룹들이 인정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 잘나가는 연구 그룹 필수 요소 '협력' '공동연구'
결론적으로 사람 간 협력이 세계적 성과로 이끌었다는 의미다. 출연연 내부에서만 연구가 이뤄지고 그치는 게 아니라 기술 사용자와의 활발한 협력과 논의를 통해 공동연구를 지속하며 시장에서 기술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외부와의 협력 사례는 KIST 고효율 탈질촉매 연구그룹과 생명연 면역치료제연구센터, 에너지연 연료전지 그룹이다.
고효율 탈질촉매 연구그룹은 사용자인 기업과 활발한 논의가 전개됐다. 그 결과 기존 300°C 보다 저온인 220°C에서 촉매 역할이 가능하도록 하며 독성 방출과 비용을 줄였다. 기술은 국내 포스코와 두산엔진에 적용됐다. 글로벌 무대에서도 기술을 인정받는다. 촉매 기준 2000억원, 엔진기준 2조원 이상 매출 유발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면역치료제연구센터는 병원과 협력하며 연구 속도를 높였다. 난치성 암 치료를 위한 면역세포인 NK세포 치료기술을 개발, 기초연구에 그치지 않고 임상연구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병원의 의사, 간호사, 연구원이 격월 미팅을 하며 공동임상을 진행했다. 연구자들이 병원에 10년 이상 정기적으로 파견되며 성공적인 임상연구에 기여했다. 미국 등 국제 공동연구 네트워크도 가동했다.
에너지연 연료전지 그룹은 해외 선진 기관과 공동연구를 통해 해당 분야에서 선두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국가연구소 LANL, ANL, BNL, Georgia Tech, 일본 AIST, 야마나시대학, 독일 프라운호퍼, 영국, 중국, 캐나다, 인도, 남아공과 활발한 협력을 통해 전해질막, 촉매, MEA 등 원천 소재와 부품을 공동개발할 수 있었다.
화학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그룹은 산학연 협력 연구체계로 성공한 사례다. 화학연 태양전지는 단위소자 세계 최고 인증효율을 기록했다. 올해 9월 25.2%를 달성하며 대면적 고효율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상용화를 성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부 연구자간 협력은 기계연 나노역학 연구팀을 들 수 있다. 기계연은 2017년 자체적으로 잘하는 연구그룹 모형을 도출, 8명 이상의 연구팀 40개를 만들었다. 각 팀별 번호가 부여됐다. 나노역학 연구팀은 20번. 기계연 연구그룹 모형은 시작부터 우수한 개인보다 수월성을 갖는 연구그룹 육성을 위해 탄생했던 셈이다.
3년이 지난 올해 기계연 평가에서 나노역학 연구팀은 첫해부터 연속 세계적 연구그룹에 선정됐다. 연구 및 학술 리더십, 기술 수월성, 협력네트워크, 정성평가 지표에 따라 심사가 이뤄졌다. 평가 기준에 연구팀 내 협력을 내부평가에 반영했다. 해외 저널 활동수, 국내외 공동 논문수(JCR 상위 20%)도 지표에 넣었다.
기초지원연 광분석장비개발 그룹 역시 내부 연구자간 긴밀한 협력으로 성공한 사례다. 이 연구그룹은 기존 기술인 적외선 열화상 현미경이 디스플레이 열분석 장비 시장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데 주목했다. 연구 기획을 통해 열을 보는 현미경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레이저 스캐닝 공초점 열반사 현미경을 개발하고 상용화에 성공했다.
장기수 박사는 연구팀의 성과를 팀원 전공의 다양성을 들었다. 처음에는 전공이 제각각이다 보니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무제한 토론이 이어졌다. 장 박사는 "연공서열 없이 잘 아는 사람이 대장이 됐다. 모르는 용어는 무조건 알 때까지 질문했고 점심시간이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같이 밥 먹으면서 친해졌다"며 팀원 간 친목의 중요성도 성공요소로 꼽았다.
◆ 우수연구그룹 리더들 제언 "우수성과, 후속 연구 이어지도록"
세계적 우수 연구그룹 육성을 위한 그룹 리더들의 제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후속연구를 위한 예산지원, 연구집중환경, 실패 용인 등을 꼽았다.
기계연은 기관 내에서 우수 연구그룹 육성을 위해 재량근무제도 시범 적용했다. 신입 연구자도 우선 배정했다. 해외출장, 국제 교류 지원도 늘렸다. 연구자들이 연구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며 세계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최인표 박사는 국제적 기준의 목표, 국제적 기준에 맞는 리더 발굴, 우수연구팀 지원 필요성을 제안했다. 그는 "우수성과들이 단기로 끝나지 않고 후속으로 연구가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제적 기준에 맞는 리더를 선정하고 꾸준히 지원하면 국제적 리더들이 배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 박사는 "연구자에게 평가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 목표가 확실하면 과제에서 떨어지고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면서 "좋은 사례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서 많은 연구자들에게 공유되며 비전을 주면 좋겠다. 큰 펀딩보다 좋은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석희 박사는 출연연 우수연구그룹 확대를 위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예산 지원을 꼽았다. 그는 "실적 위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고 실패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행정 최소화, 대형과제 위주 진행, 우수한 인재의 지속 영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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